"발해는 우리 역사가 아니다"

“현재 남한과 북한에서 학문 권력을 장악한 연구자 집단이 말갈(발해) 왕국을 한국사로 만들었다. …발해는 고구려가 아닌 말갈에서 출발한 왕국이었다.”

서강대 사학과 이종욱(60) 교수가 발해사가 우리 역사라고 가르치는 현재의 국사교과서는 잘못된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서 논란이 예상된다.

이 교수는 최근 낸 ‘고구려의 역사’(김영사 발행)에서 “발해인들이 고구려식 기와와 온돌을 사용했다고 해서 발해가 고구려를 이은 왕국이라고 하는 것은 역사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라며 “발해는 속말말갈인이었던 대조영과 그 후손들이 왕정을 장악한 말갈족의 왕국”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발해를 한국사로 만들어 내는 과정이 있었다”면서 “1945년 이후 처음으로 한국인에 의해 한국사가 만들어질 때 발해는 부록으로 취급됐으나, 1960년대 후반 발해가 ‘통일신라’라는 장의 뒤쪽에 끼어 들었다. 그리고 2002년 편찬된 고교 ‘국사’ 국정교과서에 ‘남북국 시대’가 설정되면서 발해(북국)는 통일신라(남국)와 대등한 비중을 갖고 자리잡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수십년 간 한국사학이 발해를 한국사로 승격”시켰고 “이제는 국가가 주도해 말갈(발해)을 한국사로 만들어 국민의 역사 지식으로 공식화하고 있는 것”이라며 “국정교과서에 발해를 대신라와 함께 남북국 시대의 남국ㆍ북국으로 설정한 것이 타당한가. 누가, 어떤 근거로 발해를 한국사에 포함시켰는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발해를 발해인 그들의 역사로 살려낼 때, 중국인들에게 발해를 중국사로 정복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할 수 있을 테고 나아가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역사 정복하고 있는 중국학계를 비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올해 초 ‘발해제국사’를 출간한 서병국 대진대 교수는 “중국 사서인 ‘신당서(新唐書)’에 대조영이 ‘고구려에 부속되었으나 속말말갈’이라는 대목이 나오지만 이보다 앞선 ‘구당서(舊唐書)’에는 ‘고려별종’이라는 다른 설명이 있고, 당시 중국이 발해를 끊임없이 비하하려고 했다는 정황을 감안하면 ‘신당서’의 기록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고구려의 지배층인 고(高)씨 중에는 같은 고씨와 혼인하기 위해 성을 장(張)씨로 바꾼 사례가 있다”며 “대조영도 그런 이유로 고씨 성을 바꿨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발해사를 전공한 서울대 송기호 교수는 대조영은 말갈족이었지만 그 선대에 고구려에 귀속하여 고구려가 멸망할 즈음엔 말갈족보다는 고구려민이라는 귀속의식을 가졌다고 설명한다.

경성대 한규철 교수는 “말갈은 당시 동북방 이민족이자 고구려 변방민에 대한 범칭이자 비칭이었기에 ‘구당서’는 발해의 종족 계통을, ‘신당서’는 그들의 출신 지역(속말수인 쑹화강 지역)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며 한국인은 고구려와 발해의 후손이라고 지적한다.

한편 이 교수는 이 책에서 “한국 고대사 연구자들은 일본의 연구자들이 정치 행위의 도구로 발명한 고구려사의 틀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몇 세대에 걸쳐 그들의 스승이나 선배들이 왜곡시킨 역사의 틀을 확대 발전시키며 고구려사를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다”며 이른바 ‘부(部) 체제’설도 비판했다.

그는 “고구려의 왕이 피병합국의 지배 세력들과 연합 정권을 형성한 일이 없다”며 “소위 부 체제설을 따르는 연구자들이 주목한 제가 회의는 각 나부의 회의일 뿐 왕국 전체의 제가 회의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광개토대왕비의 신묘년조의 기록은 국내 학자들 주장 대로 “주어 고구려가 생략된 것이 아니라 왜 그 자체”라며 하지만 이것은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고구려인들이 백제를 깔아뭉개고 그 존재를 무시하기 위한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일보 / 김범수 기자 2005-9-7)

"고구려인의 눈으로 고구려사를 보아야”

“민족사관과 후기 식민사학에서 벗어나 고구려인의 눈으로 역사를 재구성해야 합니다.”

이종욱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고구려의 역사’(김영사 펴냄)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사뭇 다른 모습의 고구려를 전한다. 연개소문은 당의 침략을 막아낸 민족의 영웅이 아니고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했다가 결국 고구려체제 붕괴를 가져온 인물이다.

또 고구려의 시조 주몽도 신화속 인물이 아닌 역사적 실체로서 재구성된다. 연개소문과 주몽은 각각 민족주의와 후기 식민사관에 의한 고구려사 왜곡의 사례라는 것이 이 교수 주장이다.

이 교수는 발해가 한국 역사의 일부분이었다는 논리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발해를 세운 대조영은 말갈족이었고 나라 이름도 원래는 말갈이었는데 당나라가 대조영을 ‘발해군왕(渤海郡王)’으로 책봉함에 따라 나라 이름도 이 발해로 정해진 것이다.

이 교수는 “발해인들이 고구려식 기와와 온돌을 사용했다고 해서 발해가 고구려를 이은 왕국이라고 하는 것은 역사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라며 “사료에서 출발해 발해를 다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발해는 발해사람(말갈족)들의 역사”라며 “지금 만약 말갈족들이 생존해 있다면 우리나라에 ‘역사를 빼앗아가지 말라’고 항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묘하게도 이 같은 상황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국내의 반응과 일치한다. 동북공정은 중국이 중화주의에 따라 펼치는 정치행위일 뿐이라는 데 이 교수도 동의한다.

이 교수는 “중국은 전통적으로 고구려를 중국사로 생각하지 않아왔다”며 “신라가 고구려 유민을 흡수한 만큼 고구려사도 한국사로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인이 고구려인의 후손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고구려사가 한국사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그 위치를 과장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그는 북한이 고구려, 발해, 고려, 조선을 한국사의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정치적 상황에 따른 합리화라고 본다. 이 교수는 이처럼 국내 학계는 물론 북한 학계에도 맞서고 있다.

그는 “현행 국사 교과서는 국민의 역사 지식을 오도하고 있는 것”이라며 “고구려에 대한 허황된 꿈을 버리고 객관적으로 고구려를 생각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세계일보 / 안두원 기자 2005-9-7)

(참조) 관련 학풍 논지의 기사들

“고구려사 문제 학계차원 해결을 (2004-11-2)

"국사의 폭력에서 고구려 구출해야" (2004-10-5)

‘국사’의 굴레를 벗어던져라 (2004-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