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의 폭력에서 고구려 구출해야"-임지현 교수

민족주의는 반역이며, 그것을 강화하는 대표적 기제인 '국사'는 해체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여온 임지현(林志弦.45) 한양대 사학과 교수가 이번에는 "국사의 폭력에서 고구려를 구출하라"는 슬로건을 들고 나왔다.

그는 '동북공정'으로 촉발된 한-중 고구려사 귀속 논쟁을 고구려와는 상관 없는 "비역사적 물음"이라고 말한다. 고구려사는 현재의 국민국가인 중국이나 한국이 독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이런 언급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구려의 멸망은 서기 668년. 대한민국(한국)과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의 건국(1948년 및 1949년)까지 시간적 격차는 1280(1281)년이다.

그때 고구려인들에게 대한민국이나 중국이 염두에 있었을 리 만무하다. 고구려 인에게 현재의 대한민국이나 중국은 이방인이기는 매한가지인 셈이다.

그럼에도 한국과 중국은 왜 다투어 고구려를 '우리의 역사'라고 하는가? 그 답은 간단하다. 고구려가 우리를 택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고구려를 택했기 때문이다.

임 교수는 지난 4월 열렸던 한양대 부설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창설 기념 '근대의 국경, 역사의 변경' 학술대회의 성과를 묶은 단행본 「근대의 국경, 역사의 변경」(휴머니스트刊)에 부친 글 '고구려사의 딜레마-국가주권과 역사주권의 사이에서'에서 고구려사 귀속을 둘러싼 한국과 중국측 논리 모두를 비판한다.

여기서 임 교수는 현재의 영토(국경)를 기준으로 그 안에서 벌어진 모든 역사는 중국사라고 하는 중국측 논리의 이면에는 '국가주권' 혹은 '영토순결주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한편, 이에 맞서 '역사주권'과 '기원주의'에 기반을 둔 한국측 대응논리 역시 "시대착오주의라는 큰 물줄기 속으로 합류한다"고 말한다.

중국에 대한 비판이야 새로울 것이 없겠으나, 한국측 대응논리는 무엇이 문제일까?

'역사주권'과 '기원주의'는 "단일민족 혈통을 강조함으로써 단군 이래 통일된 민족국가에 이르기까지 한민족 역사를 하나의 연속적인 선으로 가정한다"

여기에 기초한 '국사'의 논리는 과거 중국이 주변 제국(諸國)에 대해 그러했듯이 한민족사를 구성한 "다양하고 복합적인 복수의 '역사들'(histories)을 '국사'라는 단수의 대문자 '역사'(History)로 재구성하게 된다.

그러니 '국사'는 민족이라는 선에서 벗어나는 비주류나 소수의 역사는 타자의 역사로 추방해버린다. 그래서 이런 '국사'는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에 의하면 고구려사의 경우 민족구성은 다양했으나 오직 예맥의 역사만이 남고, 말갈이나 거란, 여진 등 고구려를 구성한 다양한 역사는 멸종됐다는 것이다.

이에 그는 중심에 맞서고, 때로는 중심을 향해 돌진하는 '변경'의 역사를 제창 한다. 그가 말하는 변경은 단순한 주변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문명이 교류하는 역동적인 장이다. 고구려사 또한 대한민국과 중국이라는 현재의 국민국가들이 그어 놓은 근대의 국경을 철폐하고, 변경에 위치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구려사는 고구려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연합뉴스 / 김태식 기자 2004-10-5)

임지현 교수 : 서강대 대학원에서 서양사상사 전공으로 박사학위 받음.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 등에서 유학. 『당대비평』,『역사와 문화』 편집위원. 대표작으로는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우리 안의 파시즘』(공저)『이념의 속살』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공저)가 있다. 현재 한양대학교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