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빚 빚… 정말 괜찮습니까?

한국의 단기외채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1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총외채에서 차지하는 단기외채의 비중도 1997년 외환위기 직전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높아졌다.

상황을 외환위기 때와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우리 경제를 둘러싼 여러 변수가 심상찮게 돌아가는 상황이어서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내년은 외환위기가 닥쳤던 1997년과 마찬가지로 대통령 선거가 열리는 해다.

○ 단기외채 규모 사상 최대

22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한국의 만기 1년 미만 단기외채는 9월 말 현재 1080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는 지난해 말의 659억 달러보다 421억 달러, 올해 6월 말의 948억 달러보다 132억 달러가 각각 늘어난 것이다.

2000년 말 496억 달러였던 단기외채는 2002년 말 482억 달러, 2004년 말 563억 달러 등으로 완만하게 증가하다가 지난해부터 급증했다.

총외채 중 단기외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9월 말 현재 43.3%로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9월 말의 45.4%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상승했다.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중도 2004년 말 28.3%에서 작년 말 31.3%, 올해 9월 말에는 47.3%로 급증했다.

최근 단기외채가 급증한 가장 큰 원인은 조선업체들이 원화환율 하락(원화가치 상승)을 예상하면서 앞으로 받을 달러까지 선물환(先物換) 시장에 미리 내다 팔고 있기 때문이다.

선물환 계약이란 장래의 특정 시점에 일정액의 외국환을 미리 정한 시세로 사고팔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수출업체의 선물환을 사들인 은행들은 대신 떠안은 환율변동 위험을 피하기 위해 달러 등 외환을 현물시장에서 팔아야 하는데, 여기에 필요한 달러자금을 단기외채로 빌려 왔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많은 기업이 한국보다 금리가 싸고 원화에 비해 가치가 낮아질 것으로 보이는 일본 엔화 대출을 선호해 은행들이 이 자금을 해외에서 단기로 빌려온 것도 일조했다.

○ 외환위기 때와 다르지만 경각심 필요

단기외채 급증의 속내를 뜯어보면 다행히 외환위기 때와는 많이 다르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특히 외환보유액은 1996년 말 332억 달러(1997년 말에는 40억 달러)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2342억 달러로 불어나 가장 큰 ‘버팀목’이 되고 있다.

또 외환위기 당시 대출기간 차에 따른 ‘미스 매칭’ 문제도 대부분 해소됐다.

외환위기 때 한국의 은행들은 이자가 싼 단기외채를 빌려와 높은 이자를 받고 장기 대출을 해 주고 있었다. 그러던 중 외환위기가 터지고 단기외채를 갚아야 하는 상황에서 장기 대출한 돈을 서둘러 회수할 수 없었던 것이다.

허경욱 재경부 국제금융국장은 “지금은 단기로 빌려온 돈은 단기로만, 장기로 빌려온 돈은 장기로만 대출해 주도록 감독하고 있어 미스 매칭 문제가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외환위기 때와는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단기간에 크게 늘어난 외환이 국내 유동성을 늘리고 가계 대출, 중소기업 대출로 풀리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이 밖에 단기외채 급증이 외국인 투자가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줘 국가신용평가 등에서 부정적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아일보 / 박중현 기자 2006-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