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급락’ 3대 미스터리…수출은 되레 급증?

이틀 연속 상승하면서 920원선을 회복한 원-달러 환율이 12일 다시 3.30원 하락하면서 922.70원으로 밀렸다. 원-엔 환율도 전날보다 4.3원 내린 789.10원으로 9년여만에 780원대로 떨어졌다. 환율이 하락할 때마다 ‘수출 포기를 걱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하지만 최근 몇년간 환율이 급락했는데도 수출은 급증했다. 왜 그럴까? 환율 하락에 대한 정부의 대처도 이전과 달리 조심스러워졌다. 왜 바뀌었을까? 환율 하락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어느 선까지 떨어질 것인가? 환율 하락을 둘러싼 세가지 궁금증을 짚어본다.

① 수출은 되레 급증?
“수익 줄었어도 800원대 중반까진 버틴다”

“‘환율쇼크’니 ‘비상사태’란 말로 너무 겁주지 말라.” 최근 환율 때문에 걱정이 많겠다는 질문에 삼성그룹 계열사 임원은 이렇게 답했다. 그는 “원-달러 환율이 빠른 속도로 떨어져 수출 여건이 나빠진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호들갑을 떨 필요까지 있는가”라고 말했다.

최근 몇년 동안 원-달러 환율이 떨어질 때마다 무역협회를 비롯한 수출 관련 기관들은 기업 절반 이상이 수출을 포기할 지경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수출은 매년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하면서, 올해는 이미 3천억달러를 돌파했다. 오문석 엘지경제연구원 상무는 “환율 하락에도 경쟁력이 향상된 대기업 중심으로 수출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 환변동따라 손익분기점 환율 낮춰
중소기업은 속수무책 지원책 마련 힘써야

무역협회나 수출보험공사 등의 과거 설문조사를 보면, 지난 2002년 말 수출 기업들의 ‘손익 분기점 환율’은 1300이었다. 환율이 이 아래로 내려가면 밑지고 판다는 것이다. 그 해 연 평균 환율은 1251원이었다. 그렇다면 당시 수출기업들은 손해보는 장사를 했을까? 수출 관련 기관들이 내놓는 손익 분기점 환율이 계속 낮아져 온 것을 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손익분기점 환율은 2003년 1200원(연 평균 환율 1192원)에서 2004년 1100원(〃 1145원), 2005년 1050원(〃 1024원)으로, 지난 4년 동안 해마다 50~100원씩 내려갔다. 수출 기업들이 환율 변동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적응 능력이 커진 점을 감안하더라도, 설문조사에 응한 기업들이 조사 때마다 과장된 수치를 제시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어느 선까지 환율 하락을 버텨낼 수 있을까? 기업들은 한마디로 말하기 힘들다고 한다. 박성호 엘지전자 상무는 “환율 하락을 감내하는 정도는 기업이나 업종, 품목별로 큰 차이가 있다”며 “아무래도 규모가 크고 원가 경쟁력이 있는 곳일수록 유리하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대기업의 경우 800원대 중반까지는 견딜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하이닉스반도체 관계자는 “환율 하락은 기업 체질을 강화시켜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기 때문에 너무 비관적으로 볼 일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대기업들도 최근의 환율 급락 탓에, 이전보다 수익성이 악화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환율 변동에 취약한 수출 중소기업들이다. 대기업과 달리 환차손을 떠넘기기 힘들 뿐 아니라, 국외 바이어와의 거래선 유지를 위해서는 출혈 수출이라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ㄷ중공업의 안아무개 부장은 “대기업은 환율이 떨어져도 국외 생산을 늘리면서 아웃소싱을 하거나 부품 재료 수입에서 만회하지만, 중소기업은 환율 폭탄을 고스란히 뒤집어써야 한다”고 말했다. 금형업체인 ㄱ정공 박아무개 사장은 “일을 하면 15% 적자고, 놀면 40~50% 적자가 나는 상황이어서, 무조건 공장을 돌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외환시장 개입을 자제하고 있는 정부도 수출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에는 신경을 쓰고 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앞으로 환율 대책은 중소기업 지원에 중점을 둘 계획”이라고 말했다.

<홍대선 임주환 기자>

② 정부 개입 왜 줄었나
시장 규모 커지고 시행착오 따른 ‘학습효과’

원-달러 환율 하락에 대처하는 외환당국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동안은 특정 환율대를 방어하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히 밝히면서 개입해 왔으나, 최근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시장에선 지난달까지 연중 최저점이었던 927원대를 당국이 방어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당국은 927원대가 깨지는 것을 수수방관했다. 이 과정에서 장 막판에 실망 매물이 쏟아지며 환율이 급락하는 일이 반복됐다.

재정경제부 고위 관계자는 “당국은 변했는데, 시장이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2003~2004년에는 대량 개입이 많았으나 그 이후엔 적은 돈으로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외환당국은 환율이 지난달 28일 달러당 930.8원에서 이달 7일 913.80으로 7거래일 연속 급락해도 개입하지 않다가, 8일엔 15억달러 안팎의 달러를 매수해 환율을 920원대로 되돌려 놓았다.

외환당국의 태도 변화에는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했다. 우선 외환시장 규모가 2003년 하루 평균 26억달러(현물환 기준)에서 올해는 64억달러로 2.5배나 증가했다는 점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하루 거래량이 100억달러를 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시장과 맞서려면 50억달러 정도는 필요하다”며, 시장 개입의 한계를 털어놓았다. 과거 시장 개입의 실패에 따른 ‘학습 효과’와 2004년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 부실 운영 책임 논란도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다. 환율이 2003년 1200원대에서 올해 920원대로 급락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개입은 번번이 실패했다. 특히 2004년 환율 1140원대를 지키기 위해 파생상품에까지 손을 대는 무리수를 뒀으나 결과는 ‘패배’였다.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외환당국이 시장 자율을 더 존중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꾼 것은 중장기적으로 맞는 방향이지만 시장의 중심을 잡아줄 필요는 있다고 주문한다. 이진우 농협선물 금융공학실장은 “국내 외환시장은 폭과 깊이가 좁고 얕아 당국이 시장에 들어오지 않으면 환율이 주체하기 힘든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현 기자>

③ 원화만 유독 강세?
올들어 9.2% 뛰어 ‘넘버3’
공급>수요…투기도 한몫

원화 강세(원-달러 환율 하락)가 좀체 멈추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 미국 달러 약세 탓이 크다. 미국을 중요한 교역국으로 삼는 나라 치고 올해 들어 통화 가치가 오르지 않은 국가는 거의 없다. 문제는 원화가 다른 통화에 비해 절상 폭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지난 11일 현재 원-달러 환율은 연초에 견줘 9.2%나 뛰었다. 이런 상승률은 타이 바트(14.7%)와 유로존 유로(10.8%)를 빼고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특히 해외시장에서 경합이 심한 일본 엔(1.0%)에 견주면 오름세가 두드러진다.

원-달러 환율의 가파른 하락에는 달러 약세 말고 우리 외환시장의 특성도 작용한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수석연구원과 한국경제연구원 배상근 연구위원 등은 달러 공급이 줄곧 수요를 크게 앞지르고 있는 게 큰 몫을 한다고 말했다. 수출 호조로 수출업체들의 달러 보유액이 늘고 있고, 은행의 대규모 외화 차입으로 자본수지가 10월까지 127억달러의 흑자를 냈다. 외환은행 이진규 과장은 환율이 하락하는 계기마다 조선업체 등을 중심으로 추가 하락을 예상해 달러 선물환을 대거 내다파는 점에 주목했다. 반면, 달러가 필요한 수입업체들은 결제 시기를 늦추고 있다. 투기 세력이 이런 분위기를 타고 외환시장을 휘젓는 현실도 빼놓을 수 없다고 엘지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지적했다.

그렇다면 환율은 어디까지 하락할 것인가? 일단 달러 약세 기조가 당분간 반전되기 어려워 환율 하락 추세는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진규 과장은 연말에 1달러당 900원대로 접근하고 내년 1분기에 800원대 진입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하락세가 지속되면 환차손을 줄이기 위해 달러 매도를 가속화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배상근 연구위원은 올 연말과 내년 초에 약세가 이어지더라도 910원 밑으로 내려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달러 약세에 따른 원화 절상 요인이 이미 환율에 많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그는 내년 평균 환율을 920~930원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경 선임기자>

(한겨레신문 2006-12-13)

재경차관 "환율 펀더멘털서 벗어나..문제 심각"

과다한 엔화차입이 단기 자본수지에 부담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수요정책포럼 강연-

진동수 재정경제부 제2차관은 13일 "우리나라의 펀더멘털(기초경제여건)에서 환율이 좀 벗어나는 것 같다는 데 심각한 문제인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주최 수요정책포럼에서 "국제기구에서도 우리나라 환율이 실질실효환율 측면에서 볼 때 높다고 보고있다"면서 "(환율의) 하락속도와 엔화와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감안해 정책대응을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진 차관은 "원화가 미국, 일본, 중국 등 경쟁국 통화에 비해 과도하게 절상됐다는 것은 사실"이라며 "올해 들어 달러화에 비해 싱가포르 달러화는 8%, 원화는 9.9%, 유로화는 12%, 태국은 15% 절상됐는데, 엔화는 2.3%밖에 절상이 안됐다"고 지적했다.

진 차관은 "원화의 과도한 절상은 국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파는 쪽의 움직임이 선물환 부분에서 과도했던 것이 원인이 됐다고 본다"면서 "국내 외환시장에서 달러의 수요와 공급을 미시적으로 관리하는 노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엔저 현상은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며 내년에는 엔화가 지금과 같은 낮은 상태로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진 차관은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흑자가 계속되면서 (환율부분에서) 어려움이 가중됐던 이유 중 하나는 자본수지에서 완충해 털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아웃플로우(유출) 정책을 꾸준히 썼지만, 자본의 해외 아웃플로우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많아 속도가 미흡했다는 점은 인정한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환율쪽 어려움을 갖게 된 또 다른 이유는 국제금융시장에서 큰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쳐 금융기관들이 상당히 과다하게 엔화를 차입해 단기간 자본수지 쪽에 부담을 줬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거시적으로 볼 때는 외환.환율 안정을 위해 경상.자본 수지 쪽에서의 인.아웃플로우를 관리해야겠지만 앞으로는 각 부문별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미치는 미시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금융기관 엔화차입 등에 대해서는 한국은행, 금융감독원과 면밀히 상황을 보고있고 충분한 문제인식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진 차관은 환율의 역내조정과 관련, "한.중.일간 여러 경로를 통해 수시로 논의하고 있다"면서 "각국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라 조정이 쉽지는 않지만 여러 채널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 차관은 환율방어에 대한 한국은행의 노력이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로버트 팰런 외환은행 이사회 의장의 지적에 대해서는 "환율방어에 대한 일차적이고 종국적인 책임은 재경부가 갖고 있어 굉장히 아픈 지적"이라며 "우리나라가 정책대응을 하는 데 어려운 점은 언론과 국회의 시각"이라고 털어놨다.

(연합뉴스 / 이율 기자 2006-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