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아파하면 찾을 수 있다" 153명 혈육 찾아준 경찰관

'혈육' 가능성 50여명에 일일이 편지와 전화…3년 걸쳐 가족 찾아주기도

경기도 남양주에 사는 한 모(38)씨는 최근까지도 고아 아닌 고아 신세였다.

8살 때 어머니가 재가하자 그대로 집을 나왔다가 길을 잃고 가족과 생이별을 한 뒤 30년간 혈혈단신으로 살아왔다.

그 동안 경찰서만 서 너 곳, 시청이며 구청이며 가족을 찾아준다는 곳은 닥치는 대로 가서 사정을 호소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확인불가'라는 냉랭한 대답뿐이었다.

그래서 10년 전쯤 부터는 가족 찾기를 포기하고 전국을 떠돌다 6년 전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

올 초 허리를 다쳐 꼼짝없이 눕게 됐을 때 그 동안 잊고 지냈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다시 사무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찾은 것이 관할 남양주 경찰서 민원실이다.

그런데 신청서를 접수한지 9일만에 거짓말처럼 "어머니를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한씨는 "서류를 접수하고 솔직히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너무 일찍 연락이 왔다"며 "처음에는 거짓말인줄 알았다. 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그 날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 씨의 한(限)을 풀어준 경찰관은 바로 이건수 경사.

남들은 찾지 못한 씨의 어머니를 이 경사는 어떻게 찾을 수 있었을까?

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남들에게 알리기 위해 한 일이 아니다"며 한사코 인터뷰 요청을 거부했다.

결국 경찰청과 경기지방경찰청의 협조를 받아 21일 어렵게 그를 만날 수 있었다.

한 씨의 어머니를 찾기 위한 이 경사의 방법은 끈기와 인내였다.

전산망을 통해 확인한 전국의 동명이인 50명 가운데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내고 전화를 걸어 '수사'를 했다고 한다.

그 중에 한 씨의 집에서 1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곳에 사는 사람이 한 씨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조심스럽게 "아들이 간절히 찾고 있다"는 뜻을 전했다.

이산가족들은 대부분 힘들었던 과거를 잊고 싶어 하거나 이미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있어 때로는 가족 상봉을 꺼리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두 모자는 지난 6월 남양주경찰서에 사무실 한켠에서 30년간 마음 한 곳에 묻어 뒀던 '아들'과 '어머니'를 목 놓아 부를 수 있었다.

한 씨 외에도 152명이 이 경사의 도움으로 헤어진 혈육을 찾을 수 있었다.

3년에 걸쳐 가족을 찾아준 일도 있었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다 찾을 수 있다"며 "신청서가 접수되면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에 대해 진실된 마음으로 아파하면서 찾는다면 다 찾을 수 있다고 민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인근 지역에서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주는 천사 경찰관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때문에 남양주경찰서 관할이 아닌 곳에서 찾아와 이 경사 앞에 서류를 놓고 가는 가족까지 생겨날 정도다.

동료 경찰관인 이정아 경장은 "이 경사님은 민원인의 안타까운 사정을 자기의 일처럼 생각한다"며 "'다른데서 찾다가 포기하고 나를 찾아왔다'는 생각을 가지고 모든 일을 처리하는 것 같다. 그 것은 끈기나 보람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 동안 153명의 헤어진 가족들의 아픔을 달래줬지만 이 경사는 "여전히 목이 마르다"고 했다.

헤어진 가족으로 가슴에 멍에를 안고 사는 가족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경사는 더 많은 이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일을 하면서 6·25 이산가족, 해외 동포, 해외 입양아, 고아, 이혼에 따른 이별 등 우리나라에 헤어진 가족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이산가족들을 전국적으로 한 곳으로 통합해 전문가들이 집중적으로 찾는다면 이들의 아픔을 덜어줄 수 있을 겁니다"

가족을 처음 찾아주었을 때 자신의 두 눈의 눈물샘이 마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이 경사.

경찰관 이건수 경사는 오늘도 헤어진 가족을 찾아 전산망을 뒤지며 '잃어버린 사람 찾기'라는 소중한 '수사'를 벌이고 있다.

(노컷뉴스 / 권민철 기자 2006-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