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어르신들께 사랑을 버무려 드려요”

야쿠르트 아줌마 5000명, 오늘 서울등 6곳서 ‘김장 나누기’
배추 12만포기 8t트럭 23대 분량 2만5000가구 지원

마치 작전명령을 기다리는 병사들처럼, 배추 12만 포기가 숨을 죽인 채 충남 논산에 있는 한 저온창고에 조용히 잠들어 있다. 8톤 트럭으로 23대 분량. 200평 창고를 2층까지 꽉 채웠다. 배추를 수확하고, 다듬고, 씻고, 소금에 절이느라 200여 명이 달라붙어 꼬박 사흘간 진을 뺐다. 준비는 모두 끝났다.

21일 0시, 출동명령이 떨어지면 ‘주력군’인 배추 180t과 무 17t, 고추 15t, 파 4400다발, 생굴 3.3t, 양파 2.8t, 밤고구마 1.5t, 액젓 9t, 소금 24t, 배 560상자가 트럭에 실려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으로 신속하게 흩어진다. 목적지는 서울광장 등 전국 6개 도시 ‘사랑의 김장나누기’(한국야쿠르트 주최) 행사장. 21일 오후 1시부터 5시간 동안 야쿠르트 아줌마 5000명이 달라붙어 일제히 김장을 담그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이쯤 되면 초대형 김장 퍼포먼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한 야쿠르트 아줌마에서 시작된 사랑의 김치

시작은 소박했다. “2000년 무렵 제가 부산 지점장으로 근무할 때 한 야쿠르트 아줌마가 자신이 맡은 지역의 독거(獨居) 노인을 돌보면서 김장을 담가 준다는 사연을 들었어요. 아예 지점 차원에서 김장을 담가 나눠드리는 게 어떻겠느냐고 본사에 건의했죠.”(정종기 수도권방판부문 이사)

2001년 12월 야쿠르트 아줌마 500여 명이 부산시청 앞 광장에 모여 김장 6000포기를 담가 2000가구에 나눠줬다. 이 일이 화제가 되면서 대규모 김장 담그기는 야쿠르트 아줌마들의 연례행사로 자리잡았다. 그러잖아도 날마다 야쿠르트를 배달하며 홀로 사는 노인들의 안부 확인하랴, 설날엔 ‘사랑의 떡국’ 나누랴, 봄철엔 ‘희망의 대청소’ 하랴 바쁜 아줌마들이다. 그럼에도 지난해 서울 김장 담그기 행사에 2500명을 모집한다고 했더니 7000여 명이 몰려 결국 제비뽑기를 해야 했다. 27년째 야쿠르트를 배달하며 14명의 독거 노인을 돌보고 있는 안정자(여·55)씨는 “김장을 받고 기뻐하실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힘든 줄 모른다”고 했다.

부산에서 시작한 김장 담그기는 해가 갈수록 전국으로 확산됐다. 2004년 서울, 인천, 광주까지 확산됐고, 지난해엔 대전과 대구까지 퍼졌다. 10억원이 넘는 비용은 전액 한국야쿠르트 사내 봉사단체인 ‘사랑의 손길펴기회’ 기금으로 마련한다. 임직원 전원이 매달 월급의 1%씩 내서 모은 돈이다.

◆ 정성 담아 2만5000여 독거 노인 가구로

그래도 야쿠르트 아줌마들은 “뭔가 2%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돈을 주고 배추를 사서 김치를 담그는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지 않은가”라고. 그래서 올해는 직원들이 직접 배추밭으로 나갔다. 미리 계약을 해둔 논산의 배추밭을 틈틈이 찾아갔다.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찬바람을 맞으며 수확을 했다.

이렇게 재배된 배추와 무가 오늘 1만개의 손으로 버무려진 뒤 10㎏들이 상자에 담겨 야쿠르트 손수레를 타고 방방곡곡 2만5000가구에 배달되는 것이다. 맛있게 버무린 김치, 그 어딘가에 짭조름한 땀냄새가 배어 있다.

“그래도 아직 모자란다.” 한국야쿠르트 김순무 대표가 말했다. “나름대로 대상자를 잘 선정해서 전달한다고 하는데도 ‘왜 나는 안 주느냐’는 항의가 빗발쳐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곤혹스러워할 때가 많아요. 어려운 이웃들이 그렇게 많다는 뜻일 테지요.” 이런 이유로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담그는 김치는 해가 갈수록 늘어만 간다. 기대하시라, 21일 겨울날의 사랑의 김장 퍼포먼스를!

(조선일보 / 최규민 기자 2006-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