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 대응, 단재선생이 뭐랄꼬

이른바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촉발된 갖가지 반응들을 통해 새삼 우리사회의 적나라한 실상을 살피게 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밖에는 대응하지 못하는 맹목적이고 충동적인 사회상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한편에서는 또 이를 빌미삼아 극우적이고 퇴행적인 행태를 노골화하고 있다.

일찍이 민족 고대사의 중요성을 역설한 분이 단재 신채호 선생이다. 단재는 일제침략에 맞서 민족혼을 일깨우고 자주독립국가의 의지를 북돋우기 위해 우리 역사를 연구하였다. 특히 강성했던 고구려 역사를 내세워 민족의 위대한 기상을 설명했다. 그의 뛰어난 역사의식은 민족적 위기를 당해 민중이 패배의식에 빠지는 점을 크게 우려하여 이를 극복할 방안을 고대사 연구를 통해 마련했고 이를 통해 독립의지를 일깨운 데서 드러난다. 하지만 만일 오늘 우리의 할 일이 무엇인지 신채호 선생께 여쭤 본다면, 오히려 지금의 일부 언론이나 식자들이 시대가 변하고 조건이 달라진 것을 감안하지 못하고 100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소리를 반복하는 각주구검(刻舟求劍)의 어리석음에 대해 질타하실 것이다.

시대착오적 중화주의의 그늘이 느껴지는 중국학자들의 만주지역 고대역사에 대한 유치한 발상으로 야기된 파문은 한중간의 역사논쟁과 외교적인 문제를 넘어 이제는 우리사회를 뒤흔드는 중대한 현안으로 제기되고 있다. 마침 그동안 미군에 넘겨진 전시작전통제권을 되찾는 문제와 그리고 독도에 대한 일본의 도발문제 등이 맞물려 고대사 연구는 엉뚱하게 내부 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장차 유사시 북한을 차지하려고 하는 공작의 일환이라고까지 주장한다. 따라서 중국의 이런 태도는 우리 국가안보상 대단히 중대한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정부는 이같은 국가안보상의 심각한 문제를 소홀히 취급하고 또 중국 눈치를 보면서 소극적 자세로 임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우방인 일본이나 미국에 대해서는 자주나 주체성을 내세워 의지해야 할 동맹관계를 크게 훼손시킨다고 비난한다.

동북공정은 중국 내부 결속용

하지만 독도 영유권 문제와 미국에서 작통권을 찾아오는 과제는 중국의 동북공정과는 그 경과나 본질 그리고 미치는 영향력에서 서로 차원이 다른 문제들이다. 미일은 서로 동맹관계를 구축하고 아시아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를 만들기 위해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한반도 침탈쪽보다는 그들 내부의 결속쪽에 무게가 두어져 있다. 작통권은 오늘 우리 국가의 주권과 21세기 민족사의 미래가 걸린 문제이지만 동북공정은 영토분쟁이나 주권침해와는 거리가 먼 한때의 허구적 가설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인류는 끝없는 이합집산의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해 왔다. 역사는 그에 대한 기록이다. 따라서 특정국가에만 국한되는 배타적인 역사란 무의미하며 가능하지도 않다. 고대 동북아도 역내의 다양한 세력과 축적된 문화들이 교류하고 통합하는 과정에서 고구려나 발해 왕국이 그리고 원이나 청나라가 수립되었다. 이러한 과거를 눈앞의 이해관계로 재단하고 취사선택하여 특정국가의 소유로 규정한다는 것은 천박하기 짝이 없는 언어도단이다. 동북아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이자 중국의 역사일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장차 동북아 공동체를 추구해야 하는 마당에 과거의 공유된 기억을 이용해 오히려 배타적 적대관계로 이끌어간다는 것은 과거역사를 유린하는 일일 뿐만이 아니라 미래역사를 망치는 행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한국과 중국 학자들은 전향적인 인식을 가지고 동아시아 고대사로부터 공통의 뿌리를 확인하면서 그 기초 위에 미래역사를 설계하는 일에 이바지할 수 있어야 한다.

돌이켜보면 논란이 확대된 배경에 냉전체제의 지속을 꾀하는 보수우익세력의 의도가 작용하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과의 관계가 개선되는 것도 미국의 압도적 영향력이 약화되는 것도 기득권 수호에는 위협요인이 된다. 대미인식이나 한일관계의 미묘한 국면에서 때맞춘듯 등장하는 동북공정 등 대중국문제들이 그와 무관할까? 혹시 미국 중국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50년대 전쟁을 치르던 때의 상태로 붙들어 매고자 하는 건 아닌가. 유신이나 5공의 군사정권들이 동북아 긴장을 조성하고 맹목적인 민족감정을 충동질하는 가운데 반공보수체제를 구축해 왔던 때로 회귀시키려는 우려스러운 시대착오는 아닐까.

오늘날은 국가를 언급할 때 국토의 크기나 그 안에 매장되어 있는 자연자원이 중요하게 취급된다. 그러나 고대사회에서는 땅보다는 인구가 중요했다. 국가의 지배는 사실상 사람에 대한 것이었고 국토는 거기 딸린 것이었다. 생산활동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더 우선적인 것은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안전이 보장될 수 있어야 했다. 고구려가 수도를 집안으로 또 평양으로 옮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 민족을 형성한 원형의 하나인 고구려는 만주지역 일대를 오랫동안 지배한 강대국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고구려의 강한 국력의 근원으로 광대한 영토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고구려의 국력이 인구에 기인한 것이고 넓은 영토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영토가 넓으면 그만큼 인구도 많아지게 되지만 이 두 요소는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강대국의 인구가 얼마나 되었을가. 자료가 부족해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연구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최대 백만명을 크게 넘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국 대륙도 유비 조조 등으로 익숙한 삼국시대인 3세기에 총 인구가 800만명을 넘지 않았다.

동북아는 우리역사이자 중국역사

인구가 그 정도규모일 때 국가 운영의 실재는 어떠했을 것인가를 우리는 호기심을 가지고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추론하던 당시에 오늘날 우리가 염두에 두는 근대 제국주의와 같은 지배와 통치를 행했던 것은 아니다. 이 같은 사정은 근대 이전까지 일반적이었다. 가까이 조선왕조 경우에도 함경도 변방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두만강을 넘어 간도지역으로 이주해 가는 것을 엄격히 금지했다. 오늘날의 처지에서 본다면 참으로 아쉬운 조치이기는 하지만 변방에 나가 생활하는 백성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하에 만주로 진출하는 것을 금지했던 것이다. 그 때는 그런 조치가 당연시 되었다. 그러나 만약 중앙정부가 이주를 금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진출해 정착하도록 권장했다면 이후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을 이용해 그 곳을 우리 소유로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예컨대 압록강에는 사람이 거주하는 수많은 섬들이 있는데 그 섬들은 현재 모두 우리 영토이다. 이는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그 땅도 우리나라 땅이 되는 것이다. 요는 장차 달라질 조건을 미리 내다 볼 수 없는 까닭에 당장의 현실에 얽매이다가 초래한 기회 상실이었다.

간도 이주 금지하지 않았더라면

근대로 접어들면서 이제는 사람과 함께 영토가 중요하게 되었다. 특히 자연자원을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영토는 사람보다 오히려 더 중요하게 취급된다. 그리하여 19세기에는 땅을 빼앗기 위한 제국주의 침략전쟁이 치열해졌으며 그런 추세는 20세기에도 지속되었다. 우리의 20세기 불행은 그러한 제국주의 침략에 올바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아직도 영토와 관련돼 분단이라는 미결의 큰 과제를 안고 있으며 이를 우회할 수 없다는 데 오늘날 선택의 여지가 좁고 행보가 자유롭지 못한 까닭이 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영토에 대해 관심이 높고 매우 민감하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갈수록 자기나라 땅에 얽매이지 않는다. 국적에 구애받지 않고 세계를 무대로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다. 앞으로의 세상은 소속된 나라의 영토가 넓고 좁은 것에 크게 구애받지 않을 것이다, 그런 변화는 오히려 우리 한국인에게 매우 유리한 상황이다. 이미 수많은 한국인들이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들에게 한국인이라는 점이 어쩌면 이율배반적인 두가지 의미로 작용할 수 있다. 하나는 한국인이라는 국적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다. 국적이라는 소속감에 얽매여서는 창조적이고 폭넓은 활동을 하기 어려울 것이고, 민족과 문화적인 정체성을 놓치게 되면 뿌리가 없는 떠돌이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20세기 한때 좁은 영토라는 한계로 겪었던 곤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고정된 영토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 우리가 앞장서 세상을 그런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필요도 있다. 만일 지금같은 폐쇄적이고 과거 지향적인 사고를 지속한다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을 것이다. 수구적이고 국수적인 태도로는 21세기의 유리한 조건을 또다시 놓치게 되며 지난날처럼 세계사에서 낙오를 면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변화한 조건을 이용하여 새로운 미래상을 만들어 가는데 적극적이어야 하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한국인들은 수준 높은 문화와 튼튼한 공동체적 연대를 통해 이런 세계사의 변화에 조응하면서 충분히 뛰어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안병욱 / 카톨릭대 인문학부 교수·국사학>

(한겨레신문 2006-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