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역사재단’ 흔들기 그만

동북아역사재단이 정치 공세 앞에 흔들리고 있다. 중국 동북공정에 대한 정부대책을 질타하는 손가락질의 한복판에 동북아역사재단이 서있는 꼴이 되고 있다. 정작 동북아역사재단은 출범도 하지 않았다. 애초 지난해 출범 예정이었지만, 정치권의 정쟁에 발목잡혀 출범이 늦어졌다. 법안 통과를 사학법과 연계시킨 한나라당의 반대로 지난 5월에야 관련법이 통과됐다. 지난 5일 김용덕 이사장을 임명했고, 이사 선임과 직원 채용을 거쳐 오는 20일께 정식출범할 예정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을 둘러싼 논란의 허와 실을 짚어본다.

고구려재단 연구진 모두 옮겨가 연구차질 없어

고구려연구재단을 통폐합한 게 잘못이다? = 중국 동북공정을 직접 겨냥한 고구려연구재단은 최근 동북아역사재단의 출범에 맞춰 통폐합됐다. 이에 대해 일부 학자 및 언론은 “한국 정부가 중국 동북공정에 소흘히 대처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윤휘탁 동북아역사재단 박사는 “고구려연구재단은 연구기관으로서 고조선·고구려·발해 등의 역사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진행해 적지 않은 성과를 냈고, 이는 동북아역사재단에서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윤 박사는 고구려연구재단 출신이다. 고구려연구재단에서 일했던 연구원 18명과 행정직·기능직 9명은 모두 동북아역사재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연구원 18명 가운데 10명은 중국 문제를 전담하는 연구 2실에 배치됐고, 나머지 인원은 전략기획실·교류홍보실 등으로 배치됐다. 동북아역사재단은 보도자료를 통해 “대외 전략 수립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 중국 연구자들을 재단의 각 부서에 고루 배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주백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그동안 고구려연구재단의 ‘연구성과’가 적지 않았지만 실제 동북공정에 대한 실효적 대응이 미진해 보이는 것 자체가 바로 동북아역사재단이 출범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고구려연구재단은 연구기관의 성격이 강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학술연구와 대외전략의 통합 효과를 의도하는 민관 합동기관이다. 연구성과를 대외전략으로 이어갈 통합기관이 이제 막 출범하는 셈이다.

지금도 중국통 더 많고 인력확충때 벌충

일본에만 치중한다? = 이사장을 비롯한 임원진을 제외하고, 실질적으로 동북아역사재단을 이끌어갈 연구진 등의 직원은 모두 56명이다. 이 가운데 ‘중국통’으로 통하는 고구려연구재단 출신이 모두 27명이다. 이 가운데 연구진이 18명이다. 반면 동북아역사재단 출범을 그동안 준비해왔던 ‘바른역사기획단’ 출신은 모두 29명이다. 이 가운데 행정지원 공무원이 13명이고 16명만 연구직이다. 주로 ‘일본통’이 많다. 개별 전공까지 따져 들어가면 일부 차이가 나긴 하지만, 현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인력의 절반이 중국 전공자, 나머지가 일본 전공자인 셈이고, 오히려 중국 전공자가 조금 더 많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재단 관계자는 “현재 50여명의 직원 규모를 장기적으로는 100여명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라며 “설사 특정 영역의 전문가가 다소 부족하다 해도 인력확충 과정에서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용덕 이사장이 일본사 전공자라는 점을 들어 ‘일본 편향’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 주요 대학에서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는 한 소장학자는 “학제로 볼 때, 일본사로 박사학위를 땄더라도 중국사, 한국사를 함께 공부할 수 밖에 없다”며 “최종 학위 박사논문을 이유로 일본사만 아는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무식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의 이사회는 이사장을 포함해 20명의 이사들로 구성된다. 동북아역사재단 관계자는 “현재 이사 선임이 진행중인데, 이 과정에서 학계 안팎의 다양한 분들을 모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성과 대외전략 이어가려면 시민 참여 늘려야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 문제는 이런 정치공세 때문에 동북아 역사분쟁을 중장기적으로 지휘할 동북아역사재단의 진짜 문제들이 가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의 관건은 정부, 학계, 민간으로 이어지는 역량이 조화를 이루는 데 있다. 그런데 이사장 선임 과정 등을 둘러싼 학계 안팎의 앙금이 아직 남아 있다.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는 최근 성명을 내고 “‘민관협력모델’이라는 애초 취지에 비춰 시민사회의 참여가 지나치게 협소하다”고 밝혔다. 진보 성향으로 평가되는 한 국사학자는 “역사분쟁 등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나름의 활동을 해온 분들이 많은데, 왜 ‘무색무취’한 분을 책임있는 자리에 앉혔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정대학 출신 교수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해서 고구려연구재단이 입질에 오른 적이 있는데, 동북아역사재단 역시 역사학계 내부, 역사학계와 사회과학계, 나아가 학계와 관료 사이의 긴장을 품고 있다.

(한겨레신문 / 안수찬 기자 2006-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