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고구려사 구두양해' 위반여부 논란

중국 국무원 산하기관인 사회과학원 변강사지(邊疆史地) 연구중심의 한국 고대사 왜곡 논란과 관련, 2004년 8월 한중 외교차관이 당시 고구려사 왜곡 문제에 대해 합의한 구두양해 내용이 새삼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공개된 변강사지 연구중심의 연구 결과물들이 당시 외교차관 간 합의를 위배한 것인지 아닌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5개항에 이르는 구두양해는 2004년 4월 중국 외교부가 홈페이지에서 고구려 부분을 삭제하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 등이 고구려를 `중국 지방정권'으로 보도하는 등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움직임이 점차 노골화함에 따라 양국 간 갈등이 첨예해진 시점에서 이뤄졌다.

당시 양측이 합의한 구두양해 사항에는 ▲중국 정부는 고구려사 문제가 양국 간 중대현안으로 대두된 데 유념하고 ▲역사문제로 한중 우호협력 관계의 손상 방지와 전면적 협력 동반자관계 발전에 노력하며 ▲고구려사 문제의 공정한 해결을 도모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 정지문제화하는 것을 방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중국 측은 중앙 및 지방 정부 차원에서의 고구려사 관련 기술에 대한 한국 측의 관심에 이해를 표명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나감으로써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을 방지하고 ▲학술교류의 조속한 개최를 통해 해결한다는 내용도 있다.

따라서 중국 정부 산하기관인 변강사지 연구중심이 왜곡된 한국 고대사 연구물을 공개한 것이 2004년 구두 양해사항 내용 중 `중앙 및 지방 정부 차원에서의 고구려사 관련 기술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 나가고 역사문제로 한중 우호협력 관계의 손상방지에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어긴 것 아니냐는 시각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 정부의 관여 속에 `동북공정'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변강사지 연구중심이 중앙 정부 산하기관이라는 점에서 이 기관의 역사왜곡에 대해 중국 정부가 책임을 면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게 사실이다.

우리 외교통상부도 지난해 10월 `동북아역사재단 설립 관련 설명자료'란 문건에서 "변강사지 연구중심은 국무원 산하 사회과학원내 대표적 전략연구소로 중국 정부의 외교전략 틀 속에서 기능하고 있다"며 중국 정부와 이 기관간의 밀접한 연관성을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는 변강사지 연구중심의 연구물이 중국 정부의 공식입장으로 채택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일단 이번 문제를 중국 정부와는 분리하고 현 단계에서는 중국에 대해 외교적 대응을 하지 않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다시 말해 아직까지는 중국이 구두양해 사항을 어긴 것으로 보기 어려운 만큼 중국 정부차원에서 변강사지 연구중심의 왜곡된 한국사 연구 내용을 공식 입장으로 채택할 경우에 문제를 제기하기로 한 것이다.

2004년 당시에는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한국사 관련 부분이 삭제되는 등 명백히 중국 정부가 관여했다는 정황이 있어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지만 이번의 경우 정부 산하 연구기관의 행위여서 형식논리상 중국 정부와 직접 연결하기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외교통상부 산하기관인 외교안보연구원이 정기.비정기적으로 내놓는 연구 내용이 우리 외교부의 공식입장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라는 게 정부의 논리인 것이다.

다만 중국 정부와 변강사지 연구중심 간의 관계, `동북공정' 속에 숨겨진 것으로 의심되는 중국 정부의 정치적 의도 등을 감안하면 왜곡된 연구내용이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채택되기 전 예방차원에서라도 모종의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들은 끊이지 않고 있다.

아울러 이번에 공개된 변강사지 연구중심의 연구 결과물들이 2004년 8월 한중간 구두양해 시점 이전에 공개됐던 내용과 비교할때 어느 정도 새로운 것들인지도 짚고 넘어 가야할 대목이다.

정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변강사지 연구중심이 2004년 8월 한중간 구두양해 이전에도 연구계획 등을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올린 바 있으며 연구결과가 진행됨에 따라 연구내용을 업데이트시켜 발표했다"며 문제가 된 연구물들이 완전히 새롭게 나온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한.중간 구두양해 이후 왜곡된 역사 연구물들이 새롭게 나왔다면 중국이 약속을 깼다는 문제제기가 가능하지만 구두양해 이전에 내용의 일부가 공개된데 이어 구두양해 이후 그 내용이 업데이트된 것을 두고 약속위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연합뉴스 / 조준형 기자 2006-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