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 논란 뒤엔 '한미동맹' 족쇄가…"

중국의 동북공정 탓에 대한민국이 또 한 번 뒤집어졌다. 지난 2004년 동북공정 프로젝트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고구려사를 삼키려 드는 중국의 무서운 음모'에 온 국민이 분노한 지 2년 만이다.
  
2년의 성과물로 고구려를 중국의 소수 민족으로 규정한 논문이 알려지자 일부 언론들은 이를 '역사 침략'으로 규정했고 이 '역사 침략'이 '영토 침략'으로 이어질 것을 심히 우려하고 있다. 북한을 호시탐탐 노리는 중국 정부가 '유사시'를 대비해 역사부터 고쳐두고 있는 것이며 '침략의 대상'에는 북한뿐 아니라 한강 이북이 모두 포함돼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 같은 중국의 '검은 속'을 모르고 "논문은 학술 차원에서 대응하겠다"고 한 외교부는 '사실 은폐'니 '굴종외교'니 하는 모욕을 들어야만 했다. 정치권의 질타에도 여야가 따로 없었다.
  
"'동북공정', 2년 전과 뭐가 달라 흥분하나"
  
그러나 2년 만에 들이닥친 '동북공정의 위협'에 각계각층이 부산스레 대응하는 와중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야할 학계는 오히려 차분한 반응을 보였다. <고구려 연구재단>의 <동북아 역사재단> 편입을 두고 왈가왈부가 있었지만 본류와는 조금 동떨어진 논란이었다.
  
이를 두고 임기환 서울교대 역사학 교수는 "동북공정 프로젝트가 시작되던 2004년 공개됐던 연구 동향과 지금 결과물 사이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구려사를 전공한 임 교수는 올해 초까지 <고구려 연구재단>의 연구 위원이기도 했다.
  
임 교수는 "아직 동북공정의 결과가 정책에 반영되지도 않았고 새로운 전기를 맞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왜곡이니 역사 침략이니 하며 호들갑을 떠는 것이 새삼스럽다"고 말했다.
  
북한의 유사시를 들먹이며 한반도를 향한 중국의 '야욕'을 강조하는 보도나 정치권의 발언에 대해서도 학자들은 "우습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희교 광운대 중문학 교수는 "'유사시 대비'라는 논리의 배경에는 '중국이 북한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가정이 성립돼야 하는데 중국이 북한을 삼켜 얻을 것이 뭐가 있냐"고 반문했다. 미국이 동북아에 주력군을 배치해 둔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무력 충돌을 감수해야 하는데 북한이 그만한 전략적 가치가 없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김 교수는 "중국이 남사군도(스프라틀리)를 노리는 것과 연결해서 북한도 그러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양인데 남사군도에는 유전이란 확실한 이권이 걸려 있지만 북한은 이익이 될 것이 없는 위치에 있다"며 "가정에 대한 논리적인 검토도 없이 무조건 위기론을 조장하는 것이야 말로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동북공정'→'중국 위협론'→'그래도 미국이 낫지 않냐'

  
이미 한 번 공개됐던 동북공정 프로젝트가 2년 동안 위협적으로 전개된 것도 아니고 정책에 반영될 전기를 맞은 것도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동북공정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위협'으로 등극하게 된 데에는 중국 동향에 변화가 있었다기보다는 국내 정치 상황과 맞물려 의도적으로 조장된 측면이 크다는 것이 이들의 판단이었다.
  
김희교 교수는 "언론과 정치권이 동북공정 문제로 호들갑을 떠는 구도 속에는 기본적으로 한미동맹에 대한 불안감이 잠재돼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전시 작전통제권환수 방침을 밝히는 등 미국으로부터 유연해 지려는 노력을 보인 점을 동북공정 논란의 '도화선'이라 지적했다.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하다는 평가가 나올 때마다 '그렇다면 중국과 함께 가는 거냐'는 질문이 뒤따르는 사회 환경에서, 미국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 세력들이 중국의 위험성을 부각시키기 시작했고 자연히 여론도 '그래도 중국보다는 미국이 낫다' 쪽으로 돌아가게 됐다는 주장이었다.
  
독도 영유권 문제에는 사활을 거는 듯 했던 현 정권이 동북공정을 두고는 "외교적 대응을 할 문제가 아니다"란 반응을 보이자, 당장 한나라당에서 "중국은 자주국방의 대상이 아니냐"고 반격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한미동맹의 약화를 우려한 세력들의 '반중(反中)감정' 자극 행태는 역사학계의 실권 싸움과 맞물려 파급력을 더하게 됐다. <동북아 역사재단>에 흡수통합된 <고구려 연구재단> 인사들이 보수 언론을 매개로 고구려사 연구를 등한시한 정부를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양 재단과 무관한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를 '학계 내 헤게모니 싸움'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고구려사를 전공한 한 역사학자는 "<고구려 연구재단>의 편입 과정에서 입지가 위축된 고대사 연구자들이 대대적으로 정부 비판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고, 비교역사를 전공한 다른 학자도 "<동북아 역사재단>을 둘러싼 학계 싸움이 보수 언론의 정권 때리기와 결합됐다"며 "<고구려 연구재단>이 해체되지 않았더라면 마치 동북공정에 대한 명답을 내놓을 것처럼 언론플레이를 하지만 거기에도 고구려사 연구자는 한 명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흥분은 금물…학계도 '임기응변'보단 '기본기' 길러야"
  
이처럼 동북공정이 의도적으로 부풀려져 불필요한 사회적 우려를 사고 있는 측면이 적잖음에도 '그렇다면 손놓고 두고 보자는 말이냐'는 반론은 가능하다. 전문가들 역시 2004년 큰 논란을 겪었음에도 '두 차례 토론회' 외엔 별다른 대책을 세워놓지 않은 정부를 칭찬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당시 '공분'이 그저 '흥분'에 그쳤을 뿐 생산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던 점을 돌아보며 강경대응 이상의 성숙한 대응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이욱연 서강대 중문학 교수는 "중국과 비교해 우리는 훨씬 작은 나라인데 중국과 같은 식으로 부딪혀서는 해결할 수가 없다는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며 "우리 안에서만 통용되는 민족주의적 논리로 우리끼리 흥분과 진정을 거듭하기 보다는 차분하게 주변 나라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임기환 교수는 "2년 전에 비해 정부든 학계든 한 게 없다는 질책은 달게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학술적 대응을 하기 위해서는 중국이 하는 얘기를 반박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 스스로 논리를 전개해 나가고 심화시켜 나가는 노력이 필요한데 고대사에 관한 우리 학계의 기본기가 자체가 약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고구려사 연구가 중국의 논리보다는 한 단계 위에 있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판단이었다. 학문적 견지에서 중국 쪽의 주장이 합리적이 못하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지적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금부터라도 학계가 성실히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를 진행한다면 국제적 공감대 아래 우리의 역사를 지킬 수 있다"며 과도한 우려를 재차 경계했다.

(프레시안 / 이지윤 기자 2006-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