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서…베트남에서…한계 드러낸 ‘미국식 전쟁’

2003년 5월 1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에서 “이라크에서 주요 전투작전은 끝났다. 우리는 위대한 승리를 거뒀다”고 선언했다. 이라크전 개시 불과 40여 일 만이었다. 일부 군사전문가는 이라크전을 1940년 독일 전차부대의 전격전(blitzkrieg) 이래 전쟁사를 새로 쓸 ‘속전속결의 정밀한 승리’라고 일컬었다.

2006년 9월 1일. 미 국방부는 이라크 현황 보고서에서 “이라크 내 폭력사태는 분쟁의 핵심이 종전 수니파 저항세력의 무력투쟁에서 소수 수니파와 다수 시아파 간 종파 분쟁으로 옮아가며 내전의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는 최근 3개월 동안 이전 같은 기간에 비해 공격이 15% 늘어났고 이라크인 사상자 수도 51%나 늘어났다고 덧붙였다.

미군은 신속한 승리 이후 3년여 동안 추락을 거듭해 왔다. 미군 내에선 벌써부터 실패의 원인을 충분한 병력을 보내지 않은 민간인 출신 국방부 관료와 언론의 부정적인 보도 여파 등에서 찾으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기사도 나온다.

그러나 이라크전의 실패는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대규모 전쟁에만 의존하고 비정규 게릴라전을 혐오하는 미국식 군사전략 문화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주장이 미군 내부에서 나왔다.

제프리 레코드 공군대학 교수는 1일 발표한 ‘미국식 전쟁-반군 소탕전의 문화적 장벽’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미국이 베트남전 이래 계속해 온 실책을 되풀이하고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미국식 전쟁의 특징이 생겨나게 된 지리적 역사적 문화적 요인을 열거한 뒤 두 가지 대표적 특징으로 △전쟁과 정치를 분리하려는 성향 △반군소탕전에 대한 기피를 꼽았다.

우선 ‘군-정 분리’ 성향은 전시 군사작전에서 정치적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승리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문화를 낳았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유명한 ‘전쟁론’에서 “전쟁은 정치의 수단”이라고 했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

6·25전쟁 당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정치권의 확전 우려에도 불구하고 “신속한 종전을 위해 중국을 폭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나, 윌리엄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이 “베트남전 패배는 정치인들의 실책 때문”이라고 비난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또 화력(火力)과 첨단기술에 대한 미군의 맹신은 반군 소탕전 같은 ‘전쟁이 아닌 다른 군사작전(MOOTW·military operations other than war)’을 기피하는 문화를 키워 왔다. 그 결과 미군은 ‘전투(campaign)에서 승리하고 전쟁(war)에선 패배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른바 ‘와인버거-파월 독트린’ 역시 미군의 게릴라전 기피 성향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캐스퍼 와인버거 전 국방장관과 콜린 파월 전 합참의장은 “군사력은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하며 일단 사용한다면 압도적 무력으로 결정적 승리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군은 베트남전의 뼈아픈 경험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전에서도 주민보호 작전보다는 무력에만 의존하는 수색·섬멸 작전(search-and-destroy)으로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게 레코드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과 일본에서의 극히 예외적인 성공을 제외하고는 베트남, 소말리아, 아이티, 발칸반도에서 미군은 번번이 소규모 제한전에서 실패했다”며 “미 외교정책은 이런 현실을 무시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 이철희 기자 2006-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