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맥은 중국민족" 한민족 조상까지 왜곡

요즘 한국 TV에선 고구려 드라마가 뜨고 있다. 그 덕에 주몽.연개소문 등 고구려의 주인공들이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만큼 친숙한 인물이 됐다. 중국에서도 고구려가 관심사다. 각종 논문과 토론회에서 고구려를 거론한다. 고구려가 중국 역사의 일부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2년 전인 2004년 8월 23일 한.중 외교당국이 고구려 역사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5개 항의 '구두 양해'에 합의했지만 중국은 아직도 '동북공정'에 매달리고 있다.

◆ "예맥족도 중국 민족" = 중국 사학자인 왕원광(王文光.윈난대 서남변강소수민족연구센터 연구원)은 지난해 펴낸 '중국민족발전사'라는 책에서 "예맥족(濊貊族)도 중국 민족"이라고 주장했다. 예맥족의 일부는 나중에 부여.고구려.옥저.동예를 세운 부여족이 된다. 우리 민족의 직계 조상인 셈이다. 그런데도 왕원광은 "지금까지는 옛 만주지역 내 3개 민족(예맥.숙신.동호 계열) 가운데 숙신(여진.만주족)과 동호(거란.선비족)만 중국 민족으로 간주했으나 사실은 예맥족도 중국 민족"이라고 주장했다. 왕은 그 근거로 "부여족 가운데 대부분은 고구려.발해.거란.여진.한족으로 융합됐고, 일부만이 고구려를 거쳐 한반도로 들어가 오늘날의 한민족이 됐다"(314쪽)는 점을 내세웠다. 예맥족의 일부가 한족에 흡수됐으니 '예맥족=중국 민족'의 등식이 성립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예맥계의 부여.고구려.옥저도 중국 민족으로 분류했다.(280쪽, 313~315쪽)

헤이룽장(黑龍江)대학의 왕젠중(王建中) 교수도 2004년 편찬한 '동북지구 식생활사'를 통해 "부여는 중국 동북지구에서 가장 먼저 문명시대를 연 소수민족 정권"이라고 못박았다. 부여조차 중국 고대사의 일부로 간주한 것이다.

중국의 주요 논문, 특히 고대사와 관련된 논문은 국무원 문화부와 국가신문출판총서의 허가나 묵인 없이는 출판이 어렵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들 학자의 주장은 학자 개인의 입장이라기보다는 중국 당국의 견해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정부 차원의 집요한 노력 = 창바이산(長白山.한국명 백두산)보호개발구관리위원회는 지난달 6일 홈페이지를 통해 "중국은 지금까지 모두 33건의 문화유산을 세계유산위원회에 등록해 이 부문에서 이미 세계 3위에 올라 있다"고 언급하고 "창바이산을 세계 유산으로 등록하려는 노력을 한층 더 조직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창바이산관리위원회는 지린(吉林)성 지도부가 유네스코 중국위원회와 적극 협력할 것을 요청했다. 중국은 창바이산을 내년 2월 1일까지 세계유산 후보로 신청할 계획이다.

중국은 발해(渤海)의 수도였던 상경용천부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헤이룽장성 인민대표대회(의회)는 6월 9일 상경용천부 유적을 보호하기 위한 조례를 통과시켰다. 유적에 대한 촬영도 중앙정부의 허가 사항으로 규제를 강화했다.

중국은 랴오닝(遼寧).지린.헤이룽장 등 동북 3성 지역에 대한 지원도 확대하고 있다. 이 지역을 발전시켜 한반도와의 관련성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동북 3성은 7월 17일 공동 입법 체제에 합의했다. 매년 연말 각 성의 법제 관련 책임자 회의를 열어 입법 협력 항목을 설정하고 한 해 한두 차례 실무회의를 통해 공조하기로 한 것이다.

중국과 비교하면 우리측의 활동은 소극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정쟁 때문에 국회가 13개월이나 허비한 끝에 지난 5월 '동북아역사재단특별법'을 통과시킨 게 고작이라고 학계에서는 비판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이 백두산을 세계유산으로 단독 등록하기 전에 북한과 손잡고 공동 등록하는 등 적극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징=진세근 특파원, 서울=장세정 기자>

◆ 한.중 5개 항 구두양해 =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촉발된 역사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2004년 8월 23일 양국이 5개 항에 합의했다. 1, 2항은 역사문제로 한.중 우호 관계의 손상을 방지하고 동반자적 발전에 노력한다는 내용이다. 3항은 고구려사 문제의 공정한 해결을 도모하고 정치 문제화를 막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4항에서는 중국이 고구려사 관련 기술에 대한 한국 측의 관심에 이해를 표명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5항에서 양측은 학술교류의 조속한 개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고, 이에 따라 지금까지 두 차례 학술교류가 있었다.

(중앙일보 2006-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