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칼럼] 백성은 하늘이거늘…

‘바다이야기’ 때문에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잘잘못은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으니 곧 밝혀지리라 믿는다. 하지만 사태의 진행 과정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심경은 착잡하기만 하다. 마치 제동장치가 듣지 않는 정비불량 차량에 몸을 실은 것처럼 불안하기 짝이 없다.

도박게임장이 주택가에까지 창궐하고, 경품용 상품권이 연간 60억장(30조원어치)이나 시중에 나돌도록 정부와 관계 기관들이 방임해왔을 뿐 아니라 업자들과 뒷거래를 해온 의혹까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 마당에 게임산업은 ‘근절’보다는 ‘육성’이 중요한 것으로 생각했다는 어느 당국자의 해명은 기가 막힐 따름이다. 겉만 번지르르하게 치장했을 뿐 속은 사행성 도박게임인데, 이를 북돋아줘야 할 산업으로 여겼다니 도대체 그들은 무얼 하는 사람들인가.

옛 성현의 이런 말씀이 생각난다. “군자의 하늘은 백성이고 하늘은 백성을 통해 듣고 보고 심판한다. 하늘은 말이 없고 도(道)는 보이지 않는다.” 군자는 하늘처럼 백성을 받들어야 하고 그러지 못할 경우 말이 없고 보이지 않는 하늘이 백성을 통해 보고 들은 후 심판한다는 말이다. 군자의 머릿속엔 만이면 만, 천이면 천이 다를 수 있는 백성들을 모두 하늘처럼 받들겠다는 생각으로 늘 꽉 차 있어야만 한다는 뜻으로, 위정자들이 깊이 새겨들어야 할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군자로 자처하는 사람들, 지도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야망을 위해 소수 지지자들의 호응만 믿고 자기대로의 길만을 고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다 보니 곳곳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민심은 집권층에 등을 돌리고 있다.

광화문과 종로에선 하루가 멀다고 머리띠를 한 채 원색으로 물들인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나이 든 분들, 젊은이들의 인파로 난리법석이다.

이들은 왜 길거리에서 반대와 찬성을 목청껏 외치는 것인가.

내용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이 이념을 밑에 깔고 있는 정치게임의 이슈들이다. 이런 사안이 쟁점화하면서 국론은 쪼개지고 감정대립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의 친구는 누구이며 적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혼란이 커지고 있다.

그간 양극화 문제를 비롯한 주요 현안에 대해 정부와 청와대가 내놓는 처방에도 걱정스러운 점이 적지 않다. 양극화를 해소한다면서, 한편으론 있는 자가 20%이고 없는 자가 80%라고 구분하며 강조하는 저의는 무엇인가. 대립을 조장하는 것은 아닌가. 군의 전시 작전통제권 조기 환수 문제나 미국과의 FTA(자유무역협정) 협상, 사학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의 저변에도 이념 문제가 내재돼 있다. 온 국민에게 진보냐 보수냐를 선택하도록 요구하는 줄세우기가 심화되는 양상이다. 이 같은 갈등 확산의 저변에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보혁투쟁을 강화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국가적 명운이 걸린 사안을 이념논리의 색안경을 끼고 접근하다 보면 국익이나 현실적 대안은 무시되기 십상이다. 갈등과 분열의 와중에 국력의 낭비와 누수현상은 심각한데, 이를 조정하고 합의를 끌어내려는 위정자들의 노력은 미미한 형편이다. 이로 인한 국정의 파탄은 사회통합의 실패와 백성의 궁핍화로 이어질 게 뻔하다.

대체 누가 이 일을 수습해야 하나.

백성의 어버이로서, 오늘날의 구호대로라면 ‘국민의 머슴’으로서 대통령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이 같은 역할과 사명을 외면할 경우 노무현 대통령의 머릿속엔 백성은 없고 오직 내년 말 선거에서의 정권 재창출에 골몰한 게 아닌가 하는 비난을 자초할 수 있다. 국민의 화합, 나라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앞장서야 할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실패한 지도자’가 되지 않으려면 노 대통령은 부디 남은 임기 동안이나마 민심을 깊이 헤아리고 백성을 편하게 하는 시책에 온 힘을 쏟아주기 바란다. “하늘은 백성을 통해 듣고 보고 심판한다”는 성현의 가르침을 되새겨주기를 거듭 당부한다.

(세계일보 / 김병수 편집인 2006-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