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계산된 ‘파시즘과의 전쟁’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과 집권 공화당이 최근 들어 ‘테러와의 전쟁’을 ‘파시즘(Fascism)과의 전쟁’으로 몰아가고 있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29일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를 방문, 참전용사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현재의 테러를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이라고 지칭하면서 부시 행정부의 대테러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1930년대 나치 정권을 포용하려 했던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우리는 1930년대와 비슷한 위협에 또다시 직면해 있다”면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유화정책으로 나치 정권을 포용하려다 실패한 것과 같은 실수를 또다시 반복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럼즈펠드 장관은 이어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역사의 교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부시 행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무엇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는지에 대해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 혼란상태에 빠져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부시 대통령도 영국에서 미국행 항공기 폭파테러 모의가 적발된 직후 “자유를 사랑하는 우리와 미국을 파괴하려는 ‘이슬람 파시스트’가 전쟁중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또 릭 샌토럼 공화당 상원의원(펜실베이니아)은 28일 세계 2차대전과 현재의 ‘이슬람 파시즘과의 전쟁’ 사이에는 여러 국가에서 공통의 적과 싸워야 하는 공통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부시 행정부의 이같은 잇따른 파시즘 발언은 ‘9·11테러’ 5주년과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과 무관하지 않다. ‘9·11테러’ 5주년이 다가옴에 따라 또다시 고조되고 있는 이라크전쟁에 대한 비판 여론을 잠재우지 못할 경우 중간선거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자신들이 민주당에 비해 우위에 있다고 믿는 안보현안에서 유리한 고지를 계속 점하기 위해선 여론의 질타를 받는 현재의 전쟁 개념을 새롭게 윤색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파시즘’이라는 극단적 용어를 동원한 것으로 풀이된다.

1차 세계대전 후에 나타난 극단적인 전체주의적·배타주의적 정치 이념인 파시즘은 자유주의를 부정하고 폭력적인 방법에 의한 일당 독재와 국수주의·군국주의를 바탕으로 침략 정책을 옹호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스티븐 웨인 조지타운대학 행정학 교수는 AP통신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시스트라고 하면 나쁘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그 형태가 어떻든 부정적”이라면서 “상대방을 악마처럼 만들려면 최대한 강경한 용어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퓨 리서치센터의 여론조사가 앤드루 코헛은 “파시스트라고 하면 2차 세계대전이 연상되기 때문에 미국인들에게 근본주의 국가들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없다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찰스 블랙 공화당 고문은 “현재의 테러리스트들은 오합지졸이 아니며 세계를 전복시키려는 계획을 가진 사람들”이라면서 “그런 테러리스트에 대항해 우리가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데엔 파시즘이라는 용어가 적절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시 파시즘을 꺼낸 데 대해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란 언론들이 부시 대통령을 ‘21세기 히틀러’로, 토니 블레어 영국 수상을 ‘21세기 무솔리니’라고 비난하고 미국내 회교도들이 비난성명을 내는 것은 물론 미국 민주당도 즉각 반박했다.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은 “이 나라를 어떻게 보호하는 게 최선인지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사람은 럼즈펠드 장관이 유일하며 이는 그가 왜 물러나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라고 비판했다. 잭 리드 상원의원도 “그의 무능력을 은폐하기 위한 정치적 폭언”이라면서 “럼즈펠드 장관보다 더 역사를 오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 수사학 전문가인 웨인 필즈 워싱턴대학 교수는 “부시 행정부는 전형적으로 팝문화에서 어휘들을 찾아내고 있다”면서 “그들은 그런 용어들의 실제 의미에 대해선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널리 확산되기를 바라는 무엇인가를 찾아내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 정동식 특파원 2006-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