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숙인 여권..`릴레이 사과' 배경

민심수습 및 정기국회 앞둔 국면전환 포석

`바다이야기 파문'과 관련해 여권이 29일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한명숙(韓明淑) 총리가 정부를 대표해 대국민 공개사과를 한데 이어, 여당의 김근태(金槿泰) 의장도 의원총회 석상에서 공식 사과했다.

여기에 파문의 핵심 당사자 격이면서 한동안 두문불출해온 문화관광장관 출신의 정동채(鄭東采) 의원도 이날 국회 기자실을 찾아 "국민께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고 당직을 사퇴했다.

국정 최고책임자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을 뺀 당.정 수뇌부와 핵심 당사자가 일제히 보조를 맞춰 `릴레이 사과'를 한 셈이다.

이날 한 총리는 국무회의를 주재하기 직전 일어선 채로 "사행성 게임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무엇보다 서민생활과 서민경제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했으며, 이로 인해 국민 여러분이 겪은 고통과 심려에 대해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는 내용의 대국민 사과문을 읽어내려갔다.

한 총리는 특히 낭독 직전과 직후 두 차례에 걸쳐 깊숙이 고개를 숙임으로써 공식적인 대국민 사과의 형식을 갖췄다.

김 의장은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집권여당 당의장으로서 국민 앞에 정중히 머리숙여 사과한다"며 "마땅히 점검해야 할 정부의 정책을 점검하지 못했고 견제하지 못해 비극적인 국민적 사건을 만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이어 "정부에 대한 책임 추궁이 국회 몫이지만 국회 스스로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으면 책임져야 한다"며 "이번 사건에 어떤 면죄부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여권의 이런 움직임은 무엇보다도 이번 파문에 따른 민심 이반이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는 상황인식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체적 진실 여부를 떠나 여권실세 연루설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여권 전체에 대한 부정적 정서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탓이다.

이에 따라 여권 실세 또는 친.인척 연루 사실이 없다는 쪽에 대응의 초점을 맞춰온 여권은 정부의 정책적 오류에 대해 분명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 가는 자성의 태도를 보이는 쪽으로 스탠스를 바꿨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보다 결정적인 요인은 정기국회를 앞두고 수세국면을 반전시키려는 포석이 깔려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있게 대두되고 있다.

야당의 정치공세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흐름이 이어진다면 정기국회 초반부터 기선을 빼앗길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 `분위기 전환'을 노리고 있다는 것.

이런 맥락에서 여권은 8월 임시국회 종료일에 맞춰 당.정 수뇌부가 일제히 사과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정기국회 시작에 앞서 이번 파문에 따른 여권 전체의 부담을 털고 가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여권이 이날 당내 인사 연루사실이 드러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벌하는 `읍참마속'의 자세를 강조하는 동시에, 야당을 향해 의도적으로 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인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한 총리는 이날 대국민사과에 이어진 모두발언을 통해 최근 이종석(李鍾奭) 통일부 장관을 겨냥한 한나라당 김용갑(金容甲) 의원의 `세작'(細作) 발언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인격모독의 폭언"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김 의장은 "그럴 일은 없겠지만 당내 인사와 관련해 비리.부패와 관련된 사실이 밝혀지면 분명하고 철저하게 조치하겠다"며 "불가피하면 읍참마속의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한 뒤 한나라당을 겨냥, "책임져야할 의원들이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속기록 통해 사실로 확인되고 있는데, 한나라당에 그런 의원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여권의 총체적 사과는 노 대통령 대국민 사과 문제를 내부에서 일단 정리했다는의미도 함께 갖고 있다. 지난주 초 처음으로 정부와 대통령의 사과 문제를 제기했던 우리당측은 노 대통령의 사과 대신 한 총리와 여당 의장의 집단 사과 형식을 취함으로써 당.정.청간 한발짝씩 양보하는 모습을 연출해 냈다는 것이다.

다만 감사원 감사와 검찰 조사가 마무리 된 이후 조사 결과에 따라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 다시 한번 대국민 사과를 할 가능성은 여전히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연합뉴스 / 노효동, 송수경 기자 2006-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