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스크 시각> 도박 권하는 정권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용의 ‘목민심서’에는 당시 도박 풍속도에 대해 다룬 대목이 있다. 조선시대 도박의 종류에는 바둑, 장기, 척사, 쌍륙,
투전, 장패 등이 있었다고 한다. 바둑이나 장기, 척사 등은 전통놀이로 특별히 문제되지는 않았지만 중국에서 도입된 투전이나 쌍륙, 장패 등은
조선후기 사회문제가 될 정도로 유행했다고 한다. 조선시대판 ‘바다이야기’인 셈이다.
이같은 도박을 하다가 적발될 경우 대명률에 따라 중한 범죄에 해당돼 ‘장(杖) 80대’에 처해졌다. 이 책에 따르면 당시 도박 은 일반
서민들은 물론 정승, 승지들까지 번져 심각한 사회문제 가 됐다고 한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도박이 유행하면 그 사회가 건전하지 못하고 한탕에 의존하는 사람이 많다는 방증이다. 정상적인 생활이 사회적으로
정당한 보상을 주지 못하거나, 빈부 격차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면 대박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더욱이 국가가 이를
조장하고 합법적으로 보장해준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시내 중심가, 주택가, 농어촌, 섬 할 것 없이 전국에 걸쳐 두 집 건너 한 집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바다이야기, 황금성 등 사행성
오락장은 손댈 수 없을 정도의 ‘괴물’이 되어 버렸다.
영화 ‘괴물’에서 한강의 물고기가 미군 부대에서 불법 방류된 ‘포르말린’을 먹고 괴물이 되듯이 바다이야기 등도 경품용 상 품권이 허용되면서
급속도로 확산됐다.
2004년 12월 바다이야기가 영상물등급위원회를 통과하고, 경품용 상품권에 대한 인증제가 도입되면서 4000억원 규모에 머물던 상품권
시장이 30조원으로 급팽창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곳곳에 바다이야기, 황금성 등 사행성 오락실이 생겨났고 신문과 방송에서 그 문제점을 수차례
지적했다. 필자도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로부터 바다이야기가 도대체 뭐하는 곳이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지난해 5월에는 시민단체인
흥사단에서 감사원에 상품권 문제와 관련해 국민감사청구까지 했다. 최근 법원 판결로 알려졌지만 이들 바다이야기 업소의 경우 100대의 기계를
차려놓은 업체에서 월평균 30억~4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순이익만 3억~4억 에달했다고 하니 불황기에 이같은 ‘블루오션’도 없을 것이다.
언론과 시민들이 그 심각성을 다 알고 있었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며칠전 여당의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도둑 맞으려니까 개 도 안짖는다”고
말했다. 개는 이미 오래전부터 목이 아프도록 짖고 있었는데 청와대에서만 못 들었다는 것인가. 고건 전 총리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청와대,
문화관광부, 국회, 감사원, 경 찰, 정보기관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작동했다면 서민의 돈을 털어내고 가정을 파탄내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가 1997년 수많은 국민들에게 좌절과 아픔을 안겨준 국제통화기금(IMF)사태와 비교되는 것도 이때문이다. 당시 주요 정책책임자들이 대법원에서 ‘정책적 판단은 사법심판의 대상이 아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아 면책됐기 때문에 이번 사건도 정책책임자들은 면피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사태가 터지자 정부 부처들은 앞다퉈 “이미 보고를 했다”고 변명에 급급해하는 실정이다.
단순비리사건보다 정책실패가 가져오는 폐해는 IMF 사태에서 보듯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임기내 우리 경제의 큰
틀을 바꿀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과연 이 정부에 믿음을 줄 수 있을 지 걱정스럽다.
(문화일보 / 이현종 정치부 차장 2006-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