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균형자론’ 외친 노무현, 단순 ‘한미강화’로 후퇴 중?

북핵문제와 거듭되는 북미의 대립, 중국의 부상과 미중의 갈등과 협력, 일본의 보수우경화와 ‘보통국가’론, 북한을 ‘악의 축’으로 보는 미국과 ‘햇볕정책’을 추구하는 한국의 괴리... 요동치는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작전권 환수와 연결되는 전략적 유연성과 한미 FTA 논란까지 노무현 정부는 어떤 선택을 해왔던 것일까.

이와 관련 강태호 한겨레신문 통일팀장은 현재 전략적 유연성과 한미FTA로 나타난 노무현 정부의 대미정책은 단순한 한미동맥의 강화가 아닌 ‘노무현 독트린’의 ‘수정’ 또는 ‘좌절’된 결과라고 주장했다.

참여정부는 단순히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한미 관계를 넘어서 동북아 협력을 포괄하는 대미정책을 지향했지만 현실적 조건의 악화로 불가피하게 한미동맹 강화로 후퇴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 흐름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 전략적 유연성과 한미FTA라는 것이다.

이는 한미동맹보다 포괄적인 상위의 개념인 ‘한미관계’에서 접근해야 하는 문제로 탈냉전이라는 시간과 동북아라는 공간속에서의 변화에 대한 요구에서 출발한다. 강 팀장은 전략적 유연성과 한미FTA 를 둘러싼 문제는 일방주의 외교를 일삼는 부시행정부와 어떤 수준에서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가 핵심 쟁점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북핵 올인’이 아니라 북핵에 ‘올아웃’ 당했다”

▲ 창작과 비평은 가을호(133호)에서 ‘미국이라는 우리의 난제’ 특집을 마련했다.  
강 팀장은 최근 창작과 비평 가을호(133호)에 게재한 ‘변화하는 한미관계와 노무현 독트린의 운명’이라는 기고문에서 한미FTA와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둘러싼 비난과 비판보다 노무현 정부의 ‘누가 해도 힘든 대목’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노무현 정부가 처한 외교적 상황과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짚어나갔다. 창작과 비평은 이번호에서 ‘미국이라는 우리의 난제’ 특집을 마련했다.

우선 노 정부가 처한 현실적 상황으로 강 팀장은 동북아 공간 속에서 변화하는 한미 관계와 북핵을 둘러싼 이중의 위협 등을 꼽았다.

“한미동맹관계는 동북아라는 공간과 탈냉전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고 있으며,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며 그는 “한미관계의 상호작용은 동북아라는 시간과 공간의 축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동북아 배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동북아는 지역협력·통합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동시에 갈등과 긴장국면이 연속되거나 중첩되고 있다. 이 속에서 한미 관계도 탈냉전과 새로운 위협에 대응한 동맹의 강화라는 모순된 두 흐름 속에서 폭과 속도를 더해가며 충돌하는 상황이라는 것.

또한 동북아 안에 미국이 존재한다는 것은 현실의 문제로 “동북아나 한반도의 문제가 미국을 배제한 채 해결될 수 있다거나, 미국을 배제하면 동북아 지역협력이 이루어진다는 인식은 비현실적이고 관념적이다”고 지적했다.

특히 북핵 문제를 둘러싼 노무현 정부의 이중의 위협에 대해 강 팀장은 주목했다. 동맹을 무시하는 부시행정부의 일방주의 외교와 북한의 핵개발 사이에서 동맹으로부터의 위협과 동맹에 대한 위협이라는 안과 밖으로부터의 ‘이중의 위협’에 있다는 것.

때문에 서동만 상지대 교수(전 국정원 기조실장)의 “북핵 문제에 ‘올인’하다가 거꾸로 한미관계에 대한 종합적 대응을 못했다”는 비판에 대해 강 팀장은 “한반도의 현실에서 그것이 (북핵문제) ‘올인’하거나 그러지 않을 수 있는 선택의 문제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핵과 미사일은 북한이 한묶음으로 내세운 카드로 노무현 정부에겐 계속되는 위협이었고 핵과 인권문제 등은 북미관계의 협상용 카드일지 몰라도 노무현 정부에겐 딜레마였다고 반박했다.

강 팀장은 “북핵이 노무현정부의 대외정책을 ‘올아웃’ 시켰다고 봐야 한다”고 서 교수의 ‘올인’ 발언을 되짚었다.

혹독한 ‘안보의 IMF’ 속에서 모색한 ‘균형적 실용 외교’

▲ 노무현 정부 들어 3년여동안 진행된 동맹재편 과정은 ‘안보의 IMF’로 할 만큼 혹독한 것이었다. 지난해 10월 21일 도날드 럼스펠드 미 국방부 장관과 윤광웅 국방부 장관이 국방부에서 한미안보협의회의(SCM) 를 갖은후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자료사진). ⓒ 데일리서프라이즈 
강 팀장은 노무현 정부 들어 3년여동안 진행된 동맹재편 과정은 ‘안보의 IMF’로 할 만큼 혹독한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와관련 한미 양국은 지난 1월 19일 제 1차 ‘한미동맹 동반자관계를 위한 전략대화’에서 필요시 주한미군을 한반도 이외의 지역에 투입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하기로 합의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전시 작통권 환수는 전략적 유연성 합의의 연장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강 팀장은 “김대중 정부가 IMF 경제위기에서 신자유주의를 거부하지 못했듯이, 노무현 정부도 동맹을 거부하지 않고 동맹의 일방적 ‘위협’ 앞에서 비슷한 궤적을 따라갔다고 비판할 수 있다”며 “그러나 한국이 두손 들고 굴복한 것은 아니었다”고 현 정부의 ‘균형적 실용 외교’ 정책을 짚어나갔다.

균형적 외교란 ‘가치와 국익’ ‘동맹과 다자협력’ ‘세계화와 지역화’ ‘국가와 국가’간의 균형을 의미하며, 실용주의 외교란 한반도 평화와 안정과 같이 설정된 국가안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술선택에서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

강 팀장은 “정부는 이 ‘균형적 실용외교’의 바탕 위에서 한편으로는 동맹관계를 재조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는 동시에 한일, 한중 관계를 전면적인 협력적 동반자관계로 격상시키겠다는 방침이었다”고 말했다.

동북아시아 차원의 지역협력, 나아가 다자안보적 질서를 통해 한반도 냉전해소와 남북 화해협력를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교는 진보, 보수 양쪽에서 공격을 받았다. 보수는 한미동맹 훼손, 반미로 공격했고 진보는 박정희식 자주국방과의 차이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강 팀장은 “노무현 정부의 균형적 실용외교가 동북아균형자론과 한미동맹 ‘강화’ 사이의 모순을 회피하는 장치로 작용했다”며 “동맹을 거부할 수 있는 현실적 힘이 존재하지 않는 한, 또 동맹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단계에서 ‘전략적 모호성’은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독일이 되지 못한 일본, 프랑스가 되지 못한 한국

▲ 지난 2004년 12월 6일 노무현 대통령이 소르본느 대학에서 ‘유럽통합과 동북아시대’의 주제로 강연했다. ⓒ 청와대 
이러한 노무현 정부의 외교정책은 2004년 이라크 파병 문제를 마무리 짓고 본격적인 외교장정에 나서면서부터 제 모습을 드러냈다.

노 대통령은 2004년 하반기 4개월에 걸쳐 모두 3개 대륙 11개 국가를 방문했다. 그해 12월 6일 프랑스 소르본느 대학 연설에는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 구상 핵심이 반영돼 있다.

노 대통령은 유럽 통합에서 제국주의시대의 양육강식·극단대립을 극복한 EU와 유럽통합을 주도한 프랑스의 역할에 주목했다.

프랑스는 전쟁의 고통을 받은 국가이면서도 독일을 포용하는 도덕적 결단으로 과거를 청산했으며, 강대국이지만 이웃나라에 불안감을 주지 않으면서 유럽통합을 주도했다. 노 대통령은 한국이 동아시아에서 프랑스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중요한 국가목표로 설정된 개방적 통상국가는 이듬해 1월 선진경제론으로 드러났으며 한미 FTA 추진에 적용됐다.

그러나 한국이 프랑스가 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의 독일’ 같은 일본이 필요했다.

독일은 주변국들로부터 독일통일을 인정받는 대신 이들의 우려를 받아들여 프랑스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동서통일과 유럽통합의 동시병행 전략을 택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노 대통령은 대일 비판에서 자주 독일의 예를 들었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한일관계는 ‘각박한 외교전쟁’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 점에서 강 팀장은 “노무현 독트린의 수정이라기보다 좌절로 봐야 할 것”이라며 “일본이 독일처럼 과거사를 반성하고 지역협력의 외교노선을 추진하지 않는 한, 한국이 프랑스의 역할을 수행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고 한계점을 지적했다.

또한 한미FTA와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한 최근의 흐름은 동북아시대의 지역협력이라기보다는 한미동맹 강화로의 후퇴라고 평가했다.

노 대통령, 차베스도 고이즈미도 아닌...

변화하는 동북아 질서 속에서 노무현 정부는 어떤 길을 갈 것인가.

노 대통령은 ‘미일동맹 강화’를 선택한 고이즈미의 길도 반미자주 노선을 택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의 길도 선택하지 않았다.

동북아 질서는 일정기간 미국의 패권적 우위가 지속되면서 미일동맹이 힘의 축이 될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미중간의 갈등과 협력 구도와 미국을 대리하는 일본-중국의 패권경쟁이 또 다른 축을 형성할 것이다.

이 속에서 한국은 ‘한·미·일’ 삼각구도를 복원해 미국의 패권구도에 편승할 수도 있지만 노 대통령은 이를 분명히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강 팀장은 전망했다. 미국에서 볼 때 한일 역사문제는 이 삼각구도 형성의 장애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강 팀장은 “노 대통령은 일본과의 각박한 외교 전쟁을 선언했고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서 보여주었듯이 미일 동맹과 대중관계에서 양자택일을 회피하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다”며 “미일동맹을 통한 중국봉쇄엔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강 팀장은 한중일의 협력으로 새로운 질서를 보여주지 못하는 한, 일본-중국의 패권적 양상이 지속되고 동북아 협력이 나아가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는 한,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과 동북아 시대의 비전은 동맹의 틀을 넘어서지 못한 채 위태로워 보인다고 ‘노무현 독트린’의 운명을 내다봤다.

(데일리 서프라이즈 / 민일성 기자 2006-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