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총리, `바다이야기 사태` 대국민 사과

국무회의 앞서.. "정부 책임 통감"
"성역없는 수사로 의혹 해소할 것"


한명숙 국무총리는 29일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성인 오락게임 사태와 관련해 "정부의 책임을 통감하며 국민 여러분이 겪는 고통과 심려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며 철저한 수사를 약속했다.

한 총리는 이날 오전 서울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 앞서 대국민 사과문을 통해 "사행성 게임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무엇보다도 서민들의 생활과 서민경제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번 사태의 확산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사행성 게임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정부의 제도적 허점과 악용의 소지를 미리 대비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을 통감한다"며 '정부 책임론'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한 총리는 이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감사원 감사와 검찰 조사를 바탕으로 이 사안의 발본적인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한 뒤, "철저하고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한 점의 의혹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모든 잘못의 원인과 경과를 철저히 규명해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겠다"며 "범정부차원의 특별대책기구를 통해 사행성 게임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향후 대책도 언급했다.

한 총리는 끝으로 "국민여러분, 다시 한번 거듭 사과드린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는 건전한 서민생활과 사회를 위협하는 사행성 게임이 다시는 이 사회에 발 붙이지 못하도록 하겠다"며 머리를 숙였다.

(이데일리 / 박기수 기자 2006-8-29) 

‘바다’에 빠진 1년… ‘엘리트→낙오자’ 추락

도박중독자 300만명 시대… 서울대 출신 화이트칼라의 인생
작년 6월 오락실 첫 출입… 금세 2천만원이… ‘만회하자’ 사채끌어 9개월새 1억5천만원 날려
이젠 아내와 별거중… 친구들도 모두 떠나고 “곧 아이 돌인데 난 갈수가 없어… 죽고싶다”

엘리트 인생이 망가지는 데는 채 1년 반이 걸리지 않았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모 방송국에서 전문직으로 일했던 전모(36)씨. 공무원 아내와 곧 돌을 맞는 아들을 둔 전도유망한 젊은이는 ‘바다이야기’로 삶이 바뀌었다. 그는 “하루아침에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고 했다. 9개월 만에 1억5000만원을 날렸다. 집도, 가족도, 친구도 모두 잃었다.

작년 6월 회사 동료들과 재미 삼아 ‘바다이야기’를 찾은 게 화근이었다.

처음엔 낮에 일을 하다 자투리 시간에 2~3시간씩 성인 오락실을 찾은 게 전부였다. 한 달 후 200만원을 땄다. 이게 그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멍에가 될 줄이야…. ‘이거 괜찮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의 인생은 파멸하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두 대만 돌리던 바다이야기 기계는 세 대에서 네 대, 네 대에서 다섯 대로 늘었다.

이젠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자투리 시간에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 대부분은 성인 오락실에서 보냈다.

이렇게 한 달. 2000만원을 날렸다. 도박 중독자들이 미치는 순간이다. 전씨는 “사람들이 도박에 중독되는 가장 큰 이유는 ‘다시 만회하겠다’는 무모한 자존심 때문”이라며 “끊으려고 해도 자신이 쏟아 부은 돈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찾는다’는 욕심이 계속해서 사람을 붙잡는다”고 말했다.

유유상종(類類相從). 전씨는 ‘바다이야기’를 드나들면서 알게 된 사람들과 함께 도박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그는 “매일 앉아 있다 보면 성인 오락실 안에서 ‘형, 동생’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며 “자체적으로 네트워크를 구성해 ‘어디가 잘 터진다’, ‘어떤 도박이 어떻더라’ 등의 정보 교환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바다이야기’에서 만난 사람들과 성인 PC방, 하우스까지 드나들게 되면서 빚이 눈덩이처럼 불었다. 더 크고, 더 자극적인 도박판을 찾게 되면서 월급은 물론 적금까지 도박판에 쏟아 부었다.

급기야 작년 11월 부인 몰래 1억2000만원의 전셋돈까지 빼서 월세로 돌렸다. ‘큰돈이 있으면 더 크게 한몫 벌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몇 달만 정신차려서 도박을 하면 원래 가진 데에 몇 배를 덧붙여 나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몇 백만원은 솔직히 지금도 돈같이 안 보인다”고 털어놨다.

전씨는 있는 돈을 다 날리고 올해 2월부터는 사채까지 끌어다 썼다. 그는 “사채는 이자에 제한이 없어, 빌릴 때는 쉽지만 하루하루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고 탄식했다. “사채업자들의 독촉 전화로 결국 6월에는 직장에서도 이 사실을 알게 돼 결국 동료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해 그만두게 됐죠.”

이제 그의 주위에 남은 사람은 없다. 아는 사람이면 무조건 ‘급하다’며 몇 백만원씩 빌려다 썼다.

아내와는 지난 3월부터 별거 중이다. 현재 이혼 소송 중이지만, 남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내를 잡고 있다.

“아버지도 얼마 전 이 사실을 알고 쓰러졌다. 이젠 나에겐 가족도 없다”고 힘겹게 말을 이어가며 중간 중간 ‘죽고 싶다’는 말을 뱉던 그는 목이 메었다. “얼마 후면 아이 돌인데 그 자리에 나타날 수도 없다는 게 제일 가슴이 아프다….”

(조선일보 / 김현진 기자 2006-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