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5주년] 9·11은 세계화도 세상도 바꾸지 못했다

무역·인적 교류 충격 벗어나 더 활발… 국제정치 힘의 불균형은 되레 심화

9·11은 정말 세계를 바꿔놓았는가. 세계화는 멈추고, 국경통제는 기승을 부리며, 무역과 자본의 흐름이나 인적 교류는 우려했던 대로 과거의 일이 돼버렸나.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9ㆍ11 테러 5주년을 맞아 최신호(9, 10월호)에서 “9ㆍ11은 세계를 바꿔놓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급격한 충격에서 터져 나온 일시적인 착시일 뿐 세계는 9ㆍ11 이후에도 9ㆍ11 이전의 국제질서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포린 폴리시는 세계를 진정으로 바꿔놓은 변곡점은 9ㆍ11이 아니라 그보다 10년 전인 1991년 발생한 동구권의 몰락이라고 보았다. 9ㆍ11은 그 이후 10년 동안 ‘유일 초강대국’ ‘지구적 패권국가’의 지위를 누려온 미국이 야기한 불평등, 불균형이 마침내 폭발한 ‘비극적 현시(manifestation)’였다.

2001년 9월 11일 아침 미 국민이 받아 든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의 헤드라인은 ‘이스라엘군, 요르단강 서안지구 포위’ ‘과학자들, 줄기세포 공급 확대 촉구’였다. 5년 전 신문을 지금 다시 꺼내 읽는다고 해서 생소하다고 느낄 독자는 없다.

2001년 9월 10일 뉴욕 증시 종가는 9,605.51이었다. 증시가 재개장된 9월 17일 이후 이 지수를 회복하는 데는 40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2001년 600억달러였던 미국의 월 수출액은 작년 750억달러로 늘었다. 세계 교역량은 8조달러에서 9ㆍ11 직후 7조8,000억달러로 조금 줄었다 작년에는 무려 12조달러를 넘어섰다. 세계무역센터보다 더 높은 고층빌딩은 9ㆍ11 이후 14개가 새로 지어졌거나 건설 중이다.

9ㆍ11이 낳은 ‘요새화된 미국(Fortress America)’은 실체 없는 허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노동비자를 받아 미국에 들어온 사람은 닷컴 붐으로 해외인력이 가장 많이 쏟아졌던 98년보다 많았다. 지난해 학생비자를 받은 25만5,993명은 2002년보다 불과 541명이 적은 수치다. 지난해 미국 시민권을 받은 외국인은 98년보다 많았고, 이 수치는 2004~2005년 1년 동안 12%나 증가했다.

콘돌리사 라이스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국제정치의 지각판이 움직였다”고 충격을 표현했지만, 라이스가 그날 본 것은 10년 동안 축적돼 온 분노의 폭발일 뿐이었다.

9ㆍ11은 힘의 국제정치 지형을 바꾸지 못했다. 오히려 힘의 불균형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9ㆍ11로 정말 달라진 것은 미국 군비의 끝없는 확장이다. 미 국방비는 2001년 미국 다음으로 국방비가 많은 14개 국가의 국방비 합계와 비슷한 3,250억달러였으나 작년에는 이들 14개 국가 합계보다 1,160억달러가 더 많았다.

9ㆍ11 이후 세계는 살기 위험해졌지만 미국만은 예외였다. 2001년 9월 12일~2005년 12월 31일 전 세계 1만8,944명이 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미국 땅에서 죽은 사람은 8명에 불과했다.

(한국일보 / 황유석 기자 2006-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