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등 켜진 도박 공화국

“칠성파는 해운대, 신20세기파는 남포동, 영도파는…”

성인오락실 1만5천여곳, 성인피시방 4천여 업소 등 온나라 곳곳에서 청장년층은 물론 60대 노인까지 ‘일확천금’ 미끼를 내걸며 유혹하고 있다. 업소당 10명씩만 잡아도 하루 20만명이 사행성 오락으로 밤을 지새는 셈이다. 전국의 성인오락실과 피시방의 하루 판돈은 적게 잡아도 1천억원대에 이른다. 사회 양극화의 폐해를 자양분 삼아 ‘독버섯’처럼 확산되고 있는 불법 도박산업의 실태를 몇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영화 <친구>로 유명한 국내 최대 폭력조직인 부산 칠성파와 신20세기파는 물론, 서면파·유태파·영도파 등 부산 지역 주요 ‘조폭’(조직 폭력배)들이 성인오락실 사업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오락실 운영과 상품권 공급·환전, 오락기 제조 등 연간 수천억원대의 이권을 둘러싼 조폭들 사이의 피 튀는 싸움과 ‘상생’을 위한 합종연횡이 끊이지 않고 있다.

25일 부산경찰청 집계로, 현재 부산에는 성인오락실 809곳이 등록돼 있다. 하지만 부산지검은 이 오락실들 대부분이 불법영업을 하고 있으며, 등록되지 않은 것까지 합하면 부산지역에 1천여곳의 성인오락실이 성업 중이라고 보고 있다. 2003년 10월 <한겨레>의 ‘부산지역 성인오락실 검·경 상납비리 보도’와 뒤따른 검·경의 대대적 단속으로 부산 주요 지역 성인오락실들의 휴·폐업이 잇따른 지 3년 만의 일이다. 남포동의 오락실 업주 ㄱ아무개씨는 “성인오락실업은 2004년 여름부터 다시 살아나기 시작해 지난해 초엔 이전 수준을 완전히 회복했다”고 설명했다.

부산만 기업형 100여곳 직영, 오락상품권 환전 50% 차지

최근 잦아진 경찰의 단속을 비웃기라도 하듯, 부산·경남 곳곳에서 새로 문을 여는 오락실의 광고 펼침막과 전단지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국내 최대의 성인오락실 밀집지역인 남포동에는 1·2·3층에 오락기를 600대나 갖춘 초대형 성인오락실까지 개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특히 2005년 이후 성인오락실 시장엔 조폭들의 진출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해 이후 부산·경남의 도시지역에 새로 생긴 대형 오락실은 거의 조폭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게 검찰과 오락실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부산시내 성인오락실 가운데 칠성파·신20세기파·서면파·유태파 등 부산의 주요 조폭들이 직접 운영하는 오락실만 100여곳에 이르는 것으로 이들은 추산한다. 조폭의 직영 업소는 3년여 전 30~40여곳 수준에서 갑절 넘게 늘어난 셈이다. 단순히 보호비 명목의 금품을 갈취하던 수준을 벗어나 조폭들이 오락실·상품권 유통업을 직영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2년째 부산지검에서 조폭 수사를 맡아온 한 검사는 “‘조직’의 중간 보스급은 거의 다 불법 성인오락실을 운영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특히 이들 업소는 규모도 크고 위치도 좋은 ‘알짜’ 업소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남포동의 한 오락실 업주는 “칠성파는 해운대와 광안리, 신20세기파는 남포동, 영도파는 영도지역 등 조폭마다 자신들의 영역에서 오락실을 20여곳씩 운영하고 있고, 상품권 환전은 조폭들이 부산 전체 시장의 50% 가까이 점령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품권 유통업체의 한 간부는 “조폭들이 알짜업소 100여곳의 경영과 상품권 취급을 통해 상품권 환전으로만 매달 200억원 가량을 벌어들이고 있다”며 “얼마 전부터는 조폭과 연계한 일본계 자금까지 성인오락실 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신문 / 특별취재반 2006-7-25)

오락실 옆 조폭 이권 따라 혈투

지난 1월20일 오전 7시 부산 금정구 청룡동의 장례식장에 손도끼, 회칼, 야구방망이 등을 손에 든 사내 50여명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곧바로 한 빈소를 지키던 조아무개(27)씨 등 4명을 집단 폭행하고 영정과 기물 등을 30여분 동안 닥치는 대로 부순 뒤 달아났다. 장례식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다른 빈소의 조문객 200여명은 공포에 질려 대피했다.

수사 결과 이 사건은 부산 최대 조폭인 칠성파를 노린 신20세기파가 유태파, 영도파와 연합해 벌인 일이었다. 이 사건으로 세 조직의 조직원과 추종세력 52명이 구속됐다. 이 사건을 지휘한 부산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의 한 검사는 “칠성파가 2005년께부터 성인오락실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면서 이 사업의 엄청난 이권을 둘러싼 조폭들 사이의 갈등이 폭발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부산 조폭들 가운데 가장 먼저 성인오락실 사업에 눈을 뜬 것은 신20세기파였다. 지난 2003년 <한겨레>의 ‘부산 성인오락실 검·경 상납비리 사건’ 보도와 뒤이은 검·경의 강도높은 수사로 신20세기파는 두목 ㅇ아무개(56)씨 등이 구속되는 등 큰 타격을 입었다. 당시 73곳의 오락실이 폐업하고 246곳이 휴업했다.

이런 힘의 공백이 생기자, 그 때까지만 해도 성인오락실 사업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칠성파가 본격적으로 성인오락실 사업에 뛰어들었다. 한 상품권업체 간부는 “신20세기파가 위축된 사이 칠성파가 진출하면서 부산 오락실의 판도가 변했다”며 “남포동과 서면 등 대표적인 오락실 밀집지역뿐 아니라 시 외곽지역이나 인접한 위성도시 등 경남 일대까지 칠성파가 진출했다”고 말했다.

칠성파, 신20세기파, 서면파 등 주요 조폭들은 물론 유태파·영도파 등 군소 조폭들까지 일제히 돈줄을 성인오락실로 돌리면서 오락실 운영과 상품권 환전 등 이권을 빼앗고 지키기 위한 피튀기는 ‘조폭 전쟁’도 불가피했다. ‘장례식장 난동’도 그 중의 하나다. 앞서 지난해 8월엔 신흥 유흥가인 사하구 하단오거리에서 반칠성파인 하단연합파 조직원들이 ‘상품권 환전 이권’을 놓고 칠성파 추종 폭력배 오아무개(22)씨의 귀를 자르는 일도 벌어졌다. 그러나 조폭이나 오락실·상품권 업계의 사정 상 검·경이나 언론에 드러난 이들 사건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부산 조폭들의 이런 ‘성인오락실 점령’ 과정에는, 유명 성인오락기 제조업체인 ㅇ사의 구실이 눈길을 끌고 있다. ㅇ사는 대당 400만~500만원씩 파는 오락기를 조폭들한테는 제작원가인 200만원 대에 팔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실제 조폭들의 성인오락실에는 ㅇ사의 제품이 대거 유입됐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조폭들이 싼 값에 산 오락기로 직접 오락실을 운영하며 떼돈을 벌기도 하고, 일반 오락실 업주들한테 되팔아 차익을 챙겨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부산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부장 정중택)는 지난 11일 이 업체의 부산 본사와 공장, 이 업체의 기계로 영업해온 남포동과 서면 등지의 ㅋ·ㄹ·ㄷ오락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들 오락실은 신20세기파와 서면파가 운영하는 곳들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은 “ㅇ사와 조폭들이 승률을 조작할 수 있는 오락기를 원가 수준의 헐값으로 주고받아왔다는 의혹을 확인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업체 쪽은 검찰 수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24일 이 업체의 판매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제품구입을 문의해봤더니 “(검·경이 단속·수사를 해도) 기계는 여전히 유통되고 오락실들은 영업 잘 하고 있지 않으냐”며 “8월 초까지 (검찰이 압수한 기종과 같은) 오락기 60대를 보내줄 수 있다”고 장담했다.

(한겨레신문 / 특별취재반 2006-7-26)

성인오락실 불법영업 35곳 신고해보니

경찰이 전국적으로 성인오락실과 성인피씨방 등의 ‘불법 행위 단속’을 공언하고 있지만, 정작 일선의 경찰관들은 ‘불법 행위’에 대한 신고를 접수해도 업소들의 불법행위를 방조하거나 묵인하고 있다. 이런 현실은 경찰의 집중 단속 방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성업 중인 상당수 대형업소들과 일선 단속 경찰의 유착 의혹까지 사고 있다.

<한겨레> 취재진은 지난 13~20일 서울·경기 17곳과 부산 18곳 등 성인오락실 35곳의 불법 행위 현장을 찾아내 경찰에 직접 신고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실제 단속이 이뤄진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신고 대상 업소는 그동안 단속의 철퇴를 맞거나 성인피시방으로 업종을 전환한 중소형 오락실과 달리, 대부분 100석 안팎의 좌석을 갖춘 대형 성인오락실들이다.

출동뒤 몇분간 형식조사 “혐의 입증안돼” 급히 철수
“지구대로 오라” 거부도…업소와 유착의혹 제기

취재진이 35곳을 신고한 혐의는 ‘연타’(서울경기 18건·부산 12건), ‘상품권 재사용’(서울경기 11건·부산 5건), ‘신고필증 미구비’(서울경기 6건·부산 1건) 등이었다.(용어설명 및 표 참조) 하지만 출동한 경찰은 대부분 10여분 동안 형식적인 점검만 한 뒤 “혐의가 입증되지 않는다”며 서둘러 철수했다.

최종 처리 결과를 확인해보니, 아예 출동하지 않거나 신고사항을 기록도 하지 않은 게 9건(25.6%)에 이르렀고, ‘단속 방법을 몰라 신고내용을 밝혀내지 못했다’가 1건, ‘경찰이 단속하기 어려운 사항이다’가 1건 있었다. 심지어 신고내용과 다르게 접수한 뒤 ‘혐의 없음’으로 처리한 사례도 5건이나 됐다. ‘상품권 재사용’을 이유로 신고한 16건 가운데 14건(82%)은 경찰이 상품권 내역이 담긴 영업장부조차 직접 확인하지 않고 철수했다. 특히 부산에서는 경찰이 신고자에게 “지구대로 직접 오라”는 등 대놓고 출동을 거부한 경우(3건)가 많았다.

용어설명

연타 = 시간당 당첨금 제한액을 규정하지 않은 음반·비디오·게임법의 허점을 이용한 대표적 사행행위. ‘1회 제한 당첨금 2만원’을 지키되 되레 연속적으로 상금이 터져 300만원까지 딸 수 있도록 하는 기능.

상품권 재사용 = 문화관광부령으로 상품권 재사용 및 재매입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사행성 도박장에서 평균 5차례 재사용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신고필증 = 음반·비디오·게임법상 모든 게임물은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의 등급분류 심의를 받아야 한다. 필증은 게임기 안팎에 붙이도록 돼 있다. 필증 없는 오락기는, 탈세를 노린 무자료 거래나 당첨확률 조작 등에 긴요한 수단이다.

신고필증이 없는 기계로 영업하던 ㅆ오락실(경기 성남 은행동)의 신고처리 내용을 물었더니, 경찰은 “손님이 발로 차는 바람에 기계 한 대의 스티커가 떨어졌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겨레> 취재진이 9대 모두 신고필증이 없었던 사실을 들이대자 “필증이 없어도 경고 조처나 받을 뿐 불법은 아니다”라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다른 경찰 관계자는 “일단 단속을 원칙으로 하도록 지시된 사안”이라고 말했다.

최근 경찰 단속이 성인피시방 쪽에 집중된 사이, 정작 사행성 게임장의 모태인 성인오락실의 불법 행위는 경찰의 방조 속에 번창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은 단속 인력이 부족하다고 변명하지만, 일선 경찰관들이 불법 여부에 대한 지식도 갖추지 않는 등 의지와 전문성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사행성 도박장과 관련한 지도단속 매뉴얼이 180쪽에 이를 만큼 적용법이 복잡하고 허술하다”며 “기계를 압수하려 해도 명백한 범죄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임의제출 요구에 업주가 응할 리도 없고, 현장에서 불법을 증명해내기가 대단히 어렵다”고 털어놨다.

(한겨레신문 / 특별취재반 2006-7-26)

“사흘간 5백만원 날렸어. 다 빌린 돈인데…”

불법 오락실 신고현장
‘연타‘ 터지고 상품권 돌고도는데 경찰 휘~ 둘러보고 ‘이상무’

업주와 몇마디 나눈뒤 “입증 안됐다” 종결…“오해받을 짓 말라” 충고도

■ 지난 18일 오후 경기 성남시 신흥역 근처 ㅂ오락실

70대의 게임기 중 50대 가량이 쉬지 않고 움직인다. 담배 연기 자욱하다. “사흘째 여기서 살고 있다”는 30대의 한 남성이 퀭한 눈으로 기자에게 말했다.

“조그맣게 한식당 하는데 3일 동안 500(만원) 날렸어. 다 빌린 돈인데…. 아가씨는 내 옆에 오지 마, 중독되는 거 옮으면 큰일나.” 그는 말을 이었다. “누가 이기나 기계랑 싸우는 거거든. 이게 중독이야. 또 맨날 오락실에서 오라고 (휴대폰) 문자가 와.”

이곳을 상품권 불법 재사용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상품권은 한차례 사용 뒤 환수돼야 하지만 이 업소는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10여분 만인 오후 4시14분께 도착한 경찰관 2명은 오락실이 자리잡은 건물 2층에 잠시 들렀다 곧장 1층으로 내려갔고, 업주와 몇 마디만 나눈 뒤 10분 만에 철수했다. 일체의 실사가 없었던지라 대개의 손님은 경찰이 온 줄도 모른 채 ‘평온히’ 도박에만 몰입했다.

■ 지난 16일 서울 송파구 가락동 ㅇ오락실

건 돈의 수백배가 넘는 상금이 수십~수백 차례로 나뉘어 터지는 이른바 ‘연타’가 나오는 사실을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5천~1만원의 걸기 돈으로 250만~300만원을 딸 수 있게 하는 연타는 손님을 꼬드기는 대표적인 사행 조장 행위다. 또 게임기를 개·변조했을 가능성도 암시한다. 때문에 사행행위특례법에 따라 기기 공급업자나 업주 등이 징역 5년 이하 또는 벌금 5천만원 이하로 처벌될 수 있다.

이날 경찰 출동 뒤 연타는 터지지 않았고 경찰도 오락실 카운터에서만 직원과 10여분 얘기한 뒤 유유히 사라져버렸다. 그 뒤 연타가 보란듯 다시 터지는 이 오락실은 140석 규모의 초대형 업소로, 서울에서 가장 번창해온 가게 중 하나다.

폭우로 나라가 들썩였던 이날 50여명 손님이 기계를 2~3대씩 붙들고 있는 통에 빈 게임기를 찾기 어려웠다. 새 손님이 5분마다 2~3명씩 끝없이 드나들었다. 50대의 한 남성은 연타를 맞아 한동안 기계에서 쏟아내는 상품권 100장(5만점·50만원)을 단숨에 손에 쥐기도 했다. 이후 경찰은 “입증이 안 됐다”며 사건을 종결했다.

■ 지난 13일 저녁 9시께 부산 금정구 서동의 ㅅ게임랜드

오락기 88대 규모의 오락실에 50여명의 손님이 바글거렸다. 곧 35번, 43번 오락기에서 ‘연타’가 터지기 시작하자 손님들이 그 주위로 몰려들었다. 이어서 기자가 1만원을 집어넣은 기계에서도 2만점이 두 차례 연달아 터졌다. 기계는 상품권 8장을 뱉어냈다. 상품권 뒷면에 인쇄된 일련번호를 살펴보니 뒤죽박죽이었다. 원래 한차례 사용한 뒤 발급업체에 돌려보내 폐기해야 하는 상품권을 다시 사용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다.

경찰에 상품권 재사용을 신고하자 30분 만에 경찰관 2명이 도착했다. 그러자 오락실 앞 환전소에 앉아 있던 중년 남성이 경찰관을 따라 들어갔다. 오락실의 실제 주인인 모양이었다. 경찰은 오락실 안에서 장부 몇 개와 카운터에 보관 중이던 상품권을 살펴봤다. 정작 일련번호가 맞지 않는 상품권이 들어 있는 오락기를 열어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10여분 뒤 오락실을 나온 경찰관은 중년 남성에게 “오늘같이 신고가 많이 들어오는 날 오해받을 짓 하지 말라”고 충고한 뒤 떠났다.

이후 부산경찰청에 확인해 보니 경찰은 이 업소에 대한 <한겨레> 취재진의 신고와 관련해 “위반 사실 발견하지 못함”이라고 결론내렸다.

그동안 주춤했던 불법 성인오락실의 숨통이 다시 트이고 있다. 성인피시방에 뺏긴 고객을 되찾으려고 더 과감히 불법적 사행성을 높인데다, 손님들은 성인피시방 단속을 피해 되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성인오락실은 경찰 단속으로부터 거의 자유로운 무법지대임을 그들도 알고 있지 않을까.

(한겨레신문 / 특별취재반 2006-7-26)

귀신같이 새나간 기습단속

지난 19일 저녁 7시30분께 부산시 중구 남포동 오락실 거리에 경찰관 100여명이 기세좋게 들이닥쳤다. 오락기가 100대가 넘는 남포동의 대형 업소 11곳에 대한 기습적인 일제단속이었다. 하지만 단속 대상 업소들은 이미 단속에 대비한 준비를 마친 뒤였다. ㅈ오락실은 아예 영업을 중단하고 문을 걸어잠가 버렸고, ㅇ·ㅎ오락실 등 몇몇 업소는 손님들을 모두 내보낸 상태였다. 남포동의 한 상품권 환전상은 “갑자기 대형 오락실들이 손님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등 수선을 떨더니 20~30분이 지나자 경찰 100여명이 오락실 거리에 들이닥쳤다”고 말했다. 결국 이날 경찰의 단속 실적은 ‘0’이었다.

부산경찰청은 이날 단속을 위해 오전에 각 경찰서에 단속인력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 소속 경찰서 인력과 지방청 인력 등 모두 105명을 모은 경찰은 저녁 7시 경찰청 강당에서 기습단속에 대한 간단한 교육을 했다. 105명의 경찰관들이 단속 목표를 처음 알게 된 것이 이때였다. 하지만 불과 10분 안에 경찰의 단속정보는 성인오락실 업주들에게 새나간 것이다.

24일 오후 2시 부산경찰청은 무려 220명의 인원을 동원한 대규모 단속을 또다시 벌였다. 이번 단속 대상은 최근 부산지검이 수사에 들어간 오락기 제조업체 ㅇ사의 기계를 사용하는 오락실이었다. 단속 직후 경찰은 부산 전역에서 20개 오락실을 오락기에 칩을 꽂아 승률을 조작한 혐의로 적발해 600여대 오락기를 압수·봉인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단속이 끝난 뒤 ㅇ사 대표이사 ㅁ(35)씨가 부산경찰청으로 찾아와 “우리 기계는 불법 개조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경찰은 뒤늦게 부산지검에 ㅇ사 기계에 대한 수사상황을 물었다. 검찰은 “아직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혐의가 확정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자체적으로 기계의 위법성을 입증할 준비가 안 돼 있던 경찰은 이미 압수·봉인한 오락기 600여대를 고스란히 되돌려줬다. 오락기 제조업체가 항의하자 자신 있게 압수해온 기계를 아무 소리 못하고 돌려준 꼴이 돼버린 것이다. 게다가 ㅁ씨는 검찰의 요구에는 차일피일 출석을 미뤄왔지만, 경찰에는 직접 찾아가 ‘호통’을 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보안 때문에 검찰의 수사 진행상황을 상세히 물어보지 못하고 단속에 들어가 생긴 일이었다”며 “일단 검찰이 결론을 내릴 때까지 ㅇ사 기계를 사용하는 업소에 대한 처리를 보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산의 오락실 업주 ㄱ씨는 “ㅁ씨가 경찰청에 다녀온 뒤 오락실 업주들에게 ‘내가 방금 경찰청에 가서 항의하니까 기계를 다 돌려줬다. 아무 문제 없으니 계속 영업해도 된다’고 자신 있게 얘기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는 업소와 제작업자를 도와준 셈”이라고 경찰의 ‘헛발질’을 비웃었다.

(한겨레신문 / 특별취재반 2006-7-27)


30조원 시장 ‘경품용 상품권’ 없어진다

성인오락실의 사행성을 부추기는 핵심 원인으로 지목돼온 ‘경품용 상품권 제도’가 전면 폐지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전국 성인오락실 1만5천여곳과 연간 30조원이 넘는 경품용 상품권 시장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행정자치부, 문화관광부, 법무부, 정보통신부와 국세청 등 관련 부처는 26일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회의를 열어 △경품용 상품권 제도 폐지(문화부) △회선망 차단(정통부) △불법 간판 단속(행자부) △세무조사(국세청) △강력하고도 지속적 단속(검찰·경찰) 등 ‘사행성 게임장 근절을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종합대책’은 27일 열리는 ‘고위 당정 정책조정회의’를 거쳐 발표될 예정이다. 열린우리당 역시 성인오락실과 성인피시방 등의 폐해가 위험수위를 넘은 만큼 강력한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태도여서 당정 회의에선 원안대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문화부는 지난해 8월 성인오락실들이 게임을 통해 손님들이 얻은 경품을 현금으로 환전해주는 것을 막아 건전한 게임문화를 조성하고 문화산업 진흥을 꾀한다는 취지로 경품용 상품권 제도를 법제화했다. 하지만 발급된 상품권의 98.5%가 성인오락실에서 곧바로 현금으로 환전돼 정부의 애초 의도는 크게 빗나갔다.

26일 회의에 참석한 정부 관계자는 “경품용 상품권 제도를 폐지할 경우 업계에서 정부를 상대로 천문학적 액수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지만, 국민들이 현행 제도 때문에 겪는 피해가 손배소송에 따른 위험보다 크다는 의견이 모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대책은 과감히 잘라낼 것은 잘라내, 게임산업정책 전반에 대해 새로운 판을 짜는 수준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겨레신문 / 유신재 임인택 기자 2006-7-27)

당정, 게임장 `경품용 상품권' 폐지

사행성 게임장 허가제 전환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27일 사행성 게임장의 난립을 막기 위해 불법환전 등 부작용을 빚고 있는 경품용 상품권 제도를 폐지키로 했다.

당정은 이날 김근태(金槿泰) 의장과 한명숙(韓明淑) 총리 등이 참석한 고위당정 정책조정회의에서 사행성 게임 근절대책을 논의, 다음달까지 게임산업법 입법예고를 하고 내년 4월28일까지 유예기간을 둔 뒤 상품권 제도를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당정은 게임산업법이 올 정기국회에서 처리되면 상품권 폐지시 예상되는 손해배상 소송이나 위헌 소송 등의 제기 가능성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당정은 상품권 폐지시 발행업체가 고의부도나 도산을 할 우려가 있다고보고 검.경과 국세청 등을 동원해 특별관리해 나가기로 했다.

노웅래(盧雄來) 공보담당 원내부대표는 "상품권 누적발행액이 26조7천억원에 달하고 몇차례 재사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유통액은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며 "당초 발행취지와 달리 상품권이 도박을 매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불법환전 등 부작용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

당정은 전체 이용가(可) 게임물만을 제공하는 게임장의 경우 현행대로 등록제를 유지하되,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물을 제공하는 게임장에 대해서는 시.도지사가 3년 단위로 게임장을 허가하는 허가제로 전환키로 했다.

노 원내부대표는 "허가제 전환은 앞으로 더이상 사행성 게임에 대해서는 허가하지 않겠다는 의미"라며 "`바다이야기', `황금성', `오션 파라다이스', `야마또' 등 게임은 등급 재심사를 통해 시중에서 퇴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정은 또 게임기 투입액을 현행 시간당 9만원에서 1만원, 경품한도를 시간당 무제한에서 1만원으로 대폭 낮추고,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제공업의 영업시간을 현재 24시간 허용에서 오전 9시~밤 12시까지로 하되 청소년 출입은 밤 10시까지 제한키로 했다.

또 전체 이용가 게임물의 제공비율 면적을 현행 40%에서 60%로 확대하고 영업장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투명한 유리창 설치 등 시설기준을 강화하는 한편 광고금지 규제 대상을 옥외광고물 뿐 아니라 인터넷, 전단지로 확대할 예정이다.

당정은 PC방의 사행성 규제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PC방을 등록제로 전환, 위법행위시 영업폐쇄, 등록취소 등 행정처분의 실효성을 확보하고 사행성 영업을 목적으로 할 경우 등록 자체를 거부할 수 있게 했다.

또 사행성 게임물 차단프로그램의 설치를 의무화하고 PC방의 도박광고를 금지하며, 불법 PC방 확인시 기간 통신망사업자가 전용선 계약해지나 전용선을 차단시키도록 할 계획이다.

게임물 등급분류 및 재분류 작업을 엄격히 추진하기 위해 게임물등급위원회를 9월중 조기발족하고, ▲1명이 여러대의 게임기를 사용하거나 게임기를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행위금지 ▲게임머니의 현금화 금지 등을 포함한 규칙을 개정키로 했다.

당정은 사행성 게임장 및 PC방 단속을 위해 검.경.국세청 등 범정부적 합동단속체제를 운영, 10월말까지 집중단속을 벌여 조직폭력의 개입은 물론 불법행위 처벌 및 불법수익 환수, 탈루세금 추징, 행정처분 등 활동을 강화키로 했다.

또 게임물 등급 재분류가 완료되는 시점까지 한시적으로 사행성 게임장 및 PC방의 위법행위 신고자에 대한 신고포상금제를 도입해 단속의 실효성을 확보할 방침이다.

(연합뉴스 / 류지복 기자 2006-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