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비바람 속에서 자란 아이, 꿈을 이루다

[신간소개] 김현근의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는 없다>  

◇ ⓒ 사회평론
1997년 대한민국 사회는 IMF 광풍으로 휘청거렸다. 수많은 가장들이 직장을 잃고, 실업자가 되었다. 그러면 그 비바람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많은 아이들이 직장을 잃은 아버지처럼 자신의 꿈을 잃어버렸다.

이는 돈이 곧 실력이요 능력인 세상에서 부모의 경제적 뒷받침이 없으면 꿈을 실현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할 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개천에서 용나는 것’도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고들 한다. 집안이 어려워도 의지를 갖고 자신의 꿈을 향해 노력하여 성공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근이는 달랐다. 아버지의 오랜 실직과 신용불량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꿈을 향해 달려갔으며, 마침내 그 꿈을 이루었다.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는 없다』는 열아홉 살 현근이의 꿈을 향한 아름다운 도전기다. 가난했기 때문에, 부족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현근이에게는 늘 새로운 도전 과제가 주어졌고, 그래서 더 큰 꿈을 꿀 수 있었다고 현근이는 말한다.

하루에 19명꼴로 조기유학을 떠나고, ‘미국 명문대학 10개 동시 입학’이라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고 있는 현실에서 프린스턴 대학에 들어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는 새로울 것도 대단할 것도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10년 전 화제를 모았던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의 장승수 씨가 막노동꾼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에 수석 입학을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듯,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가난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꿈을 향한 의지와 열정, 지독한 노력으로 미국 아이비리그 유학의 꿈을 이루어냈기에 현근이의 도전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꿈이 있다면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학습법이 아니라 꿈꾸기를 가르쳐야 한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가 공부하라고 하면, 왜 공부를 해야 하느냐고, 공부해서 뭐하냐고 반문한다. 집집마다 게임에 빠진 아들 때문에 걱정이라는 한숨소리가 새어나온다. 더군다나 어렸을 적부터 과외를 받고 여러 학원들을 순례하다 보니 혼자서 공부하는 법을 모르거나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그래서일까? 서점에는 온갖 종류의 학습법 책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학습법 책은 가장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있다. 공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습법이 아니라 공부하려는 의지이며, 그 의지는 목표와 꿈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꿈이 없다면 목표도 없는 것이고, 목표가 없다면 의지도 노력도 없는 것이다. 꿈이 없는 아이들을 학원으로, 과외로 내모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다름없다.

현근이가 처음 미국 아이비리그로의 유학을 꿈꾸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그러나 이미 그때 현근이의 집에는 IMF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미국 유학은커녕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을 걱정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현근이의 어머니는 그 꿈을 꺾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오랜 실직으로 할인마켓 야채 코너, 현근이가 다니던 중학교의 급식소 등에서 일을 하면서 월수입 60만원도 채 안되는 돈으로 네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고단한 삶을 살고 계셨으면서도, 현근이가 꿈을 포기하려 할 때마다 오히려 현근이를 일으켜 세우셨다.

꿈이 아무리 터무니없다 하더라도, 꿈을 꾸고 있는 것 자체가 현근이가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어머니는 알고 계셨던 것이다.

현근이가 꿈을 잃지 않도록 지켜주셨던 현근이 어머니의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이제는 아이 스스로 의미를 찾지 못하는 학원 하나 더 보내려고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기보다는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도록, 꿈이 있다는 것,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는 없다』의 존재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을 끝까지 놓을 수 없는 건 꿈을 이룰 수 없는 환경에서 자신 앞에 놓인 벽을 하나하나 최선을 다해 뛰어넘는 현근이의 모습에서 아직 찾지 못한 혹은 잃어버린 우리의 꿈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 공부는 내가 한다’

요즘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 영어 학원, 수학 학원뿐만 아니라 전 과목 내신 관리 학원까지 다니느라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모른다.

자신이 부족한 과목에 대해 과외를 받고 학원에서 공부를 하면 단기간에는 효과를 볼 수도 있지만, 과다한 학원 수강은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낭비일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볼 때 아이의 학업 능력을 잃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 점에서 현근이가 보여준 자기주도형 학습의 과정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수학이나 과학에 특출한 능력을 갖추지 않았던 현근이가 그 많은 영재들을 제치고 수석으로 졸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스스로 공부하고 준비하는 습관을 들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험의 성격에 따라 공부 전략을 스스로 짜고, 필요한 정보와 자료들을 모으는 능력 또한 노력하는 자세 못지않게 중요하다. 중학교 배치고사 준비에서부터 과학영재학교 입시, 과학영재학교에서의 3년간의 시간표, 삼성 이건희 해외 장학금, 미국 유학 준비에 이르기까지 현근이는 스스로를 매니지먼트했다.

특히 현근이가 직접 짠 영재학교에서의 3년간 시간표는 스스로 전략을 짜고 공부하는 힘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준다. 미국 대학을 진학할 때는 3학년 1학기까지의 성적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때까지 어떤 과목을 공부하고 어떤 성적을 거두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일찍부터 스스로 계획하고 공부하는 것이 몸에 밴 현근이는 1학년 때 미국 유학에 맞추어 자신만의 시간표를 작성하였다. 현근이의 시간표는 143명의 입학생들과는 완전히 달랐는데, 수석 졸업과 프린스턴 대학 수시 특차 합격을 이루면서 그 시간표가 매우 효과적이었음이 입증되었다.

물론 그 시간표에 따라 공부하는 것은 매우 고된 일이었다. 그러나 현근이는 자신이 정한 목표를 차근차근 성취해나가면서 꿈을 향해 나아갔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 공부의 과정이 누군가가 정해준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 스스로가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타인이 주도하는 공부 과정에 길들여진 대다수의 학생들과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지만 생각만큼 성적이 안 나오기도 하고, 또 공부하면서 장애물을 만나면 쉽게 주저앉곤 한다. 주위 사람들은 그들에게 노력이 부족하다고 탓하기도 하고, 공부법이 잘못 되었다고 충고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변죽을 울리는 모습이다. 학생들에게 부족한 것은 노력이나 효과적인 공부법이 아니라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공부하는 습관이기 때문이다. 현근이는 스스로 꿈을 정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보여주었던 것이다. 초등학교에서부터 프린스턴 대학의 합격 통지서를 받는 순간까지 현근이가 보여준 모습에서 스스로 공부하는 힘과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학영재학교의 특별한 교육 시스템

현근이가 아무리 꿈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가 굳세고 지독하게 노력한다고 해도 현근이의 집안 형편으로는 미국 유학을 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현근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해에 우리나라 최초의 영재학교인 ‘한국과학영재학교’가 부산에 생겼다.

교육부와 과학기술부가 동시에 지원하는 한국과학영재학교는 학비는 일반 고등학교와 다르지 않으면서도 커리큘럼과 시스템이 대학의 그것과 유사한 수준으로 높아 최고의 교육을 최저의 비용으로 제공하고 있다. 집안 형편상 사교육을 받으면서 유학을 준비하는 게 불가능했던 현근이로서는 하늘이 준 기회였고, 현근이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는 일반 고교의 이과 과정 학생들이 배우는 내용은 1학년 때 집중적으로 끝내고, 2 ,3학년 때에는 대학 수준의 응용과목을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해서 배우도록 하고 있다.

또 학생 당 교사 비율은 6:1로 매우 낮은 편이며, 재직하고 있는 교사들의 대부분이 국내외 유수 대학에서 석 ,박사학위를 받아 교육의 질이 매우 높다. 한국과학영재학교가 이렇듯 우수하고 자율적인 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것은 2000년에 제정된 영재교육진흥법에 따라 운영되고 있어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내신성적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수능과 내신은 대학입시에서 필요한 기준이기는 하지만, 창조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과학영재학교는 정부 차원에서 과감히 이 틀을 벗어나 수능과 내신성적 없이 카이스트나 포항공대 등 명문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과학영재학교 학생들은 수능이나 내신성적에 대한 부담 없이 전공과목을 심도 있게 공부해 수준 높은 실력을 쌓을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과학영재학교는 ‘우수한 과학영재’를 ‘진정한 과학인재’로 키워내는 요람인 셈이다.

(데일리안 / 강명기 넷포터 2006-6-2)

[특별기획 어머니는 힘이 세다] 김현근씨 어머니 신인숙씨

■ 대답은 성실하게, 질문은 청유형으로

국내 최초의 영재학교인 ‘한국과학영재학교’ 수석 졸업, 미국 프린스턴 대학 수시 특차 합격…. 이런 커리어를 갖춘 사람에겐 보통 한 가지 수식어가 얹혀진다. ‘천재’.

하지만 김현근군(19)은 결코 천재가 아니다. 두 가지 항목을 만족하는 유일한 사람이지만 머리가 비상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노력파에 가깝다. 현근이가 얻은 성과는 ‘공부는 머리 좋은 사람이 아니라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공부와의 전쟁’ 끝에 얻어낸 노획물이기 때문이다. 현근이의 공부에 대한 열정은 어머니 신인숙씨(46)가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 현근이에게 공부는 재미있는 것이란 생각을 심어준 덕분이다.

현근이는 원래 호기심이 많았다. 무슨 일을 하다가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신씨에게 바로 질문을 했다. 그때마다 신씨는 성실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다음은 당시 신씨의 행동을 확연히 말해주는 일화 한 토막. 화단을 산책하던 현근이는 한 ‘곤충’의 모습을 보고 질문을 던졌다. “엄마, 저 곤충은 이름이 뭐야.” 현근이가 가리킨 생물은 다름아닌 거미였다. 신씨는 이렇게 말했다. “저것은 거미라는 건데 곤충이 아냐. 곤충은 머리, 가슴, 배로 나뉘어 있고 다리가 6개란다. 근데 저 거미를 봐. 머리하고 배밖에 없고 다리는 8개지? 저건 곤충이 아냐.”

현근이는 귀를 쫑긋 세웠고 이를 간파한 신씨는 ‘호기심 증폭 작전’ 2단계로 넘어갔다. 현근이에게 백과사전을 안겨준 것이다. “여기 거미의 특징이 있네. 엄마는 잘 모르니 현근이가 공부한 다음에 알려주면 좋겠다.” 어린이에겐 전지전능한 존재인 어머니를 자신이 가르칠 수 있다는 기쁨에 현근이는 백과사전을 탐독했고 신씨에게 다가가 거미란 무엇인지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신씨는 의도적으로 이런 청유형 전략을 사용했다고 회고한다. 어린이들은 강압적으로 명령하는 것보다 ‘∼해줄래’라고 부탁할 때 신이 나서 한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공부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공부에 흥미가 붙어요. 게다가 엄마에게 자신이 터득한 걸 설명하는 과정에서 발표력도 향상되지요. 일석이조죠.”

■ 가끔은 매질도 필요해

신씨가 항상 청유형 전략만 사용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진짜 아니다’고 판단되면 지체없이 매를 들었다.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사용한 셈이다.

현근이는 초등학교 1학년 시절 받아쓰기 시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선생님이 불러주는 단어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만 했다. 하나라도 틀리면 어머니의 회초리를 맞아야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현근이는 공부할 땐 꼼꼼하게 시험볼 땐 최대한 집중해 치르는 습관을 기를 수 있었다.

신씨가 회초리를 든 이유는 단 하나. 현근이가 한글을 다 알고 있었는데도 실수로 틀리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실수를 한두번 넘어가기 시작하면 나중에 중요한 시험에서도 실수를 할 수 있었다. 신씨는 이런 이유로 ‘사랑의 매’를 들었던 것이다.

지금은 당연히 아니지만 꼬마 현근이에겐 도벽이 있었다. 문방구에서 딱지를 훔쳤고 슈퍼에서 음료수를 몰래 가지고 나왔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현근이의 도둑질은 어머니에게 발견됐으며 그날 현근이의 표현에 따르면 딱 안 죽을 만큼만 맞았다고 한다. 그후 현근이의 도벽은 완전히 사라졌다.

■ 김현근 군은…

19세. 부산에서 태어나 줄곧 부산에서 자란 부산 토박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공부에 대한 열정이 강했다.

어린 시절 홍정욱씨의 '7막7장'을 읽고 미국 아이비리그로의 유학을 목표로 삼았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했고 결국 '한국과학영재학교'에 입학해 체계적으로 유학을 준비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전국의 내로라하는 영재들 속에서 열등감도 느꼈지만 '공부와의 전쟁' 끝에 수석 졸업을 차지했고 미국 최고의 명문 프린스턴 대학에 수시 특차로 합격했다.

지난 5월 가난하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후배들을 위해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는 없다'(사회평론)는 책을 펴내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제 현근군은 프린스턴에서 또 한번의 신화 창조를 준비하고 있다.

(파이낸셜뉴스 / 김한준 기자 2006-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