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안 갈 거면 국사 공부 안 해도 되죠?"

요즘 고등학생들이 국사 수업 시간에 책상에 엎드리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날이 더워지면서 긴장감이 풀어진 탓도 있지만, 교과서 내용이 점점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특히 근현대사로 내려올수록 아이들은 어려워한다. 지금부터 불과 100여년 전 일인데도 아이들은 이를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 정도로 여기며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이 교과서 내용을 버거워하는 것 뿐 아니라 교사인 내가 가르치는 데도 교과 일정상 어려움이 많다. 한마디로 '대략 난감'이다.

얼마 전, 기말고사가 다가오기에 아이들의 수준도 알아볼 겸 해서 아이들에게 시험범위 내에서 문제를 내보게 했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질문도 받고 보충설명도 해주던 때였다. 문제 하나가 내 눈에 확 들어왔다. "충선대원군이 천주교를 탄압한 사건은 무엇인가?"

'이건 도대체 무슨 말이지?' 순간 의아해졌다. 잠시 후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본래 "흥선대원군이 천주교를 탄압한 사건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였다. 다른 아이가 낸 문제를 베끼는 과정에서 잘못 옮겨 적은 것이다.

웃지 못할 상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시험보기 전 마지막으로 내용을 정리하면서 6·10만세운동을 설명할 때였다. 앞줄에 앉은 아이가 질문했다. "60명이 일으켜서 6·10만세운동인가요?"

웃고 넘어갈 수만은 없는, 2006년 대한민국 고등학교 국사교육의 현 주소다. 아이들이나 교사인 내게도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이렇게 된 데에는 7차 교육과정의 구조적인 문제점과 교육 당국의 미온적인 태도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충선'대원군? 60명이 참여해서 6·10만세운동?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이 일으킨 독도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던 지난해엔, 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다들 외쳤다. 학교에서 국사 교육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주문도 많았고 특히 근현대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이에 교육부는 지난해 5월, 고교 1학년 국사교육 과정에서 근현대사 내용을 보강해 1주일에 1시간씩 교과재량활동을 통해 별도로 근현대사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고교 1학년 국사 수업시수를 주 2시간에서 3시간으로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단, 당장 그렇게 하기는 어렵고 교과서 검정 등을 거쳐 2010년 이후 학교별로 단계적으로 적용하겠다고 했다.

그럼, 수업시수가 늘어나기 전에 교육부가 근현대사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취한 조치는 무엇일까? 2006학년도 교육부는 예전엔 교과과정상 2학기 후반부에 수업하도록 돼 있던 근현대사 부분을 1학기 과정으로 사실상 끌어당겼다.

지난해까지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서 근현대사 대목은 맨 끝 부분에 배치돼 있었다. 388쪽 중 332쪽부터 근현대사 부분이었다. 2학기 후반부에 가르치도록 배치된 셈이다.

그러나 실제로 근현대사 교육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끝 부분이라서 시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부분이 많은데다, 인문계를 택하는 학생들은 2·3학년 때 근현대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7차 교육 과정이 짜여있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주당 2시간 교육만으로는 근세 부분까지 진도를 나가기도 벅찬 게 사실이었다.

이러한 국사교과서는 2006학년도에 들어서면서 체제가 바뀌었다. 근현대사 부분이 106쪽부터 시작되면서 1학기 과정에 포함된 것.

이 대목에서 의문을 품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 근현대사 부분이 앞으로 당겨졌을 때 교사들은 1년 과정을 어떻게 가르칠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육부가 국사교과서 분량을 388쪽에서 335쪽으로 줄였다는 점이다. 또한 안타깝게도, 그에 따라 근현대사 부분도 58쪽에서 26쪽으로 줄었다. 이것이 2006학년도에 쓰이는 '졸작' 국사교과서다.

근현대사 강화하겠다더니 분량은 오히려 줄고

이쯤 되면 교육부에 근현대사 교육을 강화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혹시 사진 몇 장 빼고 글자 수만 줄이면, 가르쳐야 될 내용이 줄어든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나는 2006학년도 교과서가 국사 교육, 그 중에서도 특히 근현대사 교육을 내실화하기는커녕 또 하나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7차 교육과정에서 근현대사는 2·3학년 선택과목으로 돼 있기 때문에 선택한 아이들만 배운다. 인문계에서 근현대사를 선택하지 않은 아이들이나 자연계 아이들은 근현대사를 배울 기회가 없다.

중학교에서도 근현대사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중학교에서도 근현대사 부분은 3학년 교과서 끝 부분에 있어서 내신에 반영되는 시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국 상당수 아이들에게 근현대사 교육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수박겉핥기식으로 배우는 게 전부일 수 있다.

우리나라 역사를 1년 만에 통째로 다 배우라고 교육과정을 짜놓은 것 자체가 근원적으로 문제다. 제 나라 역사, 그 중에서도 현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근현대사 교육을 소홀히 하면서 학생들이 바른 역사의식을 지니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 아닌가.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며칠 전 한 아이가 이런 질문을 했다. "선생님, 서울대 안 갈 거면 국사 공부 안 해도 되죠?" 다른 아이들은 공부 잘한다고 티내는 것이냐, 잘난 척 하는 것 아니냐는 등 질문한 아이에게 핀잔을 줬지만 교사인 내 심정은 착잡했다.

서울대만 2005년 수능부터 인문계열에 지원하는 학생들에게 사회탐구 영역에서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것이, 서울대의 본래 의도와 달리, 오히려 국사를 포기하는 학생들이 증가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음을 잘 드러내는 일화다.

이는 국사를 택한 학생 중 서울대에 지원한 학생들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중하위권 학생들의 국사 과목 표준점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사회탐구 영역에 속한 11개 과목 중 4개 과목을 선택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좋은 점수를 얻기 어렵다는 이유로 국사를 택하지 않고 있다.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서울대의 결정이 '나쁜' 결과로 이어진 것은 서울대 이외의 다른 학교들이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이는 교육당국의 미온적인 자세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언어영역 어렵다고 국어를 선택 과목으로 만들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세계화라는 말이 유령처럼 떠도는 이 나라에서 교육 당국이 택한 '효율성'이 이런 결과를 낳고 있다.

근본적인 정책이 절실하다. 역사 교육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건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딱딱한 내용 위주로 구성돼 학생들에게 머리 아픈 암기 과목으로 낙인찍히는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제별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도록 지도하고 우리 역사와 세계사를 통합적으로 가르칠 수 있도록 중등 역사교육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 또한 정치사 중심 서술에서 벗어나서 생활사나 예술사 비중을 높여 아이들의 피부에 와 닿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더 중요한 건, 인문계든 자연계든 우리 역사 교육을 필수적으로 이수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의식은 세계화라는 말로 대변되는 효율성과 합리성이라는 잣대로만 따질 사안이 아니다. 언어영역 점수가 잘 안 나온다고 국어를 '선택' 과목으로 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내년엔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가 어떻게 변신할 지 궁금하다.

<송진숙 / 현직 고교 국사교사>

(오마이뉴스 2006-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