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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김근태 ‘2인 3각’ 언제까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이 마주치는 손뼉 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청와대 만찬에서 노대통령이 ‘부동산 재산세
경감’의 화음을 만들고, 7·3 개각에선 김의장이 직접 ‘대통령의 인사권을 존중하자’며 당내 마찰음을 줄였다. 당·청의 정점에서 국정의 고비를
넘는 ‘두 바퀴’로 서 있는 모양새다.
첫 고비였던 청와대 만찬의 잔영도 두 사람이 중심이다. 만찬후 비대위원들이 청와대를 떠날 때 노대통령은 김의장과 단둘이 5분간 밀담을
나눴다. 대화 주제를 놓고 많은 억측을 낳았으나, 김의장은 다음날 “나중에 말하겠다”며 비켜갔다. 김의장은 만찬 전날 청와대를 방문했다고 한다.
만찬 직전까지 안갯속이던 재산세 문제는 “김의장과 청와대의 사전 조율이 힘이 됐고, 막판에 노대통령의 결심이 이뤄졌다”(핵심당직자)는 설명이다.
반대로 3일 아침 당 비대위에선 김의장이 총대를 멨다. 이례적으로 회의를 30분 늦추며 비대위원 일부가 이견을 낸 김병준 교육부총리 카드에
대해 “당 의견을 충분히 전달했고, 인사권은 존중하자. 당에서 더이상 다른 소리를 내지 말자”고 매듭을 지은 것이다. 김의장은 의원 전원에게도
전화를 돌려 “성명서나 돌출행동을 자제해줄 것”을 주문했다. 김의장이 ‘너무 협조 모드로 가는 것 아니냐’는 당 일각의 불만도 터진 날이다.
다만 당내에선 청와대 만찬과 7·3 개각에서 당·청 수뇌부의 움직임에 대해 ‘전략적 동행’으로 보는 시각이 넓다. 비대위 체제 출범후
‘허니문’ 성격이 있고, 지방선거 참패후 여권 전체가 갖고 있는 위기감이 출발선이 됐다고 보는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엔 ‘긴장지대’도 상존한다. 김의장은 “당과 청와대는 시선·목표가 다를 수밖에 없다. 국정의 소통에서 당을 존중해달라”는
입장이다. 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국회에 확실한 견제장치를 만들겠다”며 속도조절을 주문하고, 분양원가 공개의 소신도 견지하고
있다. 참여정부 국정스타일을 보는 서로간의 간극이 있고, 삐걱거림이 돌출할 불씨도 적잖은 셈이다. 두 사람의 ‘2인3각’ 행보가 주목받는
시점이다.
(경향신문 / 이기수 기자 2006-7-4)
‘光速 승진’이 준비된 인사?
경제수석(4·7)→정책실장(5·30)→경제부총리(7·3)
권오규 경제부총리 내정자<사진>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대사로 있다가 청와대 경제정책수석(차관급)으로 발령난 것은 지난
4월 7일이었다. 이어 두달이 안된 5월 30일 정책실장(장관급)이 됐고 또 한 달 만에 부총리에 내정됐다. 석달이 안 돼 차관→장관→부총리로
두 단계 승진하는 셈이 됐다.
박남춘 청와대 인사수석은 “노 대통령이 오래전부터 구상한 인사”라고 했다. OECD 대사 부임 때 선진국의 사회복지정책과 경제정책의
연관성을 연구하고 오라고 노 대통령이 지시했고 이때부터 부총리 기용 의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박 수석은 “권 내정자는 대사 재직 시 그런 노력을
꾸준히 했고, 대통령이 일단 경제수석으로 발령 내서 매크로(거시)와 서민경제가 어떻게 관련됐나를 1차 점검케 하셨다”면서 “다음에 정책실장으로
발령 낸 것은 경제정책이 사회복지정책과 원활히 연결되지 않고서는 성장잠재력을 계속 끌어갈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라고 했다. 박 수석은 이어
“그런 절차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는 정리가 된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고 그래서 이번에 경제부총리로 내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처음부터 준비된 인사였고, 석달 만에 경제수석과 정책실장을 거치게 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취지였다. 박 수석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부총리
기용을 위해 두 달짜리 경제수석, 한 달짜리 정책실장으로 견습시켰다는 얘기가 된다. 또 불과 한 달 만에 경제정책과 사회복지정책의 연관성을
파악토록 했다는 얘기가 된다. 박 수석의 설명이 ‘짜맞추기용’이라는 해석은 그래서 나온다.
(조선일보 / 정우상 기자 200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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