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중세시대?"..'현대판 노예청년'에 시청자 '경악'

네티즌 "가려진 인신매매 피해자들 꼭 구제해달라" 청원

SBS '긴급출동 SOS 24'(연출 허윤무)가 지난 5월 '노예 할아버지'에 이어 27일 '노예 청년'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드러내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이 프로그램이 비춰준 우리 사회의 뒷모습은 민주주의 국가의 가장 기초가 되는 '자유'와 '인권'이 실종된, 중세시대에 다름없었다.

이향균씨(33)는 10년간 섬에 갇혀 지내면서 그 마을의 어른이라는 이장에게 노예처럼 부림을 받았다. 돈 한 푼 받기는커녕 배불리 먹지도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생활이라, TV화면에 비친 그의 모습은 말 그대로 '처참함' 그 자체였다. 10년의 세월이 그에게 남긴 것은 누가 쥐어주었는지 모를 2만2000원 뿐이었다.

이날 방송이 나간 후 시청자게시판에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1300여건의 글이 등록되며 큰 반향이 드러났다. 시청자들은 우리 사회의 숨겨진 폭력을 고발하고 그 피해자에게 회생의 길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의 공익성을 칭찬하는 한편, 관리 당국과 가해자를 성토하거나 피해자를 위로하며 도움을 주고 싶다는 의견을 잇따라 전했다.

한 네티즌은 "우리가 월드컵에 정신이 팔려 시청앞에서 난장을 벌일 때, 누군가는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었다니 부끄럽다"며 글을 올리기도 했다.

△ 섬에 팔려간 '현대판 노예' 사례.. 끊이지 않아

'노예 청년' 이항균씨의 사례가 시청자들에게 충격과 경각심을 줬지만, 불행히도 이씨의 사례는 처음이 아니었다. 방송과 언론 보도를 통해 섬 지역, 특히 김양식장을 중심으로 이 같은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지만, 우리가 1회성 화제로 보고 지나쳤던 것이다.

6살때 자장면을 사주겠다는 말에 속아 전남 심안의 한 외딴섬에 끌려간 뒤 44년간을 갇혀 김양식을 하며 노예처럼 지냈던 김씨의 사례는 2004년 마을 주민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밝혀졌고, 그해 1월에는 김양식장에서 노예처럼 일하던 근로자 4명이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다 1명이 익사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직업소개소 등을 통해 정신지체자들을 섬으로 데려온 뒤 노예처럼 부리고, 그것도 모자라 정부가 그들에게 지급하는 보조금까지 착복하는 사례도 많다는 것은 심각하다. 중세 시대 노예가 노동력만 착취당했다면, '현대판 노예'들은 오히려 돈까지 빼앗기고 있는 셈이다.

이웃 진도섬까지 불과 3km 거리에 불과한 외딴 섬들에서 벌어지는 이 같은 끔찍한 참상은 우리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사건사고 기사로 접하게 된다. 그러나 그 이후 가해자 등 사건의 처리 과정이나 피해자의 갱생을 위한 조치에 대해서는 들은 바 없다.

'긴급출동' 프로그램이 반가운 것은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던 '피해자'에게 더 주목을 하고있기 때문이다. 연예인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억지 웃음을 짓게 하지 않아도, 지난 5월 노예같은 생활에서 벗어난 이흥규 할아버지의 훗날 모습은 충분히 행복해보였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시청자들은 "아직도 남아있는 인신매매를 계속 고발해서 근절시켜 달라"며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긴급출동' 제작진에게 대신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 경악할 악행에도 처벌 힘들어.. '구속'조차 쉽지 않아

우리를 더 경악하게 만드는 것은 가해자들의 뻔뻔함과, 이들을 법으로 단죄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점이다. 방송에 소개돼 시청자들의 공분을 산 가해자라고 해도 여론이나 도덕과는 무관한 법적용으로 불구속 수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우선 '폭행'이나 '학대', '노동착취' 등에 대해서는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불구속 수사를 하거나 혹은 무혐의 처분되는 경우도 있으며, '노예 할아버지' 이흥규씨의 경우나 '노예 청년' 이항균씨의 경우 모두 정부 보조금을 착복한 혐의 때문에 구속수사가 가능했다.

'폭행과 학대'는 현장을 포착하지 않는 한 뚜렷한 증거를 잡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처벌이 어렵고, '노동착취'의 경우 양측이 합의한 계약이었다는 가해자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처벌이 불가능하다. '긴급출동' 제작진의 고민과 한계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제작진은 "그동안 방송에서 소개한 사례처럼 폭행과 학대의 경우는 현장을 덮치지 않는 한 결정적인 증거를 잡기가 어렵다"며 "피해자의 상처만으로는 가해자의 행위가 입증되기 힘들어서인지 불구속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피해자와의 합의 하에 동영상 촬영을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방송을 위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심각한 폭행이나 학대의 경우에는 화면을 사용하지 못한다"며 "가해자의 행위를 입증하기 위한 결정적인 증거를 잡기 위해 24시간 촬영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흥규 할아버지의 경우에 대해서는 "촬영에 제약을 받는 상황이 많아, 이 사건 때도 증거 영상을 촬영하지 못했다. 그러나 정부보조금을 착복한 것 때문에 구속수사가 가능했다"며 "우리는 피해자 구출이 우선이기 때문에 증거를 잡기 위해 더 방치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경찰 관계자는 "죄질이 나쁘고 사회의 지탄을 받는 경우라면 경찰에서 구속영장을 신청하지만, 무임금 노동의 경우 숙식만 제공받는다는 당사자간의 계약에 의한 것이라면 처벌이 어렵다"고 견해를 밝혔다.

(머니투데이 / 이규창 기자 2006-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