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뇌 속의 ‘거울뉴런’… ‘보는 것’이 ‘하는 것’

독일 월드컵 열기가 무르익고 있다. 태극전사가 공을 뺏기면 자신의 실수인 양 안타까워하고, 멋지게 슈팅해 상대 골문을 흔들면 서로 얼싸안고 기뻐한다.

‘과학적으로’ 보면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어떻게 축구경기에 그토록 몰입할 수 있는 걸까. 운동장에서 직접 뛰는 게 아니라 그저 보기만 하는 데도 말이다.

최근 이런 현상을 뇌에 있는 독특한 신경세포(뉴런)로 설명하는 과학자들이 등장했다.

○ 감정의 투영 담당하는 신경세포

축구경기에 열중해 있는 붉은악마의 뇌에서는 ‘거울뉴런(mirror neuron)’이 활발히 작동한다. 이 세포는 태극전사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마치 ‘거울’처럼 그대로 비춘다. 이 때문에 붉은악마는 마치 자신이 실제로 축구를 하는 것처럼 여기게 된다는 것.

거울뉴런은 태극전사의 뇌에서도 작동한다. 상대 선수의 움직임을 자신의 동작처럼 여기면 다음 움직임을 예측해 적절히 방어할 수 있게 된다.

거울뉴런의 존재가 처음 제안된 것은 1996년. 이탈리아 파르마대 지아코모 리조라티 교수팀은 원숭이 뇌에 전극을 이식하고 땅콩을 집어 입으로 가져갈 때의 반응을 관찰했다.

그 결과 특이하게도 원숭이가 스스로 이 행동을 할 때와 사람이나 다른 원숭이가 이 행동을 하는 것을 볼 때 동일한 부위의 신경세포들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통해 뇌에 ‘보는 것’을 ‘하는 것’과 똑같이 받아들이게 하는 거울뉴런이 있다고 주장한 것.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마르코 야코보니 교수는 “사람의 거울뉴런은 타인의 행동뿐 아니라 느낌까지도 공유할 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 야코보니 교수팀은 최근 실험자에게 다양한 표정의 얼굴 사진을 보여주고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뇌를 촬영했다.

그 결과 화난 표정을 봤을 때는 뇌에서 얼굴 근육을 찡그릴 때 작동하는 영역이, 밝은 표정을 봤을 때는 웃을 때 작동하는 영역이 반응했다. 사진을 보기만 했는데도 실제 얼굴 근육을 움직일 때와 같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야코보니 교수는 “거울뉴런이 사진에 나타난 감정을 투영해 감정을 담당하는 뇌 영역인 변연계에 전달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미디어 심리학’ 1월호에는 아이들이 TV에서 폭력적인 장면을 볼 때 거울뉴런이 이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공격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과학과 김대수 교수는 “타인의 경험이나 외부 자극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거울뉴런은 ‘자아형성’에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 모방을 통한 학습능력 동물에게도?

인간이 언어나 음악, 춤 등을 처음 배울 때는 상대방을 그대로 따라한다. 리조라티 교수는 1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인간이 모방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타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게 바로 거울뉴런 덕분”이라며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뛰어난 사회적 동물로 진화한 이유도 거울뉴런이 더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원숭이 뇌에서 거울뉴런이 발견된 부위는 머리 앞부분인 전두엽과 윗부분인 두정엽. 사람에서도 비슷하다. 네덜란드 흐로닝언대 크리스찬 케이저 교수는 “죄책감이나 자부심 같은 인간의 사회적 감정은 특히 뇌 안쪽 뇌섬엽 영역의 거울뉴런이 담당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고려대 심리학과 최준식 교수는 “거울뉴런이 동물에서 보고됐다는 건 자아형성이나 공감 같은 고등 정신활동이 인간만의 특성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 학계 일각선 실체에 의구심

거울뉴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과학자도 있다. 타인의 감정이나 의도를 파악하는 메커니즘은 단순히 세포에 비춰지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이유다. 구강신경을 전공한 서울대 치대 최세영 교수도 “거울뉴런이라는 특별한 세포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실험적 증거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24일 새벽 스위스와의 한판 승부를 지켜보는 붉은악마의 뇌에서는 거울뉴런이 또다시 활발하게 작동할 것이다. 정말 존재한다면 말이다.

(동아일보 / 임소형 기자 2006-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