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응원 여성이 60%···월드컵 女風 왜?

2006년 독일월드컵이 한국 사회에 던진 화두는 ‘여성’이다. 거리응원의 50~60%가 여성이고 과거 축구를 강건너 불구경했던 주부들도 월드컵으로 밤을 새운다.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축구에 왜 그들은 빠져드는 것일까.

# ‘나는 진정 즐기고 싶다’ = 젊은 여성들 대부분은 월드컵을 ‘대결의 장’보다는 ‘즐김의 장’으로 여긴다. 단 한번도 즐김의 역사를 가져보지 못한 그들은 제약없이, 노동의 대가없이 진실로 즐기고 싶은 것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즐김과 신바람이 사라진 한국 사회에 대한 반작용이다. 대학축제 외에 여성들이 아무런 제재없이 여론의 눈총없이 밤늦도록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느냐”며 “남성과 똑같은 신바람의 핏줄이면서도 한번도 제대로 신명나게 놀아보지 못한 그들만의 욕망이 폭발하는 곳이 서울시청 광장”이라고 말했다. 동덕여대 김경애 교수는 “월드컵에서 진정한 여성축제가 마련됐다. 설날과 추석처럼 설거지도 없고 상차림도 없는 ‘부담없이 즐기는’ 축제가 탄생했다. 게다가 이건 국가를 위한 일이다. 모든 것에서 면제되니 춤추고 노래하고 고함치지 않을 수가 있을까”라고 말했다. 또 박김상아 여성문화예술기획 사무처장은 “밤의 공포없이 즐기고 싶은 욕망이 분출된 것이다. 사회적 약자로 안심하고 밤의 즐거움을 느껴보지 못한 한국여성들의 슬픔이 묻어난다”고 덧붙였다.

# ‘주체성을 향한 몸짓’ =남성우위의 한국 사회에서 주체성을 확보하려는 몸짓이다. “4년 전 이미 여성들은 주체적인 목소리와 힘의 발현을 경험했다. 그리고 오늘 주변을 맴돌던 많은 이들도 뛰어들었다. 월드컵을 통해 여성의 주체성을 회복하려는 것이다”(김영옥 이화여대 학술연구교수). 또 “양성평등 구호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차별과 족쇄, 불평등의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그들만의 희망가이다”(연세대 김호기 교수). “남성 영역에 대한 도전이다. 우리도 축구를 즐길 수 있다는 적극적인 여성들의 자신감이 드러난 현상”(박김상아 처장).

#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중년여성들의 가세는 고단한 삶으로부터의 벗어남으로 해석된다. 남편의 퇴직과 경제난, 끝없는 가사노동, 그것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축구를 몰라도, 스타를 몰라도 그들은 고함치고 노래한다.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삶의 고단함을 태극전사들의 몸놀림과 그물망의 출렁거림으로 털어버리고 싶은 것이다”(소설가 고원정씨). 또 “축구처럼 전반전은 힘들었지만 후반전은 아름답고 이겨내리라는 이변의 가능성을 기대하려는 것은 아닐까”(김호기 교수).

# ‘정치적 조작과 상업주의의 희생양” = 정치적 조작과 과도한 상업주의에 떼밀려 가는 느낌이다. 자생적이기보다는 강요된 열광이다. 김영옥 교수는 “5·31 이후 정치적 공황을 메우고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정치권과 동조하는 미디어, 월드컵 특수를 노리는 기업들의 ‘월드컵 쓰나미’에 여성들이 휩쓸려갔다”며 “이런 개입이 없었다면 훨씬 성숙하고 순수한 여성들의 노래를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또 고원정씨는 “미디어가 강요한 측면이 크다”며 “또 기업의 함포사격에 온전히 견뎌낼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경향신문 / 배병문·김동은 기자 2006-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