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3사 '고구려 사극' 외교문제 비화되나

중국 관계자 "정부 차원의 동북공정 대응인가"

KBS, MBC, SBS 등 지상파방송 3사가 거의 동시에 방영을 계획한 '고구려 사극'이 외교문제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22일 방송 관계자들에 따르면 KBS, MBC, SBS 등 방송 3사가 거의 같은 시기에 일제히 고구려와 고구려의 정신을 이어받은 발해의 역사를 소재로 한 대하드라마를 방영키로 한 데 대해 중국 측이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방송 3사는 최근 MBC가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을 소재로 한 60부작 대하드라마 '주몽'을 방송하기 시작한 데 이어 SBS는 7월부터 고구려사를 다룬 100부작 대하드라마 '연개소문'을, KBS는 고구려의 후예가 세운 발해사를 소재로 한 100부작 '대조영'을 9월부터 방영할 예정이다.

중국측은 방송 3사의 이 같은 움직임이 최근 중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東北工程)' 작업에 대한 한국 정부 차원의 대응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폐막한 '상하이 국제방송영상견본시 2006'(STVF 2006)에 참가한 중국 측 방송 관계자들은 "방송 3사가 정부의 영향력 하에 있는 것 아니냐"면서 "방송 3사가 일제히 고구려사를 다룬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이 중국의 동북공정 작업에 대한 한국 정부 차원의 대응이 아닌가"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견본시에 참가했던 KBS 관계자는 전했다.

특히 STVF에 별도의 독립부스를 만들어 참가했던 MBC가 최근 국내에서 시청률 30%를 돌파하며 인기몰이중인 '주몽'의 포스터를 대문짝만하게 붙여놓고 대대적인 홍보를 벌였던 데 대해 중국 취재기자와 방송 관계자들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KBS 관계자는 "이미 중국에서는 방송 3사가 고구려, 발해 소재 사극을 거의 동시에 편성한 의도에 대해 적잖은 의심을 품고 있다"면서 "과거 '대장금' 사례에서 봤듯이 만약 이를 '한류'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하려 든다면 중국 정부 차원의 대응이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중국 정부 내에서 해외 방송 프로그램의 수입ㆍ심의를 담당하는 광전총국(廣電總局)은 올해 1월부터 일방적인 '한류' 수출을 문제삼아 한국 드라마의 심의를 전면 보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이 지난달 중국을 방문했을 때도 당초 면담이 예정돼 있던 중국 광전총국장이 사흘 전에 갑자기 면담일정 취소를 일방 통보하는 등 '한류'와 '고구려 사극'을 둘러싼 이상기류가 감돌고 있다고 문화부 관계자가 밝혔다.

방송위원회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가장 문제삼고 있는 부분은 '한류'의 일방통행에 따른 무역 불균형이며 일부 방송사의 신중하지 못한 판매ㆍ홍보전략도 문제가 되고 있다"면서 "중국땅에서 고구려사를 다룬 드라마를 대대적으로 홍보한다든가 하는 신중치 못한 처신은 삼가해야 하며 이를 동북공정과 연계시키려 할 경우 외교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 정 열 기자 2006-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