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이라크에 웬 '에스키모 부대'

북극권과 인접한 미국 알래스카의 에스키모 젊은이들이 해외 파병길에 오르고 있다. 그것도 지구상에서 가장 춥다는 알래스카와 기후가 정반대인 열사(熱沙)의 나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터로 향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5일(현지시간) "알래스카 주방위군 소속 젊은이들이 대거 중동 전선에 차출되면서 이 지역 분위기가 매우 뒤숭숭한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알래스카 주방위군의 이라크 전선 배치는 사실 올해가 처음은 아니다. 주방위군 소속 병사 130명이 지난해 하와이 주방위군 여단에 섞여 이라크에 파병됐다가 올해 초 모두 복귀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자원자였다. 그런데 이번엔 좀 사정이 다르다. 알래스카의 혹독한 환경 속에서 사냥.낚시 등으로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 온 가장들까지 모조리 차출됐기 때문이다. 이들을 떠나보내는 가족과 주민들의 마음이 영 편치 않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특히 주민 386명 중 가장 건장한 청년 6명을 차출당한 콘기가냑 마을 주민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소집 영장을 받은 해럴드 아제안(23)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몇 년 전 방위군 복무지원서에 서명할 때만 해도 실제로 전쟁터로 불려나가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난감해했다.

미 국방부가 이번에 소집 명령을 내린 알래스카 주방위군은 모두 670명. 이 중 600명은 이라크에, 70명은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될 예정이다. 이들은 다음달 소집돼 미시시피주 셜비 캠프에서 석 달 동안 더위 적응 등 각종 실전 대비훈련을 받게 된다.

미 정부가 이처럼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라크전이 예상 외로 길어지면서 다른 지역에서 추가로 차출할 수 있는 병력이 사실상 고갈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미 한 번 중동행 수송기에 몸을 실었던 다른 지역의 주방위군에 "한 번 더 봉사해 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결국 '무더위'라는 단어조차 생소한 에스키모 젊은이들을 열사의 사막으로 보내게 된 것이다.

알래스카 주방위군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과 아시아 전선에 배치돼 '용감무쌍한 군대'로 명성을 날렸다. 하지만 종전 뒤 미국이 소련과 냉전을 벌인 뒤로는 해외에 파병되지 않았다. 소련과 가까운 알래스카가 냉전의 최전선에 위치해 이 지역을 방어하는 게 최우선 임무가 됐기 때문이다.

◆ 미국 주방위군 = 연방 예비군과 함께 미국 예비군 제도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주마다 설치.운영하며, 사령관은 주의회의 동의를 얻어 주지사가 임명한다. 17~33세의 미국 시민권자 중 지원자가 입대한다. 평소에는 각자 생업에 종사하다 매년 일정 기간 훈련을 받으면 된다. 전쟁이 발생해 병력 수요가 생기면 소집돼 일정 기간 훈련을 받은 뒤 곧바로 전장에 투입된다.

(중앙일보 / 박신홍 기자 2006-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