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가뭄… 삶이 쩍쩍 갈라진다

타들어가는 땅 ‘케냐’ 르포
옥수수로 한끼 때우고 가축도 죽어 최악상황
긴급구호 못받으면 350만명 굶어죽을 판

검은 대륙 아프리카. 사자 떼가 뛰놀고 문명과 거리가 먼 낭만이 흐르는 대륙으로 다들 알고 있다. 하지만 아시는지. 아프리카는 지금 신음 중이다. 6년째 이어지는 대가뭄. 비 한 줄기 내리지 않는 기근 속에서 사람들이 죽어간다. 그 고통의 대륙, 아프리카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태어나서 8개월이 지난 여자아이 막달리네 시몬을 만난 것은 케냐 북부의 한 도립병원에서였다. 두 손가락으로 팔을 감싸니 한마디가 남았다. “에~ 에~.” 가는 울음소리가 나오다 그쳤다 반복했다. “3.8㎏이에요.” 간호사가 말했다. 3.8㎏. 보통 8개월 된 아이의 체중은 8㎏ 안팎이다. 8㎏와 3.8㎏. 불과 4㎏ 남짓이지만 그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영양 실조에 걸린 시몬을 돌보는 건 열살 된 언니 이마미 샤론이다. 언니는 왼팔에 아기 머리를 받친 뒤 우유를 먹였다. 젖병은 없다. 컵으로 조심스럽게 아이 입술 사이로 우유를 넣는다. 울어대는 동생을 안고 등을 토닥거린다. 익숙하다. 24시간 병원을 지키느라 샤론은 학교를 그만뒀다. “엄마는 어디 갔어?” 낯선 이의 질문에 큰 눈만 깜빡인다. 엄마는 지금 결핵과 영양실조로 격리치료 중이다.

6년째 가뭄이 진행되고 있는 동아프리카 케냐. 지난 3월 초대형 재난지역을 뜻하는 ‘카테고리 3’이


선포된 지역이다. 당장 구호식량을 받지 못하면 350만명이 굶어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뭄은 너무나도 서서히 다가왔다. 이 가뭄, 45년 만에 최악이다. 지난해 동남아시아 지진해일(쓰나미), 그리고 며칠 전 인도네시아의 대지진도 카테고리 3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아프리카의 대가뭄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잊혀져 버린 카테고리 3이다.

케냐의 북부 투르카나 지역. 유목민이 많이 사는 이곳은 가뭄의 직격탄을 맞았다. 보이는 건 메마른 땅과 가시나무뿐이다. 차에서 내리자 눈 앞에 보이는 건 죽은 동물의 뼈. 당나귀 뼈라고 했다. “마지막 이동수단인 당나귀까지 죽었어요. 상황이 최악이라는 뜻입니다.” 월드비전 동아프리카 긴급구호담당 크리스틴 헤드(37)씨가 말했다.

마을 근처 갈로툼강에서 10대 자매가 땅을 판다. 이름은 아레가이와 아칼라리. 말라버린 강바닥에 파놓은 1m 깊이 구멍 속에 들어가 물을 담고 있다. 플라스틱 통 두 개로 가족 12명이 하루를 버틴다고 했다. 새벽부터 5시간을 걸어와 물을 담는다. 물동이를 이고서 다시 다섯 시간을 걸어 집으로 간다. “뭐 좀 먹었니?” 고개를 저었다. 하루 한끼, 구호단체에서 나눠준 옥수수만으로 산다. 구호식량 한끼 값은 한국 돈으로 50원이다. 물을 이고 나르는 것, 슬프지 않다. “가축들이 다 죽어서 슬퍼요. 물이 없어서, 풀이 하나도 없으니까….” 현지 긴급구호팀 관계자가 말했다. “강에는 물이 나올 때까지 파놓은 구멍이 수도 없이


많다. 아이들이 흙탕물을 마시면서 병투성이가 돼 버린다.” 가뭄은 천재(天災)라고들 한다. 오산이다. 헤드씨는 “아프리카 사막화와 기후변화의 가장 큰 주범은 바로 선진국의 산업화 때문에 생긴 지구 온난화 현상”이라고 했다.

굶주리고 목마른 아이들, 금을 캔다. 사금(砂金)이다. 에꾸아무(15)도 매일 갈라진 강바닥에서 사금을 캔다. 흙을 담아 채에 넣고 흔드는 일을 하루에도 수천 번씩 반복한다. 그렇게 하루 5∼10실링을 번다. 5실링(67원)은 물 한 잔 값이다. 에꾸아무와 가장(家長)인 어머니가 버는 돈은 고스란히 남동생(12)의 학비에 들어간다. 남동생 학교 보내고 막내동생 합쳐서 네 가족이 한 달을 매일 한끼씩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돈, 한국 돈으로 2만원(1500실링)이다.

월드비전 친선대사인 탤런트 김혜자씨는 “에꾸아무와 동생들, 3명이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후원하겠다”고 했다. 에꾸아무는 김씨의 103번째 결연아동이 됐다. 무표정하던 어머니도 울었다. “6년 전, 사흘을 굶고는 너무 배가 고파 웅크리고 자는 에꾸아무를 만났어요.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서 계속 찾았습니다. 유목민이라 못 찾을 거라고 했는데….” 김혜자씨, 많이 울었다. 반가워서, 또 가슴 한편이 아려와서.

(조선일보 / 박란희 기자 2006-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