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불가침론은 ‘자는 소도 웃을 일’

방송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의사소통 수단이며 대중문화를 창조하는 기구이다. 정치·문화적 영향력이 방송을 능가하는 매체가 없을 정도로 방송의 파괴력은 대단하다. 물론 방송 산업의 규모도 급성장하고 있으며 미래에는 지금까지 성장했던 것보다 더 빨리, 더 크게 성장할 것이다. 미국이 이런 방송시장을 그냥 스치고 지나갈 것이라고 낙관하는 것은 이르다. 그러나 방송계와 학계는 낙관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이 알토란같은 한국 방송시장을 그냥 보고만 있다고?

‘방송불가침’은 어리석은 예측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위한 협상이 진행 중인 가운데 한국 방송계와 학계 일부에서 검증되지 않은 예측이 마치 진짜인 듯이 나돌고 있다. 유언비어의 핵심은 미국이 방송시장의 개방을 요구하지 않거나, 아주 약하게만 요구할 것이라는 것이다. 떠돌아다니는 ‘방송불가침론’은 이런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소도 웃을 일이다. 미국이 그동안 보인 행태는 이런 전망을 일축하고도 남는다. 미국은 영화-방송-통신시장을 완전히 제압하지 않고서는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어렵고, 전 세계적인 문화적 패권·정보 종속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 같다. 공영방송이 ‘반미 사상’을 퍼뜨린다는 지적이 수구 세력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볼 때 미국은 한국 공영방송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가졌다고 유추할 수 있다. 이들의 영향력을 약화시키지 않으면 한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나는 반미 흐름을 차단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한국의 공영방송사는 공경제이고, 비영리적 영역이기 때문에 자유무역협정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낙관도 턱없는 추측이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의 자유무역협정(AUS FTA) 10조 1항에 따르면, 공영방송의 재정은 국가보조금이나 지원금의 제공을 금지한 조항에서 예외이지만 상업 사업을 하거나 다른 서비스 공급자와 경쟁 관계에 있는 방송은 공영방송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예외적 대우를 받을 수 없다. 이런 내용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포함된다면 KBS-2TV나 MBC는 공영방송의 취급을 받지 못할 것이다. 문화다양성협약에 의지하려는 경향도 조심해야 한다. 물론 세계 다수 국가들이 참여한 이 협약은 정치·도덕적으로 충분한 정당성이 있다.

그러나 한국 국회는 이 협약을 비준도 하지 않았으며 미국은 애초부터 반대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문화다양성 협약을 개방 반대의 근거로 삼기에는 미흡한 구석이 있다. 미국이 그동안 제시한 자료나 요구를 보면 한국 방송시장은 미국이 가장 노리는 분야의 하나이고, 개방 압력을 포기했다는 어떤 반증도 찾을 수 없었다. 미국을 비롯한 외국계 자본은 단순히 위성 재송신이나 하는 소극적 진출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투자를 통한 한국시장 진입을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다. 이들은 지상파방송, 보도채널에 늘 관심을 두면서 외국인 투자를 불허한데 대해서 불평하곤 했다. 미국은 다른 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을 때 상대국의 형편을 존중해 지상파방송의 개방을 제외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미국은 협정 대상국의 상황과 미국 투자자의 요구를 면밀히 살펴 어느 쪽이 미국에게 최대의 이익이 되는지를 선택해서 방송시장 개방을 요구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런데 한국의 상황은 미국이 방송시장의 전면적인 개방을 요구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이다. 일간지와 재벌기업들이 방송시장의 개방을 세계적인 추세라고 계속해서 떠들어 대고, 신문과 방송의 교차 소유를 통한 시너지 확대니, 투자 확대니 해서 정부와 국회를 계속해야 압박하고 있다.

이런 틈에 굳이 미국이 나설 이유가 없을 뿐이다. 미국은 한국의 신문재벌과 재벌의 방송사 소유욕망에 편승해 규제 완화를 기다릴 것이다. 신문재벌과 재벌들은 미국의 개방 요구에 맞장구치면서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 한다. SBS도 오래 전에 시장 개방을 간접적으로 표명한 바도 있다. 방송사의 20%의 지분을 의결권 없는 주식으로 만들어 외국 자본에 매각하면 상당한 외자가 들어와 주가가 껑충 뛸 것이다. 이런 개방 흐름에 수구 정당이 가세하고 있는 실정이다.

방송인들의 결단 필요한 때

한나라당-신문재벌-재벌기업이 방송의 사유화·개방화를 찬성하고, 이를 실행할 목적으로 정부와 국회를 압박해왔고, 그 압력은 더 가중될 것이다. 이렇게 한국에서 지배세력들이 물불 안 가리고 방송사를 소유하려고 무진 애를 쓰는데 미국은 큰 소리 내지 않아도 거기에 묻어갈 수도 있다. 미국은 이들과 연대하면 언제라도 한국 방송시장에 진입해서 투자도 하고, 경영권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느긋할 수 있다. 그 때가 되면 미국은 한국 방송시장을 물어뜯을 것이고 여기에 국내 자본과 매체가 가세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을 예상한다면 방송사·규제기구·학계·시민언론운동 단체들도 훗날 어려울 때를 대비해야 한다.

(미디어오늘 2006-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