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X '빛좋은 개살구' 될 수도

요즘 증권선물거래소(KRX) 사람들은 속으로 아주 답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전격 통합된 독점기업에 고액 연봉. 겉으로는 평안해 보이지만 사실 KRX의 앞날이 마냥 밝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지금 KRX는 일단 덩치를 키워야할 단계에 와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NYSE가 유로넥스트를 삼키는 등 거래소 인수합병(M&A) 붐이 일고 있는 마당에, 넋 놓고 있다가는 외국기업 유치는커녕 우리 기업마저 뺏기기 십상이지요. KRX에서 주가가 60만원인데 다른 거래소에선 1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면, 거래소를 옮기려는 기업이 줄을 서지 않겠습니까.

덩치를 키우려면 기업공개(IPO)도 해야 하고, 외국기업도 유치해야하는데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은 없어 보입니다.

이영탁 이사장이 일찌감치 중국기업을 상장한다고 큰소리 쳐왔지만, 글쎄요. 전 세계 거래소가 중국 기업을 모시기 위해 중국대륙으로 몰려올 줄은 미처 몰랐던 건 아닐까요.

IPO가 꼭 필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추진했다가는 미국과 유럽 거래소의 먹잇감이 되는 건 아닐지 걱정도 됩니다.

어쨌거나 급선무는 일단 아시아에서만이라도 ‘우량 거래소’로 살아남는 일인데 이 또한 순탄치는 않습니다.

우리도 아시아 '맹주'가 되기 위해 일찌감치 뒤처진 나라들을 지원해 왔는데요. 사실 뿌린 만큼 거두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의 경우 10년간 지원하고 가르치며 공을 들였더니, 정작 시스템을 도입할 때는 태국 시스템이 공짜라며 덥석 받아버렸지요. ‘차라리 그 때 공짜로 줬어야 한다’는 볼멘 소리도 나옵니다. 공짜라도 우리 인프라가 진출했다면 관련 IT산업 수출이 크게 늘어났을 거구, 진땀을 빼고 있는 베트남 기업 상장도 좀 더 쉬웠을테니까요.

지난해말 태국도 코스콤(옛 증권전산)이 기껏 공을 들여놨더니, 더 값싼 대신증권의 선물거래시스템을 선택한 바 있지 않습니까. 냉혹한 현실이죠.

최근에는 거래소가 직접 캄보디아에 49%까지 지분을 참여하겠다고 했는데, ‘이번만큼은 본전을 뽑겠다’는 의지의 표현 아닐까요.

덩치 키우는 것만이 해답은 아닙니다. 어떤 형태로든 미국과 유럽 등 큰 거래소와도 제휴를 해야 합니다. 실제로 일본, 싱가포르, 홍콩 등 거래소는 미국 나스닥에 제휴를 원하는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데, 우리도 가만히 있다가는 동북아의 '왕따' 거래소가 될 지도 모릅니다.

미국과 유럽의 거래소 통합이 완성되면 다음 타깃은 자연스레 아시아로 향하겠죠. 일례로 한미 FTA가 추진되면, 외국인 5%지분 매입 제한도 없어지면서 KRX에 대한 M&A도 훨씬 쉬워질 겁니다.

아직까지 KRX는 '할 일은 많으나 손에 잡히는 일은 없는'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동북아의 금융허브는 커녕 동북아의 ‘빛 좋은 개살구’되는 건 아닌지 조금 걱정도 됩니다.

(머니투데이 / 김영래 기자 2006-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