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중국사에 편입"…제2 동북공정인가

옛 일본군이 러일전쟁 때 전리품으로 가져간 발해의 비석을 중국으로 반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중국에서 일고 있다고 일본 아사히 신문이 28일 보도했다. 신문은 중국이 이 비석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는 발해 이전 이 지역에 존재했던 고구려 역사를 둘러싼 한.중 간 논쟁이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의 비석은 현재 일본 왕궁에 보관 중인 '홍려정비(鴻井碑)'다. 이 비석은 1908년 일본 왕궁의 후키아게(吹上) 정원에 옮겨 세워졌다. 러일전쟁 당시 뤼순(旅順)을 점령한 일본군이 전리품으로 비석과 비각(정자)을 함께 들고 와 일왕에게 바친 것이다. 일본 방위연구소 도서관에 소장 중인 '메이지 37, 38년(1904, 05년) 전역 전리품 기증서류'에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이 사실은 99년 일본의 발해사 전공 학자에 의해 학계에 처음 알려졌다.

중국 학계는 이 비석이 당나라와 발해가 군신관계를 맺었음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유물이라며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02년부터 '고구려는 중국의 동북 변경지역에 있던 하나의 지방정권'이라는 요지의 '동북공정'을 국가적 프로젝트로 추진하고 있다. 중국 역사학계는 최근 1~2년 사이에 홍려정비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04년에는 관련 학자들이 중화사회문화발전기금과 함께 '당 홍려정비 연구회'를 설립했다. 지난해 8월에는 처음으로 중국.일본 학자들을 초청한 학술심포지엄을 다롄(大連)에서 열었다.

중국 정부는 비석 반환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민간에서는 반환 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3월 다롄일보에 실린 홍려정비에 관한 특집기사는 "국보의 반환에는 단결이 중요하다"고 호소했다. 이 기사는 또 홍려정비와 마찬가지로 러일전쟁 때 일본으로 반출됐던 한국의 북관대첩비가 정부 간 교섭에 의해 지난해 한국 반환이 실현됐다는 소식도 사진과 함께 소개했다.

원래 소재지였던 뤼순에서는 이 비석을 반환받을 경우에 대비한 전시관 건설계획이 마련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롄시 자문기구인 정치협상회의는 올 1월 이 비석에 관한 연구를 촉구하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일본 왕실의 재산을 관리하는 궁내청은 28일 아사히 보도에 대해 "이 비석은 일본의 국유재산"이라며 "출입제한이 있어 일반 공개는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99년 홍려정비를 소개하는 논문을 처음 발표한 일본 고쿠가쿠인(國學院)대학 도치기단과대학의 사카요리 마사시(酒寄雅志) 교수는 "발해국 출범 당시의 상황을 연구하는 데 더 없이 소중한 자료"라면서 "왕궁 깊숙한 곳에 둘 게 아니라 일반에 개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 홍려정비 = 713년 당나라 조정이 발해왕을 '발해군왕(渤海郡王)'으로 책봉한 사실을 기록한 비석으로, 애초 발해 영토(현 중국 뤼순시)에 세워져 있었다. 러일전쟁 때 뤼순을 점령한 일본군에 의해 일본으로 반출돼 1908년 일본 왕궁의 정원에 새 터를 잡았다.

(중앙일보 / 예영준 특파원 2006-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