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 다른 길 걷는 韓日대미외교

한국과 일본은 지정학적으로는 비슷한 처지지만 외교에서는 대조적 정책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들이 북한의 위협을 부르짖던 1970년대, 일본의 북한에 대한 관심은 낮았다. 햇볕정책에 따라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한국민의 기대가 쏠린 1990년대 이후로는 일본에서 북한의 위협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같은 차이가 현저한 영역이 대미(對美) 관계다. 최근까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협력한 것은 한국이었지 일본이 아니었다. 6·25전쟁 이후 한국은 미국의 요망에 따라 베트남전에 병사를 보냈다. 그러나 일본은 헌법 규정이나 국민 여론 등을 이유로 군사적인 대미 협력의 범위를 좁히고 해외 파병에도 매우 소극적이었다.

대미 협력을 우선시하는 한국과 신중한 일본이라는 구도는 근년 들어 역전하고 있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뒤 한국은 대미 협력의 범위를 한정하고 북한이나 중국에 대해 독자적인 외교 자세를 취하는 일이 늘어났으나 일본 정부는 대미 협력을 적극 추진했다. 이라크 파병만 해도 결과로는 양국이 모두 병력을 보냈지만 한국의 소극적 자세와 일본의 적극적 자세의 차이는 명백하다.

올해 들어 합의에 이른 주일미군 재편만큼 한일 양국의 대조적인 자세를 보여 주는 것도 없다. 오키나와(沖繩)의 해병대 8000명의 괌 이전이 결정됐지만 이는 일본이 미국에 저항했기 때문은 아니다. 미국은 동아시아보다는 중동의 불안정이나 대(對)테러전쟁을 우선시하는 쪽으로 전환했고 해병대 이전도 새 전략에 따른 병력 배치를 위한 조치로 봐야 한다. 그런데 그 이전 비용은 주로 일본이 부담하게 됐다. 즉, 미국은 동아시아 방위에서 발을 빼려 하는데 그 비용을 일본이 대는 것이다.

이 기괴한 정책은 왜 생겨났을까. 한마디로 미국에 버림받는 것에 대한 공포라 할 수 있다.

동맹국의 미국에 대한 태도는 ‘말려드는’ 것과 ‘버림받는’ 것 2가지에 대한 공포로 설명할 수 있다. 미국이 전쟁을 시작하면 동맹국은 자신의 뜻에 반해 전쟁에 말려들 수 있다. 한편 정책 전환에 따라 미국이 동맹국의 방위를 그만두면 동맹국은 가상 적국 앞에 버림받을 수도 있다. 일찍이 한국은 ‘말려들’ 가능성보다 ‘버림받는’ 공포를 중시해 긴밀한 대미 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6·25전쟁의 경험도 있어 미군으로부터 방치되면 국토방위는 불가능하다는 우려가 높았다. 거꾸로 일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기억도 있어 ‘말려드는’ 공포 쪽이 늘 강했다. 대미 협력의 강화란 전쟁에 ‘말려들’ 가능성을 높이는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냉전 종식 이후 한일 양국은 대조적 방향으로 향했다. 한국에는 통일의 기회가 생겨났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 반면 일본에서는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발을 빼면 북한과 중국이라는 두 위협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우려가 고조됐기 때문이다. 한국이 ‘버려지는’ 우려에서 ‘말려드는’ 공포로 향했을 때 일본은 ‘말려드는’ 우려에서 ‘버림받는’ 공포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시종일관 보이는 특징은 한일 간의 협력이 매우 적다는 점이다. 1994년 이후 해상자위대와 한국 해군 사이에 교류가 진행되긴 했으나 양국 정부 간 불신감은 높고 군사 전략이나 대외 정책에서 상호 협력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양국은 틈이 벌어진 채 대미 관계에서는 우왕좌왕을 반복해 온 실정이다. ‘말려드는’ 것과 ‘버림받는’ 것 사이에서 시계추처럼 흔들리는, 과거 반세기 넘게 계속되고 있는 잔혹한 희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한일 협력의 가능성을 다시금 찾아볼 필요는 없을까.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교수>

(동아일보 2006-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