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만 챙기다 펑크 난 대북협상

北, 경의·동해선 시험운행 일방 취소

25일로 예정된 경의선·동해선 철도시험운행이 북측의 일방적 취소 통보로 무산된 것과 관련, 이번 대북협상 과정에서 정부의 전략 부재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와함께 철도시험운행에 대한 장밋빛 낙관론을 시종일관 펼쳐온 이종석 통일부장관의 대북협상 태도와 방식에 근본적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 장관의 위기관리능력이 도마에 오르는등 결과적으로 오판을 한 통일부 등은 시험운행 무산에 따른 거센 후유증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 정부의 협상전략 부재 = 시험운행 무산 책임은 일차적으로, 열차운행시간표까지 진척시킨 합의사항을 하루전에 일방적으로 취소한 북측의 표변에 있다. 그러나 4차 장성급회담에서 북한 군부는 새 해상경계선 설정 문제를 군사보장합의서 체결과 연계시키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음에도 이에 대한 신호를 소홀히 여긴채 처음부터 판단착오를 한 것은 물론 지나친 낙관론이 오판을 불러 왔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이에따라 협상총괄부처인 통일부와 국방부 등의 협상 자세와 태도가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

이에 앞서 정부는 13일 철도·도로 실무접촉에서 25일 열차시험 운행에 합의하면서 이번에는 북한 군부도 시험운행을 승인했다고 지나치게 확신했다. 정부는 특히 북측의 경공업 원자재 제공요청 등을 철도 시험운행 문제와 연계한 전략이 맞아떨어졌다며, 군사보장합의서 체결까지 낙관하는 등 아무도 시험운행이 무산되리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다.

남측은 23일 오전 비무장지대(DMZ)를 통과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교환하는 시도를 했으나 이때부터 북측의 태도가 갑자기 싸늘하게 바뀌었다.

북측은 이날 저녁 군사실무회담 단장 명의의 전통문으로 “서해 상 충돌방지와 같은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국방부에 통보해온 것이다. 국방부는 이날 이같은 내용을 즉각 공개하지 않았다.

북측 대남협상 라인은 24일 오전까지 명단교환에 대한 답을 주겠다고 요청한 뒤 결국 군사보장 합의서 미체결을 이유로 취소를 통보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남측은 일반 문서교환이나 구두 합의에 의한 편법으로 일회성 시험운행이 가능하다며 오판을 하고 말았다.

◆ 실무라인 만 믿고 날짜 못박은 게 오판의 씨앗 = 북한은 13일 제12차 남북 철도·도로 연결 실무접촉에서 열차 시험운행에 합의하면서도 군부의 군사보장조치를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당시 실무접촉에 참가한 북측 인사들은 모두 군부가 아닌 내각의 대남정책 책임자들이었다. 그러나 23일 북측이 태도를 바꾸게 된것은 경협 협상파인 노동당 통일전선부와 내각의 입장과 대립각을 세운 북한 군부 강경파가 막판 뒤집기를 시도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있다. 체제수호를 우선시하며 남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끌려가는듯한 남북 경협의 문제점을 든 군부 강경파의 손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들어준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과정에서 통일부 등 우리 정부당국은 북한 군부 강경파가 언제든지 제동을 걸수 있다는 개연성을 고려하는 신중함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

특히 시험운행의 핵심인 군사보장합의서 체결 없이 시험 운행 날 짜부터 못박은 것은 협상과정의 치명적인 실수였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우리 협상팀은 장성급회담을 통해 드러난 ‘체제수호 의지’등 북한 군부의 의도를 정확히 간파하지 못한 셈이 됐다.

한마디로 지나친 낙관론이 불러온 오판탓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꼴’이 됐다. 협상기간 내내 북한의 협상전략에 끌려다니다가 결국 국민에게 실망감만 안겨준 우리 협상전략의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통일부의 위기관리능력 시험대 = “북한 군부도 동의한 게 아니겠느냐?” 이 통일부장관이 지난 18일 장성급회담에서 군사보장 합의서 체결이 무산되고 추가 군사 실무접촉 날짜조차 잡지 못한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다. 이 장관이 교류협력 속도에 대한 욕심이 앞선 나머지 신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 전대통령의 ‘ 열차방북’ 가능성에 대해서도 개성에서 평양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어떨지 모르겠으나 전체적으로 비관해선 안된다”고 시종 낙관론을 펼쳤다.

그러나 이 장관은 자신의 낙관론이 그릇됐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앞으로 후폭풍을 각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 장관의 상황판단 및 대북정책 추진 방식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 시험운행 협상과정에서 하루가 멀다 않고 공개발언을 해온 이 장관은 시험운행 무산후 입을 다물고 말았다. 취임 100일을 넘긴 이장관의 위기관리능력이 본격 시험대에 오르면서 향후 거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화일보 / 정충신 기자 2006-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