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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탐구한미FTA] 멕시코 ① 나프타 12년 명암
[한-미 FTA 집중탐구: 1부-다른 나라에서 배운다] 멕시코-① 나프타 12년 명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은 흔히 ‘제2의 개항’에 비유된다. 우리 사회와 경제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뒤바꿀 수 있는 폭발력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협상 추진을 둘러싼 찬반 양론도 점점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이 협정을 맺고 난 뒤 우리 사회의 모습, 국가적 이익의 관점에서의
엄밀한 득실계산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한겨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집중탐구’ 시리즈의 제1부로 이미 앞선 길을 걸어간 나라들의 실상을 통해 우리의 미래를 예측해
보고자 한다. 이미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나라들뿐 아니다. 미국과 협상을 중단한 나라의 경험도 우리에게는 값진 교훈거리다. 이들 나라의
현지 취재를 통해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가져올 대차대조표, 그들이 한국에 던지는 충고에 귀를 기울이려 한다. 당사국인 미국 내의 자유무역협정
반대 목소리를 미국 정부가 어떻게 협상전략으로 활용하느냐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1부가 끝나는 대로 분야별로 자유무역협정이 몰고올 파고,
외교·안보적 영향,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노선 등을 2, 3부로 이어서 집중탐구할 예정이다.
농민 130만 땅 잃고 도시로…불법 노점 정부청사 에워싸
생존의 몸부림은 법과 제도보다 앞서는 것일까?
주말 멕시코시티 거리에서는 그랬다. ‘시의 배꼽’인 소칼로광장 주변 도로는 언제나 노점상들로 가득차 있다. 대통령 영빈관을 비롯해 주청사와
시청,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등 멕시코 상징물들을 포위하다시피 하고 있다. ‘코메르시안테스 암불란테스’(무척 많은 행상들이란 뜻)로 불리는 이
노점상들은 모두 불법 영업자들이다. 멕시코 일간신문 <엘 우니베르살>은 멕시코시티에는 이런 불법 노점상들이 6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파는 물건들은 복제 시디, 유명 상표를 도용한 물품 등 대부분 불법제품이다. 그런데도 노점상들 옆에 즐비하게 서 있는 경찰들은
뜨악하게 쳐다볼 뿐 단속에 손을 놓고 있다.
노점상들은 대부분 멕시코 남부 농촌 출신들이다. 멕시코 통계청 추정으로 1994년부터 2002년까지 농업 부문 이탈자 수가 13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농사를 지어서는 먹고 살 수가 없어 도시로 밀려온 사람들이다.
수출 증가 뒷편 저성장 그늘…생존 몸부림
멕시코는 지난 92년 12월 미국·캐나다와 함께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을 맺어 94년 1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나프타 발효 후
‘마킬라도라’(보세혜택이 있는 수출임가공공장)를 중심으로 한 멕시코 제조업은 대미 수출호조로 크게 활기를 띠고 있다. 멕시코 북부지역의 채소,
열대과일, 화훼농가들은 거대시장인 미국에서 몰려오는 주문으로 즐거운 비명을 올리고 있다. 옥수수 가루로 얇은 빈대떡처럼 만든
토르티아·타코·케사디아 같은 멕시코 전통음식들은 이제 미국 남서부 식당가에서 흔히 보는 메뉴가 됐다. 황금빛 투명한 병에 담긴 멕시코산
코로나맥주는 하이네켄과 함께 미국 맥주시장 점유율 1위를 다투고 있다. 대신 1억600여만명의 멕시코 국민들은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에 ‘전세계
최대 콜라 소비시장’을 선물했다. 미국과 멕시코는 이렇게 서로 주고받으며, 경제적으로는 한몸이 되어가고 있다.
컨설팅회사 퍼블릭스레티지스의 루이스 델 라 카예(46) 대표는 “나프타를 계기로 멕시코가 북미와 남미를 잇는 국제적 상업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다”고 말했다. 멕시코 경제부 국제통상담당 차관보를 지낸 그는 나프타 체결 당시 멕시코 쪽의 실무협상 주역이었다. “나프타 발효 전에는 한 달
평균 수출액이 50억달러 정도였으나 올해 2월에는 200억달러를 넘어섰다. 수출품목도 1차 상품 위주에서 섬유·자동차·전자 등 공산품 중심으로
다양화하고 있다.” 나프타 이후 시장개방에 자신감을 얻은 멕시코는 2003년 11월까지 무려 32건의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다.
대통령 경제보좌관실의 후안 카를로스 베이커 나프타 이행평가담당 국장은 “수출과 제조업 생산성 증가, 외국인 직접투자 증가 등 세 가지
측면에서 멕시코는 자유무역협정을 맺어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힐 수 있을 것”이라고 자랑했다. 그는 “개발도상국인 멕시코가 나프타 가입으로 단숨에
선진국과 동등한 자격을 얻으면서 제도와 관행도 빠르게 선진화하고 있다”며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를 강조했다.
공유지 잃은 농민 알몸 시위…어린이 노숙자 10만명 넘겨
그러나 멕시코시티 거리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나프타의 효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서민들의 삶의 현장에서는 짙은 그늘이 가득했다.
멕시코시티의 또다른 중심가인 레포르마 대로에서는 요즘 주말마다 수십여명 여성들이 번갈아 알몸시위를 하고 있다. 멕시코 동부 베라크루스주에서
올라온 1천여명의 농민들이다. 이들은 정부가 마을의 농지공유지(에히도)를 없애는 바람에 삶터를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멕시코 정부는 나프타 체결
직전 미국의 ‘선결 요구’에 따라 농지 공유제도를 폐지했다.
멕시코시티에 땅거미가 질 무렵이면 곳곳에 어린이 노숙자들이 눈에 띈다. 이들이 낮에 하는 일은 주로 자동차 청소다. 지나가는 차들이 멈추면
느닷없이 다가와 이리저리 닦아주고 주는대로 돈을 받는다. 유니세프의 최근 조사 결과, 멕시코 전체에 이런 어린이 노숙자들이 10만명을 넘는다고
한다.
멕시코 정부는 나프타 체결 당시 ‘좀더 많은, 좀더 좋은 일자리’를 약속했다. 실제로 나프타 발효 뒤 2000년까지 7년 동안 50여만곳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기간 내수위주의 중소기업, 도시 자영업, 농민 등 개방에 취약한 계층들은 생존의 벼랑 끝으로 몰렸다.
2000년대 들어서는 미국 경제의 침체로 제조업의 고용창출 능력도 떨어졌다. 그 결과는 ‘질 낮고 불안전한 일자리의 양산’이다. 멕시코 정부의
공식 통계로도 지난해 신규 취업자 10명 가운데 7명이 비정규직이다. 절대빈곤 계층으로 분류되는 인구도 전체의 31%에 이른다. 멕시코칼리지의
알베르토 아로요 교수(경제학)는 “나프타가 거대 초국적 기업들과 일부 수출 대기업에만 혜택을 줬을 뿐 국가경제 전체로는 ‘심각한 양극화와
저성장’을 안겨줬다”고 말했다.
“내부 산업연관 붕괴” 수출-성장 엇박자
저성장은 원인은 나프타 이후 멕시코 내부의 산업연관 체계가 무너진 데 있다. 대기업과 외국기업들의 수출이 성장을 이끌고 있지만, 이들은
멕시코의 값싼 노동력만 활용할 뿐 대부분 원부자재와 부품을 중국 등 멕시코 이외 지역에서 들여온다. 나프타 체결 후 멕시코의 교역량이 급증했으나
98년 이후 한번도 무역수지 적자를 벗어나지 못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산업·지역·계층간 양극화는 멕시코 국민들의 분열과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멕시코 사회보험청이 집계한 2004년 최상위 5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4만908페소(약 350만원)로, 최하 1분위 가구의 1912페소(16만원)와 20배 이상 차이가 난다. 멕시코 국립자치대의
카를로스 우스캉가 교수(국제관계학)는 “국내외 정치환경이나 경제사정으로 봐서 당시 나프타가 멕시코 정부에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이해하지만
국민들을 잘살게 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분명히 적절한 정책수단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양극화에 대한 멕시코 경제관료들의 의견은 다르다. 퍼블릭스테리티지스의 루이스 대표는 “어떤 경제정책도 긍정적인 면이 있으면 부정적인 현상도
생기게 마련”이라면서 나프타 이행과정의 양극화를 당연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후안 카를로스 대통령 경제보좌관실 국장은 “소득 양극화는 소득이 낮은
사람들의 능력과 자질의 문제이지 나프타 때문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성장잠재력 높이기’와 ‘양극화 해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우리 정부의 계획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
통계로 본 멕시코의 12년
외국인 직접투자 2천억달러…통화위기 옛말 연평균 성장률 1.43% 중남미 나라중 16위
나프타가 지난 12년여 동안 멕시코에 준 선물은 수출과 외국인 투자유치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지난해 수출액은 2127억달러로 나프타 발효
직전인 1993년(518억달러)에 견줘 4배 이상 늘었다. 전체 수출에서 미국시장 비중이 85.7%를 차지해, 나프타의 힘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94년 이후 지난해 말까지 외국인 직접투자는 모두 2033억달러로 연평균 185억달러의 외국자본을 끌어들였다. 외환보유고도 687억달러로
늘어났다. 83년과 94~95년, 10년 주기로 반복됐던 멕시코의 통화위기는 이제 확실한 과거사로 넘어갔다는 게 멕시코 정부의 평가다.
하지만 성장지표는 저조하다. 멕시코 중앙은행이 집계한 연도별 1인당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보면, 94년 이후 2005년까지 연평균
1.43%에 불과하다. 멕시코가 2차 세계대전 후 70년대 초반까지 강력한 보호무역(수입대체산업화전략)을 펼쳤던 시기나 76년부터 82년까지
석유수출호황기의 연평균 3%대 증가율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멕시코칼리지의 알베르토 아로요 교수(‘자유무역에 관한 멕시코행동연대(RMALC)’
이사)는 “94~2003년에 중남미 32개국의 연평균 성장률을 비교하면 멕시코가 16위”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말 공식 실업률은 3.6%로, 통계상으로 보면 고용이 안정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고용의 질이 문제다.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노동연구·교육원(CILAS) 연구원은 “멕시코 전체 경제활동인구 4600여만명 가운데 사회보험을 적용받으며 안정된 일자리를 가진 사람은
1300만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3300여만명이 임시직이나 지하산업 등에 불완전 고용 또는 사실상 실업상태로 있다”고 전했다. 또 취업자 10명
가운데 4명이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수입으로 생활하고 있다. 아예 소득이 없으면서 취업자로 분류되는 무급가족종사자도 지난해 말 현재
390여만명에 이른다. 나프타 이후 가장 활기를 띠고 있다는 제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주머니 사정은 더 나빠졌다. 93년의 실질임금을
100으로 했을 때 2005년의 제조업 실질임금은 72.3에 머문다는 게 멕시코 통계청의 공식 발표다.
멕시코 하원 빅토르 수아레스 의원
“농업부분 너무 많이 양보 지금은 외국기업이 지배”
멕시코 정부는 2003년 11월 일본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끝으로, ‘더이상 협정추진은 없다’는 이른바 ‘에프티에이 모라토리엄 선언’을
했다. 나프타 체결 뒤 무려 32개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뒤 나타난 부작용에 대한 국내 반발이 워낙 심해졌기 때문이다. 오는 7월2일로 예정된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나프타 재협상’ 요구도 나오고 있다. 식량주권 및 지속가능한 농촌개발을 위한 연구센터(CEDES)의 위원이자 멕시코
하원의 경제·통상·농업위원회 위원인 빅토르 수아레스 의원(민주혁명당)이 대표적으로 그런 요구를 하는 정치인이다.
- 나프타 체결 당시에는 지금 나타나는 부작용을 충분히 예상하지 못했는가?
= 협상의 구체적인 내용을 체결 직전까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강력한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을 추진했던 카를로스 살리나스 당시 대통령이 측근
경제관료들과 개인적으로 잘 아는 몇몇 기업인들과 정보를 공유했다. 심지어 의회조차도 비준 직전에 방대한 협상자료를 넘겨받아 제대로 검토하지도
못하고 통과시켰다.
- 그래도 나름대로 충분한 명분이 있었기 때문에 의회에서 비준한 것 아닌가?
= 정부는 외국인 투자 확대를 강조했다.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면 일자리도 늘어나고 국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는 논리였다. 미국과
손잡으면 멕시코가 세계로 뻗어나갈 것이라는 환상을 국민들에게 심어준 것이다. 이런 정부 홍보가 먹혀들었고, 당시에는 집권 여당이 압도적
다수의석을 차지해 의회 저지가 불가능했다.
- 세부적인 협상 실무절차에서는 어떤 문제가 있었나?
= 원천적으로 동등한 협상이 될 수 없었다. 거대 경제대국인 미국과 캐나다는 이미 1988년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해 서로 공조하면서 멕시코를
협공했다. 멕시코의 협상 실무진은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해 미국식 경제논리에 경도된 경제관료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래서 ‘나프타 협상은 미국
사람들끼리 이뤄졌다’는 농담도 한다.
- 멕시코에 대한 나프타의 가장 큰 부작용을 꼽는다면?
= 협상팀에서 농업 부문을 너무 많이 양보하는 바람에 피해가 예상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농업은 단지 경제논리로만 접근할 수는 없다.
농산품은 일반상품과 달리 문화이고, 사회안전망이며 국민의 생존 기반이다. 이런 중요한 영역이 지금은 외국 기업의 지배에 놓여 있다.
-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한국에 조언을 한다면?
= 미국은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할 때 항상 과거 협정을 최소 기준으로 삼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의회에서 통과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과 이미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여러 나라의 경험을 교훈 삼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예상되는 긍정적·부정적 효과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내부
이해당사자들 간의 협의가 협상보다 더 중요하다.
<멕시코시티 / 박순빈 기자> (한겨레신문 2006-5-23)
[집중탐구 한미FTA] 멕시코 ② 흔들리는 농업
[한-미 FTA 집중탐구: 1부-다른 나라에서 배운다] 멕시코-② 흔들리는 농업
규제없앤 농업개방…제재수단도 없다
경기도 평택시 대추리 농민들에 대한 강제퇴거 작전이 펼쳐질 즈음인 이달 초, 멕시코의 한 농촌마을에서도 경찰과 농민 시위대 간에 팽팽한
대치전이 벌어졌다. 멕시코시티 북서쪽으로 약 25㎞ 떨어진 산살바도르 아텐코. 폭스 대통령이 2002년 국제공항 신설 후보지로 이곳을 선정하자
주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공동경작지 폐지 ‘쫑겨나는 농민’
아텐코 지역에서는 농민들의 시위가 4년여 동안 끊이지 않고 있다. 주민들의 요구사항은 “땅을 돌려 달라는 것”이다. 몇해 전 농사를
포기하고 인근 철공소에 다니는 테오도로 마르티네스(40)는 “옥수수와 콩값이 폭락하는 바람에 농사를 지어도 먹고살기 어렵다. 그렇지만 농토는
주민들에겐 유일한 생존기반이기 때문에 끝까지 저항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텐코의 농토는 주민 소유가 아니라 멕시코 정부 재산이다. 엄밀히 말해 농민들이 정부 땅을 점유한 채 버티고 있는 것은 불법인 셈이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는 13년 전에 갈라졌다. 멕시코 정부는 나프타 가입을 추진하면서 마을단위 소작농들의 농지 공동소유·공동경작(에히도)을
보장하는 헌법 27조를 1993년 폐지했다. 당시 살리나스 정부가 추진한 나프타 협상의 ‘선결과제’였다. 비농민과 외국인의 농지소유금지 제도도
철폐했다. 12개 주요 곡물에 대한 약정가격수매제 등 농업부문에 대한 정부 지원정책도 없앴다. 농산물시장을 개방해 낙후한 농업을 현대화한다는
명분이었다.
94년 1월 발효된 나프타에 따라 멕시코는 일부 기초곡물을 제외한 대부분 농산품의 관세를 10년 동안 단계적으로 철폐했다. 그 결과는
농산물 수입의 급증으로 이어졌다. 나프타 발효 전 60억달러였던 멕시코의 농산물 수입액은 2002년부터 연평균 120억달러를 넘어섰다. 멕시코산
채소와 화훼류 등의 대미 수출은 늘었지만, 수출보다 수입 증가폭이 훨씬 크다. 멕시코 국민들이 한해에 소비하는 농산물과 가공식품류 가운데 수입품
의존율은 94년 20%에서 2004년 48%로 치솟았다. 하비에르 아길라 국립기술학교 농업부문 연구원은 “멕시코는 이제 미국산 농산물의 3대
수입국이자 미국 농산물 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로 전락했다. 멕시코의 생산원가보다 평균 30%나 낮은 가격에 수입농산물이 들어오는데 무슨 수로
버틸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농산품 등 수입 10년새 28%P↑
미국과 멕시코 간 농산물의 공정한 경쟁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멕시코의 농민 1인당 평균 경작면적은 미국의 3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미국 농민들은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받아 실제 생산원가를 밑도는 가격으로 멕시코 시장을 파고든다. 미국 곡물회사들이 나프타에서 정한
연도별 할당량을 초과해 기초곡물을 수출하는데도, 멕시코 정부는 긴급수입제한이나 보복관세 부과 등의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나프타 조문에 한쪽이
농산물 교역에 관한 합의를 위반해도 ‘대항조처에 대해 가맹국 간에 협의할 수 있다’고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가상승도 멕시코 정부로서는 우려할
수밖에 없다. 멕시코 연방경쟁위원회(CFC) 에두아르도 페레스 모타 위원장조차 “멕시코는 미국 농산물 수입업자들의 독점과 특혜를 보호하는 나라가
돼 버렸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을 정도다.
농민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는 아텐코의 마을회관에는 이런 글귀가 적힌 대형 펼침막이 걸려 있다. ‘오늘 우리는 말한다. 이제 그만 좀
해!(Ya! Basta!)’
분노의 옥수수

옥수수로 만든 ‘국민식품’ 700%나
올라 유통·가공 국영화 폐지뒤 다국적사 장악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쪽의 가장 강력한 논리는 ‘소비자 후생의 극대화’다. 소비자들에게 가장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제공한다는 이야기다.
멕시코의 농업부문 개방 논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프타 이후 멕시코에서 나타난 현실은 정반대다.
옥수수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곡물이다. 생산비중이나 소비량이 가장 많다. ‘옥수수를 빚어서 사람을 만들었다’는 신화가 존재할 정도다.
옥수수를 으깨고 갈아서 만든 식품인 ‘토르티아’는 멕시코 사람들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먹는 음식이다.
그런데 토르티아의 값이 지난 11년 사이에 무려 698.4%나 올랐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기간 옥수수 도매가격 상승률은 197.5%로,
물가상승률(348.9%)보다 훨씬 낮다는 점이다. 옥수수 생산농가의 실질소득은 줄어든 셈이다. 나프타 이후 미국산 옥수수의 수입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수입 증가로 옥수수 원료값은 별로 오르지 않았는데도, 소비자들이 사먹는 토르티아 값은 왜 7배나 올랐을까? 원인은 옥수수 유통 및
가공단계의 변화에 있다. 나프타 이전에는 옥수수 유통·가공 산업은 ‘코나수포’라는 국영기업이 도맡아 했다. 생산자로부터 옥수수를 수매하는
가격(도매가격)은 정부 고시가격으로 고정돼 있었고, 코나수포는 기본적인 운영수입만을 유통마진으로 보장받았다. 이 때문에 토르티아와 같은 최종
가공식품의 소비자가격도 도매가격 변동폭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프타 이후 유통·가공단계의 국영체제가 해체되면서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운 민간기업들이 밀고 들어왔다. 카길이나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ADM), 노바티스, 아벤티스 등 다국적 곡물메이저나 대형 식품회사들, 민사와 빔보 등 멕시코 재벌 계열 식품회사들이 옥수수 유통시장을
장악해 과점체제를 구축했다. 옥수수 재배 농민들의 소득은 감소하고 소비자의 부담은 늘어나는 반면 이들 과점기업의 수익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농민사업체 토레스 조합장
“불공정 철폐없인 자구노력도 한계”
멕시코 농민들도 나프타 이후 시장개방의 파고를 극복하기 위해 나름대로 치열한 노력을 하고 있다. 멕시코의 대표적인 농민 영농사업체로 꼽히는
‘시아코멕스’도 이런 노력의 하나로 태어났다. 이 영농조합은 1998년 농민 50여명이 돈을 모아 문을 연 뒤 현재는 전국 160여곳에
곡물저장·가공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이스마엘 플로레스 토레스 조합장은 “전국 농민회원 2만9천여명으로부터 옥수수, 콩, 수수, 밀 등을 수매해 가공·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사업내용을 소개했다. 그는 “주요 곡물 생산량의 90% 정도는 10여개 외국회사와 멕시코 재벌 계열사들이 수매하고 시아코멕스와 같은
농민조직의 수매 비중은 나머지 10%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대기업들은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수확 전에 입도선매를 해버린다. 빚에 찌든
농민들은 이들 대기업의 현금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헐값에 넘겨 버린다.”
이스마엘 조합장은 멕시코 농업의 위기를 최근 5년 사이 옥수수 농사의 수지계산으로 설명했다. “비료와 방충농약, 씨앗값 등은 두 배 이상 올라
전체적으로 옥수수 생산원가는 45%나 뛰었는데도 수매가격은 19% 증가하는 데 그쳤다. 2003년부터 미국산 옥수수가 허용된 관세할당량보다 두
배나 많게 수입되고 있기 때문에 수급균형도 완전히 무너졌다. 수확기가 되면 옥수수 재배농가에서는 비료값도 건지지 못한다고 아우성이다.”
그는 “미국 정부의 통계치로도 미국 옥수수의 멕시코 수출가격은 10% 정도의 덤핑이 있다”며 “이런 것이 어떻게 자유무역이고 공정한
시장경제냐”고 반문했다. 이스마엘 조합장은 “농민단체들은 생산자와 소비자 직거래 활성화, 유통시설 확충, 품질 개량 등으로 최대한 자구노력을
해보겠지만 근본적으로 수입농산물에 대한 규제 없이는 멕시코 농업의 미래는 암울하다”고 말했다.
<멕시코시티 / 박순빈 기자> (한겨레신문 2006-5-24)
[집중탐구한미FTA] ③ 노동의 질 나아졌나

[한-미 FTA 집중탐구: 1부-다른 나라에서 배운다] 멕시코-③ 노동의 질 나아졌나
멕시코 북부 접경도시 티후아나에 사는 엘리사 마르티네스(37)는 어엿한 외국기업의 여성 직원이다. 파나소닉, 산요 등 유수 외국기업에서
13년 동안 일해온 베테랑 기능공이다. 지금은 미국계 건자재회사에 다니며 아이 셋을 홀로 기르고 있다. 그의 집은 티후아나 남북관통 산업도로
주변에 널려 있는 무허가 판잣집 가운데 하나다. 구불구불한 비포장 비탈길을 한참 들어가 찾아간 집은 10평 남짓 돼 보였다. “시내에 있는 방
두 칸짜리 집에서 살려면 월세와 공과금으로만 월급의 절반 가까이가 나간다. 나머지 월급으로는 도저히 아이들과 함께 생활할 수 없다.” 그녀가
보여준 주급 봉투를 보니, 지급액이 ‘517페소’라고 적혀 있다. 우리돈으로 4만3천원 정도다. 한달 월급으로 계산하면 17만원을 조금 넘는다.
엘리사는 “낮에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없어 밤 10시부터 아침 7시까지 일하는 근무조에 들어가 있다”며 “그래도 낮 근무조보다 벌이가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기업천국 미국 접경지대 산업단지 ‘마킬라도라’
노동자엔 저임 굴레
엘리사가 일하는 곳을 멕시코 사람들은 ‘마킬라도라’라고 부른다. 멕시코 말로 ‘기계들이 놓인 작업장’이라는 뜻이다. 멕시코 정부는
1960년대 중반 도입한 국경지대 산업화 프로그램에 따라 여러가지 면세혜택을 주면서 수출품 가공·조립 공장들을 유치하기 시작했다. 나프타 출범
이후 수출시장이 확대되면서 마킬라도라는 멕시코 제조업의 중심이자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떠올랐다.
13년차 기능공도 생계 허덕
나프타 발효 후 7년 동안에는 비약적 성장도 했다. 94년 말 2265개이던 공장이 2000년에는 3655개로 급증했고, 고용도
64만8천명에서 129만1천명으로 갑절로 늘었다. 연간 수출은 150억달러에서 2004년 875억달러로 6배 가까이 증가해 멕시코 전체 수출에서
4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빠른 성장이 노동의 질을 끌어올리지는 못했다. 오히려 ‘질 낮고 값싼 노동력’이 마킬라도라 성장의 발판이 됐다. 나프타로
타격을 입은 농업, 내수위주 중소기업, 도시 자영업에 속한 인력들은 마킬라도라에 값싼 노동력을 풍부하게 제공하는 원천이 됐다. 티후아나 소재
노동단체인 마킬라노동자센터(CTTM)의 카르멘 발라데스는 “일자리를 찾거나 국경을 넘어가기 위해 마킬라도라로 들어오는 외부인구가 한달 평균
3만여명에 이른다”며 “마킬라도라에서 일하는 많은 노동자들의 임금이 기초생활비에도 못미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제조업 노동자들의 소득정체는 멕시코 정부의 공식 통계로도 잘 나타난다. 나프타 발효 후 지난해 말까지 멕시코 제조업의 평균 노동생산성은
68%나 증가했는데도 노동비용은 31% 감소했다. 기업의 수익은 크게 늘었지만 노동자 몫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여기에는 섬유나 신발 같은
노동집약적 산업이 쇠퇴하고, 자동차·전자부품 등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 발전한 탓도 있다. 하지만 제조업 노동자들의 평균 실질임금이 1% 증가에
그친 사실은 성장과실의 배분이 자본 쪽에 치중되었다는 방증이다.
멕시코는 마킬라도라를 통한 수출위주의 성장전략과 더불어 강력한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도 추진했다. 파견허용 대상 직종을 확대하고, 3개월
단위 기간제 고용을 허용하는 등의 조처들이 나프타 이후 등장했다. 멕시코 정부는 멕시코노동총동맹(CTM)에 독점교섭권을 주고 여러가지 물질적
지원을 제공해 노동유연화 정책들을 무리없이 추진할 수 있었다. 나프타 이후의 노사관계를 ‘연인(sweetheart)의 노사관계’라고까지
선전했다.
그러나 ‘값싸고 불안한 노동’에 의존한 수출위주의 산업정책은 2000년대 들어 중국 쇼크에 직격탄을 맞는다. 2000년 정점에 이른
마킬라도라 등록기업 수는 그 다음해부터 2004년 말까지 4년 동안 무려 844개나 감소했다. 대략 5곳 가운데 1곳이 철수한 것이다. 고용도
18만명이 줄어 마킬라도라 노동자 7명 가운데 1명꼴로 일자리를 잃었다. 멕시코 정부는 외국 자본의 철수가 잇따르자 지난해 ‘대외무역 현대화
프로그램’(MOCIE)을 마련해 마킬라도라의 부활을 시도하고 있지만 뚜렷한 반전 기미가 없다는 게 내부 평가다.
농촌 중기 자영업서 인력충원
멕시코 노동연구·교육원(CILAS)의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연구원은 “멕시코 내에 괜찮은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 시장의 구매력이
커지지 않으면 외국기업들의 철수를 막기 어렵지 않겠느냐”며 “노동자와 농민들의 소득증가가 수반되지 않은 수출위주의 성장전략이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 멕시코의 사례가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티후아나 / 박순빈 기자> 멕시코행동연대 알베르토 아로요 교수
“나프타 3국 모두 노동 하향 평준화”
“자유무역협정은 기업들에 임금이 좀더 싼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해줌으로써 협정국 전체 노동의 질을 저하시킨다. 나프타 발효 뒤
7년 동안 미국 제조업도 총노동비용이 15% 줄었고, 캐나다 역시 10.9% 감소했다.”
멕시코의 대표적인 나프타 실증연구전문가인 알베르토 아로요 교수(멕시코칼리지 경제학)는 “나프타에 따른 노동의 하향 평준화가 멕시코뿐만
아니라 미국, 캐나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며 피해계층의 공동대응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1998년 ‘자유무역에 관한
멕시코행동연대’(RMALC)라는 단체를 결성해 적극적인 대외연대 활동을 펴고 있다.
- 멕시코가 나프타에 가입한 뒤로 실업률은 많이 떨어졌다. 수출과 외국인 투자 증가로 그만큼 일자리가 많이 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 통계상의 ‘취업자’ 가운데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거나 소득이 없는 사람의 비중이 30%를 넘는다. 비공식 부문의 불완전 취업이 많다는
뜻이다. 이런 불안한 일자리를 포함해서 나프타 발효 후 7년 동안 640여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는데, 이 기간에 생산가능인구는 1천만명이
늘었다. 즉, 노동시장 신규진입자들이 많이 늘어나 물불 가리지 않고 아무 일자리나 찾은 결과 취업자 수가 늘어난 것일 뿐이다. 나프타의 고용증가
효과는 실증적으로 검증된 바 없다.
- 나프타 이후 고용의 질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 취업자 10명 가운데 6명이 사회보험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또 신규 고용자 가운데 비정규직의 비중이 나프타 전에는 50%대였다가
최근에는 70% 선에 육박하고 있다. 지난해 한 연구기관에서 제조업과 서비스업 노동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지난 12년 동안
임금이 줄었다는 응답이 전체의 45%였다.
“불안한 일자리 양산 멕시코 취업자 30% 최저임금도 못받아”
- 나프타를 고용악화의 원인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 멕시코 정부의 교육정책 등 여러 요인이 섞여 있다. 고용 없는 성장의 뿌리는 멕시코 정부가 1980년대 초반부터 추진해온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다. 나프타는 이 정책 기조를 도저히 바꿀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문제다.
- 수출 증가가 고용 개선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 수출을 주도하고 있는 마킬라도라 산업을 보면, 원자재와 부품의 멕시코 내 조달률이 3~5%에 불과하다. 나프타에 따라 국내 부품 조달
의무 등이 면제됐다. 또 수출품 가공만 하던 마킬라도라가 내수판매도 할 수 있게 됐다. 결국 멕시코 내 하청업체들이나 내수시장에 의존해온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무너져내리는 바람에 전체적으로 고용이 악화된 것이다.

- 나프타를 체결하면서 고용기준 등 노동시장의 조건을 끌어올릴 방법은 없었나?
= 미국이나 캐나다의 노동계 요구에 따라 나프타와 함께 북미노동협력협정(NAALC)을 맺었다. 노동 3권을 보장하고 고용관행에 대한 세부
개선과제들도 채택됐다. 그래서 당시 멕시코에서는 고용과 노사관계의 선진화를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협정문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어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오히려 다른 나프타 조항에 따라 사용자의 합법적인 부당노동행위가 더 늘어나고 노사간 힘의 불균형은 심화됐다. 멕시코의
이런 사정은 미국과 캐나다의 노동자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끼쳤다. 자유무역협정이 엄격하게 보호하는 대상은 기업과 자본의 이익이지 노동자의 이익이
아니다.
<멕시코시티 / 박순빈 기자> (한겨레신문 2006-5-25)
[집중탐구한미FTA] 캐나다 ① 위협받는 공공서비스
[한-미 FTA 집중탐구: 1부-다른 나라에서 배운다] 캐나다 ① 위협받는 공공서비스
미 ‘기업소송’에 캐나다 공공부문 흔들
캐나다는 해마다 유엔이 발표하는 ‘가장 살기 좋은 나라’에 빠짐없이 10위권 안에 드는 나라다. 지난해 유엔이 발표한 순위에서도 5위에
올랐다. 풍요로운 자연뿐만 아니라 탄탄한 공공서비스와 사회보장제도 덕분이다. 캐나다의 500여개 텔레비전 채널 중 90% 이상이 미국 채널이지만
캐나다 사람들이 ‘우리는 미국과 다르다’고 느끼는 데는 공공서비스와 사회복지제도에 대한 자부심이 큰 몫을 한다.
그런데 1989년 캐나다-미국 자유무역협정과 1994년 멕시코를 포함한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이 발효되면서 사정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환경보호를 위한 정부의 공공정책과 규제가 도전받고 있는 것이다. 나프타에 규정된 ‘기업-국가 소송제도’를 무기로 미국은 캐나다의 환경과
공공서비스 영역을 거칠게 흔들고 있다.
석유첨가제 금지엔 “협정위반”
#1. 지난 24일 캐나다 토론토 주택가. 캐나다의 우정사업을 담당하는 공기업인 ‘캐나다 포스트’ 소속 집배원이 가정집 잔디밭에 서 있는
우체통에 편지를 배달하고 있다. 그에게 미국의 다국적 소포배달업체인 유피에스(UPS)와 캐나다 연방정부가 캐나다 포스트를 놓고 벌이고 있는 법적
다툼에 대해 물었다. 그는 “그런 사건이 진행 중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캐나다 포스트는 아무 문제 없이 200년 동안이나 일(편지와 소포
배달)을 해왔는데 그게 유피에스의 영업이익과 무슨 상관이냐”고 의아해했다.
나프타 제11장 분쟁해결 조항에 따르면, 자유무역협정 상대국 정부의 규제나 정책이 기업의 영업활동에 방해가 되면 해당 기업은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를 비롯해 200개국에서 소포배달사업을 하는 세계 최대규모의 다국적 기업인 유피에스는 지난
2000년 이 조항에 따라 캐나다 연방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캐나다 포스트의 자회사인 소포배달업체가 이 회사의 우편제도를 이용하고
있는 게 특혜라는 주장이었다. 유피에스는 “캐나다 연방정부가 캐나다 포스트의 독점적 지위를 뒷받침하고 있어 소포배달사업에서 자유로운 경쟁이
이뤄지지 못하게 막고 있다”며 1억6천만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 사건은 현재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에 7년째
계류중이다.
#2. 1998년 7월 미국의 화학제품 기업인 에틸은 캐나다 정부를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에 제소했다. 에틸이 생산하는
석유첨가제(MMT)를 캐나다 정부가 팔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나프타의 투자자 보호 규정에 어긋난다는 게 이유였다. 에틸이 청구한 손해배상액은
무려 2억5천만달러. 문제의 석유첨가제에 포함된 성분은 1920년대부터 이미 환경과 건강에 해를 끼친다는 이유로 캐나다는 물론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도 판매가 금지된 제품이다.
나프타 중재기구는 캐나다의 환경규제 정책이 에틸에 영업손실을 끼쳤다며 캐나다 정부가 에틸에 1300만달러를 물어주라는 결정을 내렸다.
배상액은 그해 캐나다의 환경 프로그램 운영예산과 맞먹는 액수였다.
캐나다 환경법단체 켄 트레이노 연구원은 “나프타 11장이 캐나다의 환경정책을 간단하게 무력화시켰다. 캐나다 법정이었다면 적어도 기업의
이윤과 공공의 이익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재기구에서 다뤄지기 전에 이미 기업이 정부를 상대로 압력을 넣어
정책을 무력화시키거나 정부가 정책을 결정할 때 나프타에 위반되지 않는지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나프타 11장에 근거한 중재 사건은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나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에서 다뤄진다. 캐나다 역시 멕시코나 미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건수가 적지 않다. 멕시코에서 도박장을 운영하려 했던 캐나다의 선더버드사는 멕시코 정부의 도박장 폐쇄 조처에 항의해
2002년 8월 1억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현재 소송이 진행중에 있다. 멕시코에서는 대부분의 도박장이 불법이다.
중재 과정서 미국 ‘무패행진’
미국의 시민단체 퍼블릭시티즌이 2005년 2월 집계한 자료를 보면, 나프타 11장에 근거해 미국, 캐나다, 멕시코 기업이 상대국 정부를
상대로 중재를 요구해 진행중이거나 이미 마무리된 사건은 모두 42건이다. 미국은 15건, 캐나다는 9건, 멕시코가 18건 제소를 당했다. 이
가운데 미국 정부가 패소한 사건은 아직 한 건도 없다. 캐나다 노동조합연맹 국제담당 실라 켄츠는 “나프타 11장은 민간기업이 정부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해 투자보호라는 잣대로 공공성까지 위협하도록 보장해주고 있다”며 “나프타에도 환경과 노동에 관한 조항이 있지만 투자자의 이익과 대립될
때는 ‘이빨이 없는 무력한 조항들’”이라고 꼬집었다.

[인터뷰] 캐나다 포스트 사건 맡은 슈리브먼 변화사
WTO체제 있는데 FTA 왜 하나
‘캐나다 포스트 사건’에서 캐나다 연방정부를 대리하고 있는 스티븐 슈리브먼 변호사는 “유피에스가 캐나다 정부로부터 배상금을 받아낸다면 다른
공공서비스도 기업 이윤에 반한다는 이유로 공공성을 지켜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나프타 11장에 보장된 기업-국가 소송제도 도입을 왜 반대하지 않았나?
= 캐나다 국민들은 1988년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될 때까지만 해도 민간기업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나프타에 이런 위력을 가진 제도가 숨어 있는 줄 예상하지 못했다.
- 캐나다 포스트의 소포배달 자회사가 캐나다 포스트의 우편제도를 이용하는 게 특혜라는 유피에스의 주장에 어떻게 반박하나?
= 캐나다 포스트는 유피에스와 경쟁하지 않는다. 공공서비스는 사적 영역과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유피에스와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이유가 없다.
- 이번 사건의 결론을 어떻게 예측하고 있나?
= 유피에스가 이길 가능성이 더 높다. 나프타 체결 당시에 미국 쪽 협상단에 참여했던 변호사가 거액을 받고 유피에스 쪽을 대리하고 있다.
- 나프타의 분쟁해결에 관한 규정은 캐나다 기업도 미국이나 멕시코 정부를 상대로 똑같이 활용하고 있지 않은가?
= 분쟁해결은 모든 협정에 있지만 하나같이 미국에 유리한 방식이다. 미국은 나프타를 통해 원칙을 정하고 이를 어기면 벌을 주지만, 캐나다는
거기에 불만만 제기하고 있다.
- 한국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고 있는데?
=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얻을 게 뭐가 있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끄는 협상이 될 것이다. 세계무역기구 체제에서도 미국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데 굳이 자유무역협정을 맺을 필요가 없다고 본다.

‘자유무역’ 미국 제논 물대기 유리할땐 소송 걸고 불리할땐 중재판정도 ‘모르쇠’
캐나다 목재 생산자들은 국유지나 공유지에서, 미국 생산자들은 사유지에서 나무를 베어 판다. 국·공유지에서는 벌목 부담금이 싸기 때문에
사유지에서 나온 목재보다 값이 쌀 수밖에 없다. 1982년 미국 목재 생산자들이 이를 문제삼아 캐나다산 목재에 대해 상계관세를 요구하고 나섰다.
캐나다의 국·공유지에서 부과하는 벌목 부담금이 시장 가격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캐나다 정부가 생산자들에게 불공정 보조금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게 이유였다. 캐나다 정부는 86년 미국에 수출하는 목재에 수출세 15%를 매겼고, 분쟁은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91년 캐나다
목재 생산자들의 반대로 합의가 철회됐다. 이에 미국은 불공정 보조금 조사를 벌여 캐나다산 목재에 11.54%의 상계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캐나다 정부는 자유무역협정 분쟁처리기구에 사건을 제소했다. 분쟁처리기구는 항소심까지 거쳐 미국의 상계관세 부과가 자유무역협정 위반임을
거듭 확인했다. 하지만 미국 의회는 자유무역협정 분쟁처리기구의 판결이 잘못됐다며 여기에 구속될 필요가 없다는 입법을 하고, 상무부는 관세 부과는
철회하면서도 그동안 불법 징수한 관세는 되돌려주지 않고 버텼다.
나프타 체결 뒤 2002년에도 미국이 다시 캐나다산 목재에 반덤핑 관세와 상계관세를 부과했다. 나프타 분쟁처리기구와 세계무역기구 역시
미국의 조처가 자유무역협정과 세계무역기구법 위반이라고 판정했다. 그러나 미국은 아직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이 분쟁은 미국이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지켜내려고 자유무역협정 분쟁절차에 따른 판결도 무시한 채 ‘보호무역’으로 버티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토론토 / 박주희 기자>
(한겨레신문 2006-5-30)
[집중탐구한미FTA] 캐나다 ② 흔들리는 복지국가

[한-미 FTA 집중탐구: 1부-다른 나라에서 배운다]
캐나다-② 흔들리는 복지국가
캐나다 토론토에 사는 브루노 실라노(40) 부부는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과 돌이 갓 지난 딸을 키우고 있다. 지난 24일 저녁
식탁에 마주앉은 부부는 “아침마다 세 아이를 씻기고 밥을 먹여서 제시간에 초등학교와 유치원, 보육시설에 데려다 주려면 한바탕 소동을 치르게
된다”며 웃었다. 실라노 부인은 막내를 출산한 뒤 52주 동안의 휴가를 쓴 뒤 최근 공립 보육시설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딸아이는 무상으로
운영되는 또다른 공립 보육시설에서 낮시간을 보낸다. “출산휴가 52주에다 무상으로 아이를 키워주는 좋은 나라”라며 부러워하자, 부부는 뜻밖에도
“앞으로는 그럴 것 같지 않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새 보육제도에 불만을 털어놨다.
경쟁·효율에 내몰려 복지 ‘하향평준화’
캐나다 정부는 그동안 6살 미만 어린이를 공립 보육시설에서 무상으로 맡아주는 보육제도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올 7월부터는 부모가 자녀를
보육시설에 보내든지, 정부의 지원금을 받든지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꿨다. 정부 지원금은 어린이 한 명에 해마다 1200달러(우리돈
100만원 정도) 정도다. 실라노 부부는 이 제도를 놓고 여러차례 의논한 끝에 딸을 공립시설에 계속 보내기로 했다. 한 달에 100달러 정도의
지원금으로는 아이를 제대로 된 사설 보육시설에 맡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보육시설이냐 지원금이냐를 놓고 고민하는 게 우리 처지에서 보면 무척 ‘행복한 고민’으로 보인다. 하지만 캐나다 부모들은 보육제도의 변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실라노 부인은 “지금까지는 국가가 책임지고 아이를 키웠지만 이제는 보육을 개인의 일로 넘겨버리고 있다. 공립 시설에
대한 지원은 줄어들 것이고 ‘보육 시장’에 뛰어드는 사립시설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걱정했다. 공립 보육시설의 수준이 예전보다 훨씬
떨어지면서 어린이 보육이 점차 사립시설들의 몫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우려다. 그는 또 “형편이 어려운 부모들이 정부 지원금을 생활비로 쓰거나
심지어 술·담배를 사는 데 써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가정에서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어날 것이 뻔한데도 정부가 새 제도를
추진했다”고 비판했다.
실라노 부부는 보육뿐만 아니라 의료 서비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무상의료를 원칙으로 하는 캐나다의 의료보험 제도에 하나씩 예외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요즘은 자기 돈을 내면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원하는 치료를 해주는 병원이 생겼다. 건강에 반드시 필요한 진료보다는
성형수술이나 값비싼 검사만 주로 하는 의원들이다. 공공의료 체계에 문제점이 드러나자 개혁을 하는 대신 영리법인에 맡기는 방법으로 의료서비스의
공백을 해결하려고 한다.”
실라노 부부의 걱정 섞인 비판처럼 그동안 캐나다가 자랑해 오던 탄탄한 복지국가의 모습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뒤 사적
영역에 의존하는 미국식 복지모델을 따라가고 있는 탓이다. 캐나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캐나다의 복지가 미국 수준으로 하향 평준화됐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복지의 후퇴는 캐나다의 각종 사회통계를 보아도 잘 나타난다. 국내총생산에서 사회복지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1993년에는 21.6%였다가
2001년에는 17.8%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치가 21.8%에서 20.8%로 줄어든 것과 견주면 캐나다의 감소폭이
네 배 가까이 더 크다. ‘캐나다 정책대안센터’의 분석을 보면, 전체 실업자 가운데 실업급여 혜택을 받는 비율도 89년 75%에서 2002년에는
38%로 뚝 떨어졌다. 보건의료예산 등 각종 공공서비스 지출에서 미국과의 격차도 계속 좁혀지고 있다.
새로 도입하려는 사회보장 정책이 자유무역협정의 자유로운 시장접근과 경쟁 논리에 밀려나는 경우도 많다. 93년 온타리오주가 공공 자동차보험을
도입하려다가 미국 보험회사들의 문제제기로 포기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캐나다 공공노조 셀리 고든 연구원은 “공공성을 바탕으로 운영되던 제도나 기관들이 이제는 시장논리에 물들어 효율성만 찾고 있다. 공공기관
종사자들이 대거 민간 용역업체로 옮겨갔다. 성장은 둔화하고 정부의 사회복지 지출마저 줄어들면서 소득이 낮은 사람들은 예전 같은 삶의 질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하위 10% 소득 31% ↓…성장률도 추락

1989년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된 이후 각종 경제통계를 살펴보면, 자유무역협정이 캐나다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짐작할 수 있다.
캐나다의 1인당 국민소득은 85년 미국의 77% 수준이던 것이 10년 만에 68% 수준까지 떨어졌다. 시간당 8.8달러 이하를 버는 성인
남성의 비율은 89년 7.9%에서 93년에는 8.9%로 늘었고, 같은 기간 시간당 27.6달러를 버는 비율은 9.3%에서 11.6%로 늘어나
소득 불평등이 심화됐다. 자유무역협정 발효 직후부터 93년 사이 하위 10%에 속하는 남성 노동자의 연간 실질소득은 무려 31.2%, 하위
20%는 20.2% 줄었다. 상위 20%는 연간 실질소득이 2%만 떨어졌다.
분배의 악화는 성장에도 나쁜 영향을 끼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가 집계한 회원국별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감 추이를 보면, 캐나다의 경우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된 89년부터 10년 동안 연평균 2.1% 증가에 그쳐, 이전 10년 동안(1979~1988년)의 연평균 증가율
3.1%보다 1%포인트 주저앉았다. 같은 기간 회원국 평균치(2.6%)에도 못미치는 수준이어서 성장둔화의 요인을 일시적 세계경기 침체 등 다른
외부환경 탓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발효 전 10년 동안에는 캐나다의 증가율이 회원국 전체 평균치(2.9%)를 웃돌았다.
캐나다의 경제성장이 다른 회원국들에 뒤지는 양상은 94년 나프타 발효 뒤 10년 동안에도 이어졌다.
“교육마저 미기업 손에 넘어갈까 우려”
비시주 교사연맹 래리 퀸
“교사평가 미국회사가 맡아 교육내용 좌지우지할 것”
지난 5월 둘쨋주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비시주)에서는 캐나다 교육부가 주관하는 시험을 교사노조가 거부하는 일이 벌어졌다. 교육부가
2000년부터 4~7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치르는 기초학력 평가시험을 비시주 교사연맹이 학부모들을 설득해 반대 캠페인을 벌인 것이다.
래리 퀸 비시주 교사연맹(BCTF) 연구 책임자는 “획일적인 평가 시험이 교실 안의 학습 내용까지 바꿔놓고 있다. 지금 정부가 쥐고 있는
평가권이 세계화, 특히 나프타 서비스 규정에 따라 미국 기업의 영업활동으로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고 반대 이유를 밝혔다.
퀸은 교육 평가권이 상업화된 온타리오주의 사례를 들었다. 온타리오주 교육부는 2001년 교사 자격증이 있는 교사들을 대상으로 5년 주기로
7개 분야에서 ‘교사 자질 평가제’를 시작했다. 주 교육부는 미국 뉴저지에 있는 교육테스트 서비스 회사와 2년 동안 260만달러에 계약을 맺어
시험 출제와 평가를 맡겼다. 주 정부가 바뀌면서 결과는 폐기됐지만 나프타의 서비스 규정에 따라 공립 교사에 대한 평가권이 미국의 사기업에 맡겨진
사례로 남았다.
“비시주에서도 새로 뽑힌 교사들에 대한 심리테스트를 미국 회사가 맡고 있다. 평가를 사설 회사에 맡기는 것은 단순히 교육 상업화 문제가
아니다. 평가권을 이용해 정보를 축적한 교육기업이 캐나다 교육에 영향을 주게 된다는 점이다. 교육내용은 평가방식에 따라 좌지우지 될 수밖에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에서도 미국은 평가권에 해당하는 ‘테스팅 서비스’의 개방을 한국 쪽에 요구하고 있다. <토론토
/ 박주희 기자> (한겨레신문 2006-5-31)
[집중탐구한미FTA] 스위스 협정추진을 보류하다

[한-미 FTA 집중탐구: 1부-다른 나라에서 배운다] 스위스 협정추진을 보류하다
‘협정 보류’ 배경엔 ‘국민투표제’ 있었다
한국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을 공식 표명한 지난 2월 초, 스위스는 미국과의 협정 추진을 보류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사안을 두고 서로 다른 길을 간 셈이다.
스위스의 경제 중심 도시 취리히의 ‘파라데 플라츠’ 광장. 여러 노선의 트램(경전철)을 타고 내리는 시민들 뒤로 스위스 1, 2위 은행인
스위스연방은행(UBS)과 크레디트스위스의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파라데 플라츠는 금융강국 스위스와 개방경제 스위스의 상징이다. 스위스연방은행은
자산규모로 보면 2004년 기준 1조5330억달러로 세계 1위다.
스위스와 한국은 닮은 점이 적지 않다. 스위스는 한국처럼 무역의존도가 높다. 한국이 70%인데 스위스는 77%다. 대미 의존도도 비슷하다.
한국의 수출 대상 1위는 중국이고 다음이 미국이다. 스위스 또한 독일에 이어 미국이 2위다. 농업이 취약하다는 공통점도 있다. 한국과 스위스
둘다 이른바 G10(농업협상 때 같은 목소리를 내는 농산물 주요 수입국 10개 나라) 그룹의 회원이다.
스위스로 취재를 떠나기 전 한국의 정부 관계자들은 “한국과 스위스는 인구나 경제규모, 교역구조가 달라 비교할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위스의 사정을 들여다보니 정부 관계자들의 이런 설명은 동의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멕시코 캐나다 칠레 싱가포르 오스트레일리아
등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나라들과 우리를 비교할까. 이들 나라 대부분은 교역구조상 농업 강국이다. 인구나 경제규모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칠레나 싱가포르를 우리와 비교하는 것도 어색하다.
스위스도 한국처럼 기업인들과 정부가 협정 추진에 적극적이었다. 스위스의 상공인단체 ‘이코노미스위스’는 “미국이 유럽지역과는 협정이 없어
유럽에 교두보를 필요로 한다”며 “다른 나라보다 먼저 미국과 협정을 맺을수록 얻는 게 많다”고 주장했다. “2007년 7월이면 미 행정부가
의회로부터 위임받은 신속협상권(TPA)이 소멸되므로 서둘러야 한다”라는 주장도 했다.
스위스 행정수도 베른에서 만난 크리스티안 에터 경제부 양자통상국장은 “2004년 11월 게르버 경제부 통상담당 차관이 워싱턴에 가서 협정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을 들으면서 양국 간 논의가 본격화됐다”고 말했다. 스위스 정부가 미국에 있는 국제경제연구소(IIE)에 용역을 맡겨 2005년
9월에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스위스는 미국과의 협정으로 대미수출이 40% 늘면서 국내총생산이 0.5% 증가하는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스위스는 미국과의 견해 차를 좁히지 못했다. 에터 국장은 “2005년 9월부터 2006년 1월까지
화상회의를 포함해 10여 차례 만났지만 결국 농업에서의 이견을 좁히기 어렵다고 보고 협정 추진을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크게 15가지
이슈 중 나머지는 합의점이 보였는데 농업의 개방방식과 유전자조작식품(GMO)의 표시 등 두 가지를 놓고는 평행선을 달렸다”고 덧붙였다.
농산물 문제에서 스위스는 협정에서 언급한 것만 개방하려 했지만, 미국은 모두 개방하고 일부만 예외로 하자고 맞섰다. 유전자조작식품의 경우
스위스는 식별이 가능하도록 포장지 등에 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미국은 반대했다.
유전자조작식품 표시 문제로 양국이 줄다리기를 하던 지난해 11월 스위스에서는 마침 유전자조작 동·식물의 국내 사육·재배를 허용하느냐를 놓고
국민투표가 치러졌다. 스위스 농민·환경단체가 국민발의 절차를 이용해 ‘추가로 5년간 허용 유예’를 국민투표에 부친 것이다. 결과는 행정부와
의회의 바람과 달리 투표자의 56%가 추가 유예에 찬성했다.
하이디 브라보 스위스농민연맹 홍보국장은 “국민의 20%만 당장 도입을 원했다”며 “미국이 주도하는 유전자조작식품의 확산을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정부가 확실히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이 해당 조항을 절대 양보하려 하지 않았고 스위스가 양보하려 해도 국민투표가
버티고 있었다”며 “정부가 협상 결렬을 선택하는 데 큰 구실을 했다”고 덧붙였다.
스위스와 한국이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국민발의제였다. 한국도 국민투표제가 있다. 하지만 국회가 의결한 헌법개정안이나 대통령이 국민투표에
부친 안건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스위스는 일반시민도 국정 현안을 국민투표에 회부할 수 있다.
스위스는 미국과 협정을 타진하거나 체결한 어느 나라 못지 않게 한국과 교역구조가 유사했다. 그리고 한국과 비슷하게 시한에 쫓기며 협상했다.
하지만 시민들이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방식과 기회의 폭이 달랐다.

5만명 서명 받으면 누구나 국민투표 발의
브레이크. 스위스에서는 국민투표를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의회나 행정부가 채택한 법안을 시민들이 차단하거나 지연시키는 제동장치의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스위스는 국민발의제가 있어 시민이 원한다면 국민투표를 할 수 있다. 법령이 공포된 지 100일 이내에 5만명 이상의 서명을 받으면 된다.
스위스연방 차원만이 아니다. 스위스는 26개 주가 있는데 대부분의 주에서도 주 차원에서 주민발의제와 주민투표제가 있다. 글라루스주와
아펜첼주는 인구가 적어 주민들이 다 모여 거수로 투표하기도 한다.
스위스는 연방의회에서 4년 임기로 뽑힌 7명의 각료가 연방각의를 구성한다. 연방각의 각료들이 해마다 1명씩 돌아가며 대통령이 돼 연방각의를
주재하고 대외적으로 나라를 대표한다. 연방각의가 중요정책을 입안하면 의회에 안건이 제출되는데 상원과 하원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스위스는 중요
현안의 경우 또다시 국민투표가 버티고 있다. 스위스 경제부 양자통상국의 아시아 담당자 파트리크 질테너는 “모든 절차를 통과하려면 일러야 2년이
걸린다”며 “미국과의 협정을 보류한 이유로 미국의 신속협상권 시한에 맞추기에는 이견이 컸다고 말한 것도 그런 뜻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 토마스 플레처 스위스 상공인단체 홍보이사
“경제 성장해도 농업타격 심각…양보다 질 선택”
이코노미스위스의 토마스 플레처 홍보이사는 스위스 정부의 미국과의 협정 보류 결정에 대해 “양보다는 질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코노미스위스는 농업을 제외하고 제조업은 물론 은행·보험 등 서비스업까지 아우른 3만개 기업을 회원사로 둔 스위스 최대 상공인단체다.
-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찬성한 이유는?
= 스위스는 수출에 중점을 둔다. 미국은 유럽연합 다음으로 큰 경제 파트너다. 미국과의 협정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했다. 또 언젠가는
유럽연합과 미국이 협정을 맺을텐데 스위스가 그 뒤에 하면 이니셔티브가 없다. 먼저 해야 이익을 더 챙길 수 있다.
- 협상이 결렬된 이유는 농업 때문인가?
= 우선 농업이 죽는다는 우려가 있었다. 둘째 미국에서 데드라인을 설정했다. 스위스 시스템은 그 시한에 맞출 수 없다. 세번째는 스위스
안에서도 미국과의 협정보다 유럽연합에 먼저 가입하자는 분위기 있었다. 연방의회의 4분의 1정도가 그랬다.
- 농업이 희생된다고 해도 비중은 아주 작지 않은가.
= 경제 전체로는 미국과 협정을 맺으면 몇 퍼센트 성장하겠지만 농업에서 몇십 퍼센트 큰 타격이 올 수 있다. 그게 문제였다. 양과 질의 차이다.
스위스 정부는 숫자보다 전체적인 질을 택했다. 특히 농업은 먹거리 생산에 그치지 않는다. 환경과 자연경관 등 나라의 이미지를 가꾸고 있다.
- 정부의 결정을 납득하기 어려웠을텐데.
= 어느 때보다 미국과 협정을 맺기 좋은 기회였다. 결렬되자 이에 반발하는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라에서 결정한 만큼 당분간
문제삼지 않기로 했다. 농업도 조금씩 문을 열고 있다.
<취리히 / 송창석 기자> (한겨레신문 200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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