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객 검거하다 다쳐 2년째 식물인간…그리고 면직 장용석 경장의 사연

“면직이란 말을 듣는 순간 식물인간인 남편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습니다”

2004년 6월 폭력사건을 수습하다 취객의 갑작스런 일격에 뇌진탕으로 식물인간이 된 장용석 경장(36). 2년이 흐른 지금, 그는 여전히 병상에 누워 있으며 곧 면직 처리가 된다. 면직은 정해진 규정상 불가피한 일이란다. 그간 식물인간이 된 선례는 드물다는 이유로 그에 대한 선처는 더욱 미흡하기만 하다. 그간 누구보다 힘들었을 가족들은 어디에 억울함을 호소해야 할까? 2년째 묵묵히 그를 간병하고 있는 아내, 황춘금씨(32)의 말을 그대로 옮겨보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

현재 남편의 상태는 눈만 뜨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고개와 눈동자를 조금씩 움직이고 감정 표현은 미소 짓는 정도로 저한테만 합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일부러 오버해서 크게 행동하면 웃곤 하지요. 그런 걸 보면 절 알아보는 것 같아요. 깨어나더라도 뇌가 이미 손상되어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한번은 방송국에서 갑작스럽게 취재를 온 적이 있어요. PD와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면직’이라는 단어가 나왔어요. 그러자 이 사람이 한숨을 푹 쉬더라구요. 자신도 뭔가 느낀 건지…. 저는 그때 가슴이 내려앉는 줄 알았습니다. 그날 저녁, 마음이 너무 안 좋았습니다. 제가 힘이 없어 남편을 위해 해줄 게 없다는 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오기로라도 이 사람은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많이 슬퍼하면 자극이 되어 일어나지 않을까?’ 남편 옆에서 밤새 엉엉 울어도 봤습니다. 근데 안 되더라구요.

남편이 다친 사실 이외에도 우리 가족이 상처받는 일은 다반사입니다. TV에서 남편에 대한 사건을 다루며 재연을 한 적이 있어요. 서로 몸싸움하다 다친 걸로 나오더군요. 그 후 인터넷에는 ‘경찰이 범인한테 맞고 다니느냐’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치고 받고 싸우다가 다쳤다면 이런 상태는 되지 않았겠죠. 변호사 선임권 등 인계 통지를 하던 중 급작스런 일격을 받고 넘어져 머리를 다친 겁니다. 그 취객, 알고 보니 전과 13범의 폭력배더군요. 한번 합의를 하러 온 것 같은데 그들과 얘기하다 보면 정신을 잃을 것 같아 만나지도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근근히 살다 보니 2년이 흘렀습니다. 제가 회사 일이 끝나면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와 병원에 그냥 둬요. 애들은 여기를 놀이터 삼아 놀아요. 밤 9~10시가 되면 그제야 집에 가서 밥을 먹습니다. 그 시간에 다른 아이들은 잔다던데…. 동화책 한 권 읽어줄 새가 없습니다. 남편에게 오는 걸 일주일에 세 번 정도로 줄여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마음이 편칠 않더군요. 제가 오지 않은 날은 남편도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고 해서요.

현재 가장 걱정되는 것은 아이들 교육입니다. 이제 정말 냉정하게 마음을 먹어야 할 것 같아요. 아이들이 아버지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걸 가장 중점을 둬서 가르칠 거예요. 누워만 있는 온전치 못한 아빠지만 절대 부끄러운 사람이 아니란 걸 인식시켜줄 거예요. 그래도 아이들이 착해 다행입니다. 큰아이 생일날 어린이집에서 생일잔치를 해주었더군요. 가지 못하고 사진만 봤어요. 촛불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여서 무슨 소원을 빌었냐고 물었습니다. ‘응, 아빠, 엄마 힘내라고 기도했어. 그리고 엄마 마음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그랬어’ 하더군요. 아이가 밝게 뛰어놀아야 할 나이에 너무 일찍 철이 드는 게 제겐 너무나 안쓰러운 일입니다.

“면직 처분은 마지막 남은 희망을 빼앗는 일입니다”

어느 날 두 아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딸아이가 자기 오빠에게 ‘오빠, 아빠 죽은 거지?’라고 묻더군요. 하루하루 질문하는 수위가 달라져요. 저로선 점점 감당하기가 힘이 듭니다. 아이들이 자라면 아빠에 대한 얘기를 어떻게 해줘야 할까요? ‘아빠는 범인을 잡다가 다쳐 결국 면직되었다’고는 죽어도 말 못합니다. 남편이 그렇게 사명감을 갖고 일했는데 면직이라니 말이나 됩니까. 경찰이란 직업은 사명감이 없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나라를 위해 일을 하다 다친 사람 앞에 남는 것이 겨우 이런 처우라니요. 고위간부에게만 명예가 있는 게 아닙니다. 말단 경찰이라 해도 충분히 명예로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3월 24일부터 한 달 유해기간을 둔 뒤 4월 24일자로 정식 면직 처리가 된답니다. 애들 아빠는 이로써 또 한 번 죽어갑니다.

TV를 통해 대통령께서 보상문제를 검토하라고 국가보훈처에 지시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주변 분들은 정말 잘됐다며 이젠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당사자인 저는 이와 관련된 연락을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실질적인 내용은 하나도 없더군요. 그것이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경찰청에서 찾아와 원하는 게 뭐냐고 묻더군요. 진짜 도움을 주고 싶으시다면 하루만 제 마음에 들어와서 생각해보시면 알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요구하기 전에 먼저 알아주시길 바랐습니다. 남편이 순직한 뒤 그 부인이 특채로 경찰이 된 선례가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 남편은 순직이 아니라 1급 장애이기 때문에 특채는 고사하고 면직입니다. 1급 장애와 순직의 차이가 ‘특채’와 ‘면직’의 갈림길이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죠. 돌아가신 분들께 예의가 아니지만 순직과는 또 다르게 긴 세월 동안 저희가 겪어야 할 고통 역시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관계자께서도 순직은 많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명확한 규정이 없다고만 말씀하십니다. 처음이면 처음에 맞게 신경을 써줘야 되지 않을까요?

저희 가족들에겐 남편이 경찰 동료들에게 점점 잊혀진다는 것이 가장 큰 슬픔입니다. 이것은 저희에게 정말 큰 의미예요. 이번 일로 법을 바꿀 계기만이라도 생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 다시 이런 일을 당하는 사람이 없으라는 보장이 없잖아요.

가족들이 함께 공원을 산책하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이제 알았습니다. 큰아이 연호(6)에게 아빠가 일어나면 제일 먼저 뭘 하고 싶은지 물었어요. ‘아빠가 일어나면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하고 바닷가 가서 공놀이도 하고 목마도 타고 재밌는 거 다~ 할 거야!’ 하고 대답하더군요. 그가 일어나면 복직할 수 있다는 것만이 우리 가족의 희망입니다. 실현되기 어려울지라도 그 희망만은 남편에게 주고 싶습니다.

● 장경장을 위한 만 명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법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 주소로 들어가 오른쪽 하단 ‘청원검색’에 ‘장용석’ 경장의 이름으로 검색하면 서명란이 나온다.

(경향신문 / 이유진, 박형주 기자 2006-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