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산가격 거품… 언제든 꺼질수도”

국내외 ‘버블 붕괴’ 경고 잇따라
강남 아파트값, 이미 뉴욕·도쿄수준 넘어서
“개인자산 80%가 부동산… 거품 대비해야”

아파트값을 비롯한 자산(資産) 가격에 대한 ‘버블(bubble·거품)’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버블이란 부동산 등의 자산가격이 수요·공급 원리에 따른 적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 언제든지 꺼질 수 있는 비정상적 상태를 지칭한다. 1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유엔 아·태경제사회이사회(ESCAP)는 ‘아·태지역 자산 거품이 있는가’라는 보고서에서 ‘서울·홍콩 등 부동산 투기현상이 있는 지역에서 자산 거품이 붕괴하면 주식시장 붕괴보다 훨씬 충격이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계 투자 은행인 모건스탠리도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은 버블(붕괴)에 대응하기 위한 추가적인 통화 긴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또 한국은행은 지난주 보고서에서 ‘가구 소득과 비교한 주택가격 수준이 1990년대 초 주택가격 급락 직전 수준에 이미 근접해 있다’고 밝혀 거품 붕괴 가능성을 지적했다.

◆ 부풀어 가는 거품

서울 강남지역 주요 아파트 가격은 소득 수준과 비교해 이미 일본 도쿄나 미국 뉴욕 수준을 넘어섰다.

강남의 대표적 고가(高價) 아파트인 삼성동 아이파크 73평형(시가 40억원)의 경우 평당 가격이 5500만원에 달한다. 이 돈을 은행에 넣고 연 5% 이자를 받는다고 가정하면 이 아파트 소유자는 매일 55만원의 숙박료를 치르며 살고 있는 셈이다. 거실과 욕실 2개가 딸린 롯데호텔 딜럭스 스위트룸 숙박료(26평·장기 투숙객 할인 요금 적용)와 비슷한 금액이다.

평당 6000만원대에 진입한 강남 주요 아파트 가격은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의 2.5배인 일본 도쿄의 가든힐스(평당 5860만원)와 맞먹는다.

서울 강남지역은 1998년 11월 이후 7년5개월 동안 주민 소득은 40.6% 증가했으나 아파트값은 117%나 올랐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김정호 교수는 “평당 6000만원대 아파트 가격이란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버블 수준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에도 부동산시장으로 계속 돈이 몰려 거품이 더욱 부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 4월 중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3조여원 늘었다. 작년 8·31 부동산대책 이전인 2005년 1~8월 중 월평균 증가액(1조7000억원)의 2배 수준이다.

버블 현상은 골프회원권·그림 등 다른 실물자산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경기도 남부CC의 골프회원권(개인용) 가격은 14억7500만원으로 1년 새 60% 뛰었다. 시중 부동(浮動)자금이 500조원으로 불어난 가운데 보유세 부담이 없는 골프회원권 시장으로 돈이 몰렸기 때문이다. 동아회원권거래소 강윤철 부장은 “최근 들어 가격 상승세가 한풀 꺾였지만 여전히 투자 성격의 자금이 골프회원권 시장을 기웃거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림시장도 비슷한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2002년 경매에서 8200만원이었던 김환기 화백의 작품 ‘산월(山月)’의 가격은 올해 2월 경매에서 3억8000만원까지 급등했다. 그림 투자에 대한 열기가 고조되면서 서울옥션의 미술품 경매 낙찰률도 1999년 18% 수준에서 작년엔 63% 수준까지 올랐다.

◆ 거품 붕괴 임박했나

재경부 김용민 세제실장은 12일 라디오 방송에서 “주택가격, 특히 서울 강남의 가격은 꼭짓점에 와 있다는 분석이 많다”며 “국민들이 이를 인식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행도 강남지역 아파트값이 이자율·임대소득·세금 등을 감안해 산출한 적정가격보다 13.7% 정도 거품이 끼어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반면 부동산 컨설팅업체 RE멤버스의 고종완 대표는 “아직 강남 아파트에 대한 수요층이 두터워 가격 강세 기조가 10년 정도 지속될 것”이라며 “시장 상황에 따라 가격이 출렁일 수 있지만 거품 붕괴 단계로 보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개인 자산의 80% 가량이 부동산에 몰려있어 부동산 거품이 급격히 꺼질 경우 일본(부동산 자산 비중 60%)보다 훨씬 충격이 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부동산 거품이 꺼질 경우 대개 고가(高價) 주택뿐 아니라 전체 주택 가격이 함께 폭락하기 때문에 주택담보대출 등 부채가 많은 서민층이 더 큰 체감(體感) 타격을 입게 된다.

한성대 임병준 교수(부동산학)는 “고유가와 원화 강세로 경제 체력이 저하되고 있는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할 경우 개인은 물론 부동산 담보대출 연체로 금융시스템이 흔들리며 경제 전체에 충격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 김홍수, 이진석 기자 2006-5-13)

“한국 이미 일본형 버블경제 초기단계 진입”

모건스탠리 수석 이코노미스트 앤디 시에 인터뷰

“급증하는 ‘자산 거품’이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기 요인입니다.”

미국계 투자 은행 ‘모건스탠리’ 아시아·태평양 본부의 앤디 시에(謝國忠·45)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12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의 거품현상이 위험 수위로 치닫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가격 상승이 일본형 버블 경제의 초기 단계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앤디 시에는 “현재 서울 중심부의 1㎡당 부동산 땅값은 6000~6500달러, 같은 크기의 도쿄 부동산가격은 1만달러, 뉴욕 맨해튼은 1만1000달러 정도”라면서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의 3배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서울의 부동산가격이 오히려 더 비싸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80·90년대 초)일본이 고성장에서 저성장으로 경제 틀이 바뀌고, 저금리가 진전되는 과정에서 부동산·증권 등 자산 투기를 방관했다가 거품 붕괴의 대참변을 초래했다”면서 “한국이 일본의 실패를 밟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부동산가격 거품이 (급격하게) 빠질 경우 은행 대출로 비싼 집을 구입한 시민들이 파산해 한국 경제 전체의 대후퇴가 우려된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을 막기 위해선 중앙은행이 현재 4%인 금리를 조속히 5%선으로 인상하고, 금융 당국이 부동산 및 주택 관련 대출을 엄격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중국 상하이(上海) 출신인 앤디 시에는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으며 한국 경제에 관한 예리한 분석과 처방을 제시하는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다.

(조선일보 / 송의달 특파원 2006-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