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금 중국어와 ‘열애’

미국에 요즘 때 아닌 중국어 열풍이 불고 있다. 실례로 일선 초·중·고교에서 중국어 학습 열기가 대단하다. 시카고에서는 이미 20개 공립학교가 정식 교과목으로 중국어를 채택해 3천여 명이 중국어 학습에 열중하고 있다. 이런 추세는 휴스턴·뉴욕·로스앤젤레스, 시애틀 등 다른 대도시의 공립 학교로 급속히 번지고 있다. 또 미국 대학교육위원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무려 2천4백개 고교에서 중국어 강좌를 개설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사실 2억9천만 미국인 가운데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고작 2백20만명으로 추산된다. 그나마 절대 다수가 중국계 교포들이다. 그만큼 중국어를 구사하는 미국인이 극히 적다는 뜻이다. 왜 그럴까. 중국어가 다른 외국어에 비해 익히기가 어려운 탓도 있지만, 최근까지는 미국 내 각급 학교에서 중국어 학습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것이 큰 이유로 꼽힌다. 실제로 미국 내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외국어의 98%가 프랑스어나 독일어·스페인어 같은 서유럽 언어다.

하지만 사정은 달라지고 있다. 세계 최대의 인구에 최대의 소비 시장을 자랑하는 중국이 향후 20~30년 내 미국 다음의 ‘슈퍼 파워’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되면서, 미국인들이 뒤늦게나마 중국어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미국과 아시아 간의 유대 증진을 위해 설립된 유서 깊은 비영리 기관인 아시아협회가 지난해 6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는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중국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중국어를 배우려는 미국 학생들은 2002년 말 현재 약 2만4천명인데, 10년 전에 비해 네 배나 많아졌다. 반면 중국 본토에서 영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은 무려 2억명이 넘는다. 이런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해 아시아협회는 오는 2015년까지 미국 전체 고등학생들의 5%에 해당하는 75만명에게 중국어를 배우게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한국이 미래를 위해 중국 전문가를 양성한다고 하지만, 실제 불이 붙은 쪽은 미국인 것이다.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는 자격 있는 중국어 교사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 국방부 산하 언어교육원에서 15년째 중국어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스콧 맥기니스 씨는 “중국어 자료를 구하거나 중국어 개설 학교를 지원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핵심은 중국어 교사를 확보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내 중국어 강사는 5천여 명에 불과하다. 이 정도로는 현재 미국 내 초·중·고교는 물론이고 대학에서 중국어 학습을 위해 등록한 20여만 명을 가르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중국어 학습에 5년간 1조2천억원 투입

미국인의 중국어 교육은 지난 4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미국 방문 때에도 ‘현안’이 되었다. 중국은 후 국가주석의 방문에 때맞추어 대미 중국어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우선 미국 내 고등학교에 1백50명 이상의 중국인 교사를 파견하는 한편, 중국어 공인 자격증을 따려는 미국인 교사들에 대해 최대 3백명까지 재정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 계획을 위해 우선 올해 4백만 달러(약 37억원)를 배정하고, 앞으로 5년간 최고 50만명의 미국 학생들이 중국어를 익힐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미국 정부도 중국어를 아랍어·러시아어·힌두어 등 이른바 ‘핵심 외국어’의 일부로 분류해 미국인들의 외국어 학습을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어 자체만을 따로 떼어내 지원한다는 계획은 아직 없다. 반면 의회는 상황이 심각함을 깨닫고, 중국어 학습 지원을 위한 법안을 마련한 상태다. 하원에서는 최근 ‘미·중 교류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2007 회계 연도에 초·중·고교에서 중국어 학습을 위해 연방 정부가 2천만 달러를 지원토록 하고 있다.

상원도 지난해 ‘미·중 문화교류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향후 5년간 중국과의 문화 교류는 물론 중국어 학습 지원을 위해 13억 달러(약 1조2천억원)를 제공토록 했다. 미 의회가 이 정도로 적극적이라면 중국어가 중국의 가장 매력적인 대미 ‘수출품’으로 자리잡을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시사저널 / 정문호 통신원 2006-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