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난민인정 탈북자 6명 美 입국] 美, 北인권압박 행동나섰다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가 5일 ‘보통 난민’ 6명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해 미국에 전격적으로 입국시킨 것은 앞으로 북한 인권 문제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이슈화할 것임을 보여 준다.

대북(對北) 금융제재를 통한 ‘돈줄 죄기’와 함께 김정일(金正日) 정권에 대한 압박 강도를 한층 높여 나가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부시 행정부가 ‘6자회담 대신 인권 문제’로 대북 정책의 방향을 틀고 있는 뚜렷한 징후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보통 탈북자에게 망명 허용하기까지 =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압박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부터. 이후 미 행정부는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로 부르며 탈북자 문제, 강제수용소 실태를 집중 부각했다.

미 의회도 탈북자 청문회를 여는 등 북한 인권 문제에 가세했다. 결국 2004년 북한인권법이 제정됐다.

이 법에 따라 미국은 지난달 정부 관계자를 동남아시아 국가로 직접 보내 이들의 탈북 후 행적을 확인했고 미국 체류가 가능한 지위를 사전에 부여하는 방식을 택했다. 6명 가운데 여성 4명은 인신매매, 납치, 투옥 등 탈북 이후 혹독한 인권 침해를 견뎌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북한인권운동가는 “미국의 정책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고통을 겪은 탈북자를 우선 받아들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말했다.

이들의 미국행을 지원해 온 두리하나선교회 천기원 목사는 “제3국에서 미국대사관의 조사를 받은 탈북자가 더 있으며 미국에 추가로 입국할 탈북자가 있다”고 전했다.

안토니우 구테헤스 유엔 난민고등판무관도 이번에 입국한 탈북자들을 ‘1차 그룹’이라고 말한 바 있다.

▽ 한국 및 중국에 부담 = 한국 정부 당국자는 최근 “미국 정부가 협상을 통한 북한 핵 문제 해결의 기대를 버린 것 같다”고 조심스러운 진단을 내놓은 적이 있다.

미국의 명백한 정책 선회로 중국 역시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지난달 미중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탈북 여성 강제 북송 사건을 공개 거론한 것은 대중(對中) 압박의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중국엔 10만 명 이상의 탈북자가 머물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이 이들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과거보다 한층 높아질 게 분명하다.

▽ 향후 전망 = 북한인권법에 힘입어 탈북자들의 첫 미국 망명이 성사됐지만 미국행이 얼마나 더 이어질지는 확실하지 않다. 미국이 테러에 대한 우려 때문에 망명 심사를 철저히 하고 있고, 실제 예산 등 지원도 한정적일 뿐만 아니라 탈북자들도 혈육이 있거나 정서적 문화적으로 가까운 한국행을 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승련 특파원>

:북한인권법:

북한인권증진을 목적으로 2004년 10월 미 상하원에서 공화·민주당의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탈북자의 미국행을 돕고, 탈북자 지원단체에 재정지원을 하며, 북한에 송출하는 라디오 방송시간을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통령이 북한인권 문제를 전담하는 특사를 임명토록 했고, 이에 따라 제이 레프코위츠 변호사가 지난해 8월 특사로 임명됐다. 정책추진을 위해 2004∼2008년까지 매년 2400만 달러를 지원하도록 했다.

▼ UNHCR “난민탈락 탈북자 한국 수용합의” 韓 “그런적없어” ▼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은 5일 올해 중국과 몽골 등에 있는 탈북자의 보호와 지원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UNHCR는 이날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06년도 활동계획을 발표했다.

UNHCR는 특히 중국 정부에 대해 적절한 난민 관련 법규를 만들고, 북한 출신 망명 신청자들에 대한 법적인 보호와 지원을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안토니우 구테헤스 판무관은 대부분의 중국 내 탈북자는 정치적 이유가 아니라 굶주림이나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국경을 넘은 불법체류자이지만 그렇다고 북한으로 송환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이 북한으로 추방되면 아주 엄한 처벌을 받게 될 위험이 있는 만큼 난민 지위가 인정된다”면서 “추방은 국제법상 용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당초 미국행을 원했으나 미 정부의 난민 심사 과정에서 거부당한 탈북자를 모두 한국이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기자회견 후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와 UNHCR는 동남아 지역 탈북자들이 보호받지 못한 채 방치되는 일이 없도록 한다는 데 합의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앨런 사워브레이 미 국무부 난민 담당 차관보도 이날 중국 내 탈북자의 강제 송환을 저지하기 위해 중국 정부와 적극 접촉해 왔다고 밝혔다.

사워브레이 차관보는 “중국으로 밀매되고 있는 많은 여성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으며, 중국인과 결혼한 북한 여성에 대해서는 중국 시민권이 부여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외교통상부는 미국에 대한 난민 신청에서 탈락한 탈북자를 모두 한국이 수용하기로 했다는 UNHCR의 언급과 관련해 7일 “정부는 UNHCR 측과 그런 합의를 한 바 없다”며 “미국행 심사 여부와 우리 측의 수용 결정은 별개의 사안”이라고 밝혔다.

외교부는 이날 보도 참고자료를 통해 “정부는 한국행을 희망하는 탈북자를 인도주의와 동포애적 관점에서 전원 수용해 오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행 심사에서 탈락했는지와 관계없이 탈북자가 한국에 오겠다고 하면 절차에 따라 원칙대로 처리하게 된다”며 “당사자가 애초 미국행을 원했다가 거부당한 사실은 한국의 탈북자 심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탈북자 수용의 전제 조건은 본인의 의사”라며 “미국행이 거부된 탈북자를 모두 한국이 수용한다는 말은 본인 의사에 관계없이 모두 수용한다는 뜻으로 오해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구테헤스 판무관은 5일 미국 워싱턴에서 2006년도 탈북자 관련 활동 계획을 발표한 뒤 기자들에게 “미국 입국 심사 과정에서 거부당한 탈북자들을 모두 한국이 수용하기로 한국 정부와 UNHCR가 합의했다”고 말했다.

<권순택 특파원, 윤종구 기자>

(동아일보 2006-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