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교수 ‘한반도식 통일…’서 담론 제시

명예교수(68)가 한반도식 통일론, 변혁적 중도주의론 등 사회담론을 제시, 주목을 끌고 있다. 동북아·세계 자본주의체제 등에 거시담론뿐 아니라 새만금, 박정희 평가, FTA 등 사회현안에 대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창비’ 편집인으로서, 민족문학 진영의 대표 평론가로서 이전에도 사회변혁론을 제기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2003년 정년 이후 그의 통일론 연구, 사회비평은 더욱 활발한 모습이다.

6·15 공동선언실천민족공동위원회 남측대표, 시민방송 이사장, 환경재단 136포럼 공동대표 등을 맡아 이론 작업과 실천을 병행하고 있는 백교수는 최근 펴낸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창비)에서 자신의 입론을 담아냈다.

◇ ‘어물어물 통일론’ = 백교수가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한반도식 통일론’은 정교한 이론체제를 갖춘 입론은 아니다. 6·15민족공동위 활동을 바탕으로 통일에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 결과다. 백교수는 2000년 6·15공동선언을 분단체제 동요를 공식선언한 역사적 사건으로 파악한다. 이제 남은 것은 통일로 나아가는 길일 뿐. 그러나 백교수는 통일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강조한다. ‘완전한 통일’이나 ‘1회성 사건으로서의 통일’보다 ‘과정으로서의 통일’이 한반도식 통일의 진정한 뜻이라는 것.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6·15선언 제2항)한 이상 남북간 교류와 실질적 통합을 진행해가면 어느 날 통일은 이뤄진다는 것이다. ‘두루뭉수리로 진행되다가 문득 통일이 되는 과정’, 즉 어물어물 진행되는 통일이 백교수가 제시하는 한반도식 통일론이다.

백교수는 ‘6·15시대’를 통일시대의 들머리로 파악한다. 연합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남북간 통일작업이 1차적으로 매듭되는 시점이 ‘1단계 통일’다. 그렇다면 현 단계는? “1단계 통일을 눈앞에 둔 상태”라는 게 백교수의 진단이다.

◇ 변혁적 중도주의 = 분단체제 극복과 사회변혁을 위해 내세운 사회변혁론이다. 백교수는 1980년대 운동권 용어를 빌려 변혁적 중도주의를 민족해방(NL), 민중민주주의(PD), 부르주아민주주의(BD)의 3자결합이라고 설명한다. 변혁적 중도주의에서 ‘변혁’은 분단체제 극복을 지향하며, ‘중도주의’는 대중이 참여하는 점진적 개혁을 의미한다. NL, PD, BD의 3자결합이지만, 백교수의 노선은 NL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것은 “우리 발밑에서 진행되는 역사를 분석하기보다 분단을 모르는 외국에나 해당할 담론을 열띠게 주고받는다”며 분단체제를 외면하는 지식층을 비판하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백교수는 PD계의 대표 논객인 최장집 교수를 실명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최교수가 분단체제에 대한 시각을 수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극단적 선평화론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또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가 질적으로 나빠졌다”는 최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비민주주의’론에 대해서도 분단을 고려하지 않고 서구의 잣대로 재단한 것이라며 반박했다.

◇ “박정희는 긍정 평가, FTA는 반대” = 백교수는 진보진영의 대표 논객으로 꼽히지만, 박정희 시대에 대한 평가는 사뭇 다르다. 백교수는 “박정희 개인이나 박정희 시대의 업적으로 거론되는 경제분야에 대해 민주화 진영이 소홀한 면모가 있었다”면서 민주화 진영도 박정희를 적극 평가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더 나아가 ‘한국식 고도성장 모델’의 창안자로서 박정희 대통령의 ‘지적재산권’을 인정해야 할 것이라며 박대통령을 ‘주식회사 한국 CEO’로, ‘지속불가능한 발전의 유공자’로 평가했다.

최근 현안인 한·미FTA 문제에 대한 글은 실려 있지 않다. 그러나 백교수는 책 머리말을 통해 정부의 FTA협상에 대해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우리 사회의 동력을 탕진할 위험마저 있다”며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또 “한반도 민중의 저력이 발휘되는 과정인 한에서는 미국 의회와 행정부의 일정표에 맞춘 어리석은 진행만은 저지할 수 있다”며 졸속협상을 우려했다.

사회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발언은 백교수가 올해 초 창비 40돌을 맞아 내세운 ‘운동성 회복’의 방향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는 또 학계의 토론 활성화를 위해 실명비판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70년대 이후 사회담론을 이끌었던 창비, 창비를 이끈 백낙청 교수의 대사회적 실천 및 연구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경향신문 / 조운찬 기자 2006-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