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블록 또 뜯어? 서울-부산 24개區서만 작년 3만8619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이모(34) 씨는 3월 초 황당한 경험을 했다. 어렵사리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을 배정받아 3개월치 주차료를 선납했지만 주차 공간을 쓸 수 없었다. 보도블록을 다시 깐다며 주차 공간을 막아 놓아 한동안 불법 주차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한 지방자치단체는 지난해 9월 낡은 수도관을 교체한다며 아파트 진입로를 파헤쳤다. 채 3개월도 안 돼 가스관 매설을 위해 똑같은 장소에서 다시 공사를 했다.

○ 연말이면 유난히 잦은 공사

기획예산처가 최근 서울 22개 구청과 부산 2개 구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 24개 구청이 지난해 시행한 보도블록 공사는 모두 3만8619건이었다. 1개 구청에 연평균 1609건, 하루 평균 4.4건씩 공사를 한 셈이다. 이것도 10m 이상 공사만 통계를 잡은 것이어서 그 미만까지 합하면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게 예산처의 추산이다.

예산처는 보도블록 공사의 30%가량이 연말인 11, 12월에 집중된 것으로 파악했다.

예산처 관계자는 “중앙정부에서 지원한 재정을 다 쓰지 못하면 다음 해 지방교부금이 줄어들까봐 지자체들이 보도블록 공사로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시가 보도블록 공사에 쓴 예산은 1200억 원. 나머지 지자체는 통계를 관리하지 않아 파악조차 불가능하다. 서울시를 제외하고는 보도블록 교체 기준도 없는 실정이다.

5·31지방선거에서 적지 않은 후보들이 ‘보도블록 공사 등 예산 낭비를 줄이겠다’는 공약을 들고 나온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 이중삼중 공사 해결책은?

보도블록 공사의 많은 부분은 통신, 전기, 상하수도시설을 깔기 위한 것이다. 몇 개월도 안돼 같은 장소를 다시 파내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이러다 보니 멀쩡한 보도와 도로까지 노후화돼 보도블록만을 다시 까는 공사를 해야 하는 예산의 이중투입이 이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공동구(共同溝)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땅을 한 번 팔 때 통신, 전기, 상하수도시설을 모두 설치하겠다는 것.

하지만 1997년 서울 강남구청이 이를 추진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맡긴 결과 강남구 내 공동구 건설비가 7023억 원이나 드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어 여기에도 적지 않은 예산이 필요한 실정이다.

○ 주민 불편과 예산 낭비의 블랙홀

보도블록 공사는 예산 낭비의 가장 대표적 사례다.

각 정부 부처가 지난해부터 운영하는 예산낭비신고센터에 접수된 신고의 40%도 보도블록 및 도로 굴착과 관련된 내용이다.

지난해 차도 정비 예산으로 30억 원을 배정했던 한 지자체는 연말에 2억7000만 원이 남자 산하 9개 읍면 중 6개 읍면에 보도블록 공사비로 균등 배분했다. 돈을 받은 일부 면이 멀쩡한 보도블록을 교체하는 것을 본 주민이 신고를 했다.

서울의 한 구청은 지난해 산하 동사무소가 66m의 보도블록 공사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는데도 연말에 150m를 더 교체했다. 그해 사업예산을 모두 쓰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동아일보 / 박현진, 김두영 기자 200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