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는 왜 독도문제를 조용히 풀라고 하는가?

“독도는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 우리 땅이다. 독도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방침은 전면 대응하겠다. 우리 국민에게 독도는 완전한 주권회복의 상징이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와 더불어 정면으로 다룰 것이며, 물리적 도발에 대해서는 강력하고 단호하게 대응하겠다.” (4월25일 노무현 대통령 특별 담화)

노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독도에 대한 ‘정면 대응’을 선언했다. 노 대통령은 “물리적인 도발에 대해서는 강력하고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며, 일본 정부가 잘못을 바로잡을 때까지 국가적 역량과 외교적 자원을 모두 동원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며 “어떤 비용과 희생이 따르더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문제”라며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뜻을 밝혔다. 외교부는 독도 문제 전담반을 설치했으며, 주한 외교공관을 대상으로 홍보전에 나섰다. 한명숙 총리도 지난달 28일 “일본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 보수쪽 “독도문제 노 대통령이 긁어부스럼 만들었다…한미일 공조 강화해야”

노 대통령의 담화에 대해 여론은 호의적이다. 민족정기 국회의원 모임(대표 김희선 의원)이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전국 성인 남녀 1천여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을 실시한 결과, 노 대통령의 한일관계 특별담화에 대해 94.6%가 ‘긍정적’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조용한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강경대응’이 오히려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포문은 조갑제 월간조선 전 대표가 열었다. 그는 지난달 20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세계에서 제일 부자인 일본을 적으로 돌리고 북한과 친구가 되겠다는 것은 자살충동”이라며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그는 노 대통령 담화가 발표된 지난달 25일에도 ‘노무현 독도 관련 연설의 심각한 사실 오인’이라는 글을 올려 “일본 정부는 한국의 완전한 해방과 독립을 부정한 적이 없고 대한민국은 주권을 회복할 필요가 없다”며 “독도가 한국 땅이란 증거는 너무나 많아 일본 수상과 담판을 해도 절대로 밀리지 않는데도 노 대통령이 한 독도 관련 연설은 과장법을 쓰다가 보니 몇가지 큰 사실오인이 담겨 있고 이는 한국에 불리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1965년 한일 기본조약에 따르면 두 나라는 한일합병 이전에 맺어진 두 나라 사이의 조약과 협정은 ‘이미 무효'라고 선언함으로써 합병 자체를 불법화했다”며 “한국에서 독도가 우리 땅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며, 일본측 주장이 워낙 억지이고 우리에게 유리한 자료가 워낙 많아서 반박하는 데 조금도 어려움이 없다”고 밝혔다.

박찬숙 한나라당 의원도 지난달 21일 SBS라디오 방송에서 “독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한미일 동맹이 강화되면 일본이 지금처럼 버릇없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보수성향의 단체인 뉴라이트재단 이사장인 안병직(69) 서울대 명예교수도 지난달 26일 ‘뉴라이트재단’ 출범식에서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독도는 한국의 영토지만 국제적으로 보면 국제 분쟁지역”이라며 “현재 우리가 독도를 실질적으로 점유하고 있으므로, 민감한 문제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다”며 조용한 대응을 주문했다. 그는 “독도 문제로 한일관계가 매우 악화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대외협력 관계에 큰 악영향을 주고 있다”며 “현 정부가 괜히 독도문제를 건드려서 시끄럽게 만들었다”고도 했다.

◇ 보수언론도 노 대통령 담화 딴죽걸기…“조용한 외교” 주문

일부 언론도 가세했다. <조선일보>는 29일 강천석 논설주간의 [강천석 칼럼]을 통해 대통령의 독도 외교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칼럼은 “총사령관(대통령)이 최전선에서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것은 적에게 좋은 표적 거리를 제공할 뿐”이라며 “‘일본의 다케시마(독도)’는 일본과 러시아가 얽힌 북방영토 문제와는 달리 일본 국민 관심의 곁가지인데, 그런 걸 우리가 애써 일본 국민의 핵심 관심사로 키워 줄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칼럼은 “대통령 측근과 지지세력들이 외교관들 이마에 ‘친미·친일·사대적’이란 불 도장을 찍으려 해서는 안 된다. 외교관의 입과 손을 얼어붙게 만들고 대외 교섭력을 떨어뜨릴 뿐”이라며 “독도 대응의 중심을 청와대에서 외교부로 옮기는 게 나으며, 독도 외교에서 우리 외교관들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그들의 의견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칼럼은 또 “대통령 직접 외교의 또 다른 위험성은 대통령의 외교 발언이 겉으론 상대국가를 향한 메시지이지만 안에는 자기 국민을 염두에 둔 또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라며, 여론 무마를 위한 제스처일 수 있다고 깎아내렸다.

<중앙일보>는 26일자 신문에서 기사와 시론 등을 통해 노 대통령의 담화에 딴죽을 걸었다. ‘EEZ 기점을 울릉도서 독도로 옮기면…’ 기사에서는 “대통령 담화 이후 핵심은 정부가 그동안 주장해온 울릉도를 기점으로 하는 안을 버리고 새로 독도 기점 안을 낼지 여부”라며 “독도를 기점으로 할 경우 울릉도 기점 안에 비해 우리 EEZ가 2만1030㎢ 늘어나며, 무엇보다 독도 영유권 주장과도 부합하지만 실리 면에서 잃는 게 많다”고 지적했다. 기사는 “일본은 과거 EEZ 협상 때 남해에서 무인도인 조도를 기점으로 주장해 왔는데, 이 경우 대륙붕 공동 관할구역 전체가 일본측 EEZ로 편입될 수 있다”며 EEZ 독도 기점이 우리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중앙은 이날 안병직 교수의 인터뷰를 통해 “우린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 독도는 우리가 사실상 영유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한 뒤 “일본이 매년 독도 문제를 들고 나오는 건 그렇게 안하면 국제법상 자연스럽게 우리 것이 되기 때문이며, 우리 정부가 일일이 맞대응할 필요가 없다”며 노 대통령의 강경대응을 문제삼았다.

중앙은 또 오대영 논설위원의 시론 ‘파이프라인 외교가 중요하다’라는 글에서 독도 문제를 포함한 한일간의 문제가 우리측의 파이프라인 외교가 없어져서 유발된 것처럼 호도, 원인 제공이 한국측에 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중앙은 나아가 박춘호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건국대 명예교수)의 시론을 실어 “‘독도가 중간 수역에 들어갔으니 영유권마저 훼손됐다는 것은 허황한 논쟁’이며, 법률 유권해석의 최고기관인 헌법재판소도 2001년 3월 “그렇지 않다”고 판시했고, 대다수 국제법학자의 견해도 마찬가지”라며 “성급하고 과격한 대응은 해결 전망을 더욱 어렵게 할 따름이며, 일본 정부 선박을 나포하는 행동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럴 경우 이 문제가 국제법정에 넘어갈 가능성이 커진다. 이것이 독도의 국제 분쟁화를 원하는 일본의 계산일지도 모른다”며 정부의 강경대응 방침을 비판했다.

◇ 대부분 일본과 ‘인연’ 있는 ‘지일파’

보수쪽 인사들과 언론이 독도문제를 조용히 풀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부에선 이들 인사의 주장이 일본과의 ‘인연’에서 비롯한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들이 일본에서 태어났거나, 연구활동을 한 것과 연관을 짓기도 한다. 독도본부(dokdocenter.org) 유근원 홍보부장은 “안병직 교수는 일제 식민지를 한국 자본주의 성장의 뿌리로 보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빌미를 제공한 사람이며, 박춘호 재판관도 일본에서 교수활동을 했다”며 “이들이 일본 우익편에서 논리를 펴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일본 사이타마현 출생이며, 1991년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수여하는 제4회 아시아태평양상 특별상을 수상한 전례가 있다. 안병직 교수는 86~87년 도쿄대 경제학부 교수를 역임했으며, 2002년부터 현재까지 일본 후쿠이 현립대학 대학원 특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박춘호 재판관은 90년 일본 동경대 법대 객원교수를 지냈다.

◇ 노무현 정부에 비판적 시각 견지해온 공통점도

이들이 노무현 정부에 비판적 시각을 견지해 왔다는 점도 ‘조용한 대응’을 요구하는 배경을 읽히기도 한다. 특히 이들이 과거부터 한·미·일 동맹관계 강화를 주장해왔고, 일본 우익과의 연대를 강조해 왔다는 점도 그 근거로 꼽힌다. 이들 논리는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개선 노력을 해왔던 현 정부의 외교전략이 미국과 일본의 심리를 자극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노골화시켰고, 노 대통령의 담화가 여기에 불을 지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제법 학자는 “보수인사와 보수언론의 노 대통령 담화 딴죽걸기는 대통령을 짓밟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 같다”며 “우리나라의 영토가 걸려있는 문제를 책임있는 인사와 언론이 정치적 의도만을 갖고 무조건적인 비판을 하는 것은 이들의 양심을 의심하게 만든다”고 맹비난했다.

유근원 부장도 “보수 인사와 언론의 행태는 독도 문제를 노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해 이용하는 측면도 있다고 본다”며 “26일자 중앙의 경우 노 대통령의 강력대응은 짧게 처리된 반면 담화내용을 비판하는 기사들이 주요하게 처리된 것은 정치색이 전혀 배제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언론들이 주로 쓰는 용어 가운데 ‘일본의 분쟁지화 의도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조용히 대응해야 한다고 하는데 어차피 독도는 분쟁지로 전락한 상태이며, 조용히 대응해서 독도문제가 해결될 일이냐”라며 “‘100년간 실효지배하면 한국땅이 된다’는 논리가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악용되는 것 같은데, 이 주장은 100%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 제성호 교수 “일본 절대 포기안해…조용한 외교 주장은 결국 현대판 친일파”

보수인사들의 주장과 달리 일부 국제법 학자들은 노 대통령의 강경대응 방침에 환영의 뜻을 표하며, 더욱 적극적으로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국제법)는 “독도문제에 대한 노 대통령의 대응은 강경대응이 아니라 ‘정상적인’ 대응이며 적절한 것인데도 이념과 노선에 따라 독도 문제와 그 해결책을 다르게 내놓는 경향이 있다”며 “이념과 노선을 떠나 우리땅 지키는 일에 초당적·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며, 국민대토론회를 비롯 신한일어업협정 체결 과정에 대한 진상조사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용한 대응을 해서 일본이 독도영유권 주장을 철회하거나 가만히 있어주면 좋은데, 일본은 오히려 이를 확대시키거나 쾌재를 불러왔다”며 “일본이 독도를 포기할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조용한 외교를 주장한 사람은 결국 현대판 친일파가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영구 한국해양대학교(국제법) 교수도 “노 대통령의 담화는 정당한 국권을 책임지는 최고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서 정당한 판단”이라며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용한 외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박춘호 재판관 등의 주장은 법리에 맞지 않으며, 그의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제법상 ‘실효적 지배’는 독도에 대해 국가로서의 영토주권의 권위로서 입법.사법.행정의 기능을 계속해서 행사하고 있어야 한다”며 “박 재판관의 주장은 계속적인 실효적 지배가 필요없다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국제분쟁으로 부각되지 않고, 우파 정부가 들어서면 사태가 해결된다는 주장은 대단히 악질적인 얘기”라며 “일본이 이미 독도에 대해 도전적 의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국제분쟁으로 갈 수밖에 없으며, 조용히 풀 경우 국제분쟁으로 비화되지 않는다는 그의 주장은 말이 안된다”고 말했다.

◇ 신한일어업협정 폐기로 ‘독도 영유권 문제’ 쐐기 박아야

이들은 구체적인 해결책으로 1999년 독도를 중간수역 안에 포함시킨 신한일어업협정의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신한일어업협정으로 ‘독도 영유권 분쟁’을 야기했다는 판단에서다. ‘독도분쟁’과 관련해 과거 우리나라가 1:0으로 우위에 있었다면, 현재는 1:1 또는 1:2로 뒤지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어업협정과 독도문제가 별개라는 정부의 주장과 달리 독도를 중간수역에 포함시켜 사실상 우리나라의 고유한 영토가 아니라 독도가 ‘분쟁지역’임을 인정한 꼴이라는 것이다.

김영구 교수는 “그간 독도의 조용한 대응은 독도 영유권 문쟁을 회피하기 위한 논리였다”며 “신한일어업협정 체결로 이미 분쟁지역에 들어간 이상 향후 전개될 영유권 싸움에서 유리한 국면을 유지하기 위해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는 한편 어업협정을 파기해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대내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성호 교수도 “이번 사태는 신 한·일어업협정에 따라 독도 주변에 중간수역이 설치됐을 때부터 예고된 것이며 독도문제에 관한 정부의 대응은 타당하다고 본다”며 “일본의 독도침략 전략이 노골화되면서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이뤄진 점을 볼 때 미봉적이고 소극적인 대처는 결국 일본의 주장을 묵인하는 셈이어서 독도 영유권 훼손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업협정을 폐기하거나 개정하는 한편 해상공원 지정, 인공 섬 건설, 관광 개방, 영해 침범 선박 단속 등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근원 부장도 “독도문제를 조용한 외교로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 사람들 때문에 일본의 침략행위가 더 노골화되는 것이다. 일본이 독도를 분쟁지화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분쟁지”라며 “더이상 분쟁지임을 부인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갖고 있는 주권 강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보수인사들이 주장하는 ‘묵인(조용한 외교)’는 일본의 주장을 인정하는 셈이어서 향후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될 경우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많다”며 “‘100년간 실효적 지배를 하면 우리땅이 된다’는 거짓논리에 혹할 것이 아니라 국제사법재판소까지 회부될 것을 감안해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는 한편 다각적인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며 신한일어업협정의 폐기를 촉구했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국제법 전공학자를 청와대에 초청한 자리에서 “어업협정이 폐기되면 서로 상대방 어선을 나포하는 문제가 생기게 되고, 어민들의 생업에 지장을 줄 것”이라며 협정 폐기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한겨레신문 2006-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