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잡다 다쳤는데 국가 '나몰라라' 분통"

"범인을 잡다가 몸이 만신창이가 됐는데 치료비까지 떠안아야 한다니 정말 울고싶은 심정입니다.

" 신체장애를 무릅쓰고 범인을 붙잡다 상해를 입은 의로운 50대 시민이 피해보상을 받을 길이 없어 제대로 치료조차 받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27일 부산 영도경찰서에 따르면 신체장애 3급인 오덕진(59·부산 영도구 청학동)씨가 상해를 입은 것은 지난 25일 오전 2시50분께. 등산을 하러 집을 나선 오씨는 영도구 청학동 청학시장의 한 통닭가게에서 강모(45)씨가 절단기로 셔터문 자물쇠를 끊는 장면을 목격했다.

도둑이라고 직감한 오씨는 장애로 한쪽 팔을 제대로 쓸 수 없는 불편한 몸에도 불구,범행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강씨를 붙들었다.

강씨는 둔기를 휘두르며 완강히 저항했고 이내 오씨의 머리에서는 피가 흘렀다.

고통을 느낄 겨를도 없이 오씨는 소리를 지르며 강씨를 붙잡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기를 10분이나 지나서야 인근을 지나던 택시운전사 김승국(50)씨가 이 광경을 보고 오씨와 합세했다.

강씨는 김씨에게도 둔기를 휘둘러 상해를 입혔고 이들은 순찰 중이던 경찰들이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20분 이상을 온몸으로 강씨를 막아냈다.

수차례 머리를 맞아 피투성이가 된 오씨는 병원에서 머리를 10여바늘 꿰맸고 허리 부상 등으로 전치 3주의 진단을 받았다.

문제는 치료비. 첫날 검사 및 진단비 등으로만 47만원이 들었다.

손자 둘을 데리고 매달 나오는 50만원의 연금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는 오씨에게 치료비 부담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오씨는 병원비가 걱정돼 입원도 하지 못하고 집에서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오씨는 경찰에 이런 사정을 하소연했으나 치료비 용도로 따로 책정된 예산이 없다는 대답에 크게 낙담했다.

"범죄신고 보상금으로 얼마간의 돈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 검토하겠다"는 말에 위안을 삼을 뿐이었다.

형사피해자 보상제도로 '배상명령신청'과 '범죄피해자구조제도'가 있지만 범죄피해자구조는 살인 및 강력사건으로 사망이나 장애 등의 피해를 본 경우로만 제한된다.

배상명령신청은 범죄로 인해 재산상 혹은 신체적 피해를 받은 피해자가 범죄자에 대해 피해 보상을 요청하는 제도지만 범인으로부터 피해 배상을 받아낸다는 것은 말 그대로 '하늘의 별따기'다.

국가가 보상하는 '의사상자 예우제' 역시 장애나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한 경우에만 해당돼 오씨가 이 제도의 지원을 받기는 희박하다.

실제 의상자로 지정된 건수는 전국적으로 2003년 13건,2004년 9건,2005년 11건에 불과하다.

"당시에는 이웃이 피해를 당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몸을 던졌습니다.

치료비조차 나 몰라라 하는 현실을 알았더라면 결코 위험을 무릅쓰고 나서지 않았을 겁니다.

"오씨는 범죄를 막으려다 사고를 입은 사람에게 최소한 치료는 국가에서 대신해 주어야 범죄현장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사회풍토를 바로잡을 수 있지 않겠느냐며 제도적 보완을 힘주어 강조했다.

(부산일보 / 박태우 기자 2006-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