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인물 · 앨리슨 래퍼] 세상을 아름답게 한 '살아있는 비너스'

“삶이 그대를 속일 때, 나를 봐라.”

‘장애인의 달’인 4월을 맞아 영국의 구족 화가이자 사진 작가인 앨리슨 래퍼(41)가 23일 내한했다.

팔이 없는 조각품 ‘밀로의 비너스’에 견주어 ‘현대의 비너스’로 불리는 래퍼는 1965년 두 팔은 아예 없고 다리는 기형적으로 짧은 해표지증(海豹肢症·팔 다리가 물개처럼 짧아지는 증세)을 안고 태어났다.

생후 6주 만에 거리에 버려져 복지시설에서 자랐다. 21세 때 결혼했지만 남편이 폭력을 휘둘러 9개월 만에 헤어졌다. 누구라도 좌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어린 시절부터 관심이 있던 미술공부를 뒤늦게 시작했다.

장애인 구호기관의 지원을 받아 헤덜리 미술학교와 브라이튼 대학을 졸업한 뒤 예술가로서 새 인생을 출발했다. 입과 발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 겸 사진작가가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장애를 작품의 소재로 삼는 적극적인 방식으로 장애로 인한 좌절을 이겨냈다. 그의 사진들은 빛과 그림자를 이용해 자신의 나신을 모델 삼아 조각 같은 영상을 만들어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장애인의 몸도 비장애인의 몸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난해 9월에는 영국 조각가 마크 퀸이 임신 9개월의 그를 모델로 해 만든 ‘임신한 앨리슨 래퍼’라는 5m 높이의 작품이 런던시의 공모전에서 뽑혀 트래펄가 광장에 세워졌다. 이 작품으로 래퍼는 ‘모델’로도 유명해졌다.

래퍼는 “사람들은 불편한 것을 피하려 하지만 내가 저 위에 세워져 있는 한 더는 나를 피할 수 없다”며 “장애가 있는 사람이 천박하지도, 못생기지도, 우스꽝스럽지도 않다는 점을 사람들이 깨닫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년 전 임신해 아들 패리스를 낳았다. 현재 영국 서섹스에 거주하면서 아들을 키우고 있다. 작은 스펀지를 입에 물고 아들의 머리를 감겨 주고 특수 제작된 유모차를 어깨로 밀며 아이와 공원을 산책한다.

자서전 ‘내 손 안의 인생’과 자신의 웹 사이트(www.alisonlapper.com) 를 통해 장애와 가정폭력 등 여성 문제를 이슈화하는 데도 앞장섰다. 지난해 ‘월드 어워드 여성성취상’을 수상, 세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졌다.

과학기술부 산하 (사)아시아과학인재포럼의 ‘영 챌린저 포럼’ 연사로 초청된 래퍼는 28일 파주 영어마을에서 강연을 하고,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전시회도 열 계획이다. 하인즈 워드의 방한이 혼혈인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듯 래퍼의 방한이 장애인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지 기대된다.

(주간한국 / 배현정 기자 2006-4-25) 

밀로 비너스 보고 바로 나! 내몸에 눈을 떴다

‘밀로의 비너스’는 양팔이 떨어져 나갔지만 여전히 아름답다. 아니, 어쩌면 그 때문에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해 영국 런던 트래펄가 광장에 설치된 마크 퀸의 조각 ‘임신한 앨리슨 래퍼’는 밀로의 비너스 못지않은 감동을 안겼다. 양팔이 없고 다리가 짧은, 임신한 장애인 여성의 몸은 널찍한 광장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빛났다.

이 조각상의 모델은 구족화가이자 사진작가인 앨리슨 래퍼다. 그는 1965년 양팔이 없고 다리가 짧은 ‘해표지증’이란 기형으로 태어났다. 그의 삶은 굴곡을 뛰어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앨리슨 래퍼는 자서전 ‘앨리슨 래퍼 이야기’에서 쉽진 않았지만 좌절하지 않았던 삶을 담담하게 풀어간다.

앨리슨 래퍼 이야기/앨리슨 래퍼 지음/노혜숙 옮김/황금나침반/9800원

영국 정부는 그를 일반 가정에서는 양육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복지시설에서 자라며 앨리슨은 따뜻한 사랑을 받기 힘들었고, 때로는 학대에 시달리기도 했다. 22세 때 결혼했지만 남편의 폭력 탓에 2년 만에 헤어졌다. 그런 중에도 영국의 해덜리 미술학교와 브라이튼대를 졸업하고 예술가로서 인생을 개척했다. 지난해에는 세계여성성취상과 대영제국 국민훈장을 받기도 했다.

밀로의 비너스는 앨리슨이 자신의 몸에 눈을 뜨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신체 장애를 작품 소재로 삼으며 ‘기형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한다. “그것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 만들어진 양 팔이 없는 여성의 대리석상이었다. 눈이 번쩍 뜨였다. 아니, 이것은 바로 내가 아닌가! 그 순간부터 나는 나 자신의 몸을 바라보면서, 나 자신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언젠가 나에게 말했다. “앨리슨, 아무도 장애인 사진을 벽에 걸어놓고 싶어하지 않아요.” 나는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눈을 변화시키는 것도 예술의 기능이다. 내가 하는 작업이 사람들로 하여금 언젠가는 장애를 새로운 눈으로, 긍정적으로 보게 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래퍼가 입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왼쪽). 아들 패리스와 래퍼.

또 다른 전환점은 출산이었다. 1999년 임신했을 때 많은 이들은 아이가 어머니와 같은 장애를 가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 설령 아이를 낳더라도 어떻게 키우겠냐는 점을 들어 출산을 말렸다. 하지만 그는 아들 패리스를 낳았다. “모두들 반대했다. 내 인생은 그런 식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반대할 때마다 내 안에서는 어떤 힘이 솟구쳤다.”

앨리슨 래퍼는 긍정적인 성격과 굳은 의지로 장애를 끌어 안았다. “…어떤 식으로든 내가 원하는 삶을 제한하는 것들을 거부해왔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인생을 충만하게 살 수 있다고 느꼈다. 나에게 무엇인가를 할 수 없다고 말할 때마다, 오히려 그 말이 틀렸다는 점을 증명하겠다는 의지가 굳어졌다. 내가 일반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원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 그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일보 / 이보연 기자 2006-4-22) 

`영혼이 아름다워야 진짜 사람` 살아있는 비너스

23일부터 방한한 영국 구족화가, 앨리슨 래퍼의 지난했던 삶이 방송에 공개돼 시청자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MBC ‘시사매거진 2580’ 23일 방송에선 세상의 온갖 역경과 편견을 이겨낸 ‘살아있는 비너스’로 불리우는 구족화가, 앨리슨 래퍼의 삶을 다뤘다.

방송에 따르면 앨리슨 래퍼는 팔, 다리가 없거나 짧고 손발이 붙어있는 ‘해표지증’의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친부모조차 외계인으로 치부했을 만큼 앨리슨은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 삶을 살아왔다.

“생긴 것도 추하고 곧 죽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아요, 무슨 괴물이나 외계인으로 치부했죠”

생후 6주 만에 부모에게 버림받았던 앨리슨은 영국 정부로부터 일반 가정에서는 양육할 수 없다는 판단을 받게 됐다. 이후 복지시설로 보내졌고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따뜻한 사랑 한번 느껴보지 못하고 성장했다.

어린 시절, 자신의 기형으로 학교에서 놀림감이 되기는 일쑤였고 심지어 학대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19세 때 만난 비장애인 남편과 2년여의 연애 끝에 결혼도 했지만 자신의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의 폭력 탓에 2년 만에 헤어졌다.

1999년에 앨리슨이 임신했을 때, 주변의 많은 이들은 ‘아이가 어머니와 같은 장애를 가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들어 그녀의 출산을 극구 만류했다. 앨리슨은 “사람들은 역겹다거나 장애인은 아이를 출산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라며 당시의 힘겨움을 방송에 토로했다.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자신의 의지로 결정하고자 했던 앨리슨은 출산을 선택, 그 결과 건강한 사내아이를 출산했다. 방송에선 앨리슨의 출산장면도 함께 공개했다. 힘겹게 아이를 낳는 장면과 태어난 아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물이 당시의 감격적인 상황을 재연해내고 있었다.

‘아들 패리스야말로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대상’이라는 앨리스에게 영국정부는 그녀에게 했던 것처럼 아이를 복지시설로 보내라고 명령했다. 그녀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를 들어 아이를 양육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 앨리슨은 자신의 장애를 이겨냈던 것처럼 자신의 강인함으로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패리스를 지켜냈다.

앨리슨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그림을 뒤늦게 배워 브라이튼대를 졸업하면서 장애인이 아닌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삶을 개척했다. 팔 대신 입과 발로 그림을 그리며 자신이 가진 재능을 발견해 나갔다. 앨리슨의 그림을 본 많은 미술가들은 그녀의 그림에 감탄했으며 미술계에선 세계적인 예술가로 그녀를 인정했다.

사진에서도 앨리슨의 재능은 빛을 발했다. 자신의 나신을 모델 삼아 명암을 이용, 조각 같은 사진을 촬영해 사진 분야에서도 최고의 찬사를 받았던 것. 앨리슨은 자신의 신체를 양팔이 없는 조각 ‘밀로의 비너스’에 비유하며 자신을 ‘살아있는 비너스’로 자처하기까지 했다.

앨리슨은 자신의 신체장애를 사진작품의 소재로 삼으며 ‘장애인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일반인들에게 보여줬다. “사람들은 장애인을 나약하고 쉽게 무너질지 모르는 그런 존재로 보는 경향이 있어요, 저는 결코 그렇지 않아요, 전 강하고 의지가 강한 여성입니다”

최근엔 영국 현대미술가 마크 퀸이 앨리슨 래퍼의 임신 9개월의 모습을 모델삼아 5m높이의 조각 작품 ‘임신한 앨리스 래퍼’를 트래팔가 광장에 전시했다. 불굴의 의지로 장애를 이겨낸 것을 인정한 영국정부 또한 지난해에 그녀에게 대영제국 국민훈장을 수여했다.

앨리슨은 사회의 장애에 대한 편견에 도전하는 예술작품으로 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제2회 ‘위민스 월드 어워즈(Women’s World Awards)’에서 ‘세계여성성취상’까지 수여, 세계적인 명성까지 얻게 됐다.

타고난 긍정적인 성격과 굳은 의지로 장애를 뛰어 넘은 앨리슨 래퍼. 그녀의 감동사연이 안방에 전해지자 많은 시청자들은 자신의 꿈과 희망을 성취하기 위해 용기와 신념을 펼쳐보인 앨리슨에게 `위대한 비너스`, `장애인들의 영웅`이라는 표현을 들어 그녀의 위대함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TV리포트 / 김진도 기자 2006-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