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잘못 따지기 전 아이 아픔에 귀 여세요

요즘 학교에 아이 보내기가 무섭다고 하소연하는 부모들이 많다.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보도되는 학교폭력 때문이다. 소심한 우리 아이가 혹시 ‘왕따’(집단 따돌림)를 당하지는 않을지, 일진회 아이들에게 뭇매를 맞거나 돈을 뺏기지는 않을지 늘 불안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속절없이 마음만 졸이고 앉아 있을 것인가. 부모 노릇 하기 참 힘들다는 푸념은 잠시 뒤로 미뤄두고, 당장 내일 내 아이의 문제가 될 수 있는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아 보자.

“피해 고백이 용기”라고 칭찬
자초지종 파악 뒤 담임과 상담을

우리 아이가 피해를 당하고 있다면?
우선 아이가 학교폭력의 피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피해 학생들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피해의 징후(쪽기사 참조)가 나타나기 마련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녀가 스스로 피해 사실을 털어놓을 때는 끝까지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 줘야 한다. <학교폭력, 우리 아이 지키기>의 저자인 김현수 사는 기쁨 정신과 원장은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편견 없이 들어 주면서 아이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피해 사실을 밝히는 것이 고자질이 아니라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칭찬하라”고 조언했다. 어렵게 입을 연 아이를 비난하는 것은 금물이다. 김 원장은 “‘기껏 학교에 보냈더니 그런 일이나 당하니?’라거나 ‘네가 뭔가 잘못을 했겠지’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학교폭력은 피해·가해 학생간의 힘의 대결, 성격, 습관화한 폭력, 써클의 조직적 행동 등 복잡한 정황 속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내 자녀에게 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무엇보다 사건이 어떻게 시작됐고, 어떤 과정을 거쳐 폭력으로 이어졌는지 등 자초지종을 알아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해 학생이나 부모는 직접 만나지 않는 것이 좋다. 감정이 격해져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더 꼬이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맹배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사업국장은 “가해 학생의 경우 단순한 훈계가 아니라 치료적 상담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며 “이런 아이에게 피해자 부모가 찾아가 혼을 내거나 ‘한 번만 더 그러면 가만 두지 않을 거야’라고 윽박지르면 반발심만 불러 일으켜 자칫 더 큰 폭력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만일 가해자 부모를 만날 때는 감정적인 대응을 해서는 안 된다. 차분하게 피해상황을 파악하고 가해자가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전달하고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 담임교사에게 이야기할 때는 폭력의 원인, 피해상황, 가해자의 특성 등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한 뒤에 상담을 하고, 담임을 통해 가해자와 부모가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왕따’ 피해를 입은 자녀가 강력하게 전학을 요구할 경우 문제가 해결된 뒤에 전학을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도피성으로 전학을 가게 되면 옮겨 간 학교에서도 같은 피해를 입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왕따로 인해 가뜩이나 자존감이 상실된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더 큰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학교폭력 관련 도움받을 수 있는 곳>

청소년폭력예방재단 www.jikim.net (02)585-9128
왕따닷컴 www.wangtta.com (02)793-2000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www.uri-i.or.kr
학교폭력국민대책협의회 www.ttastop.org (02)325-2542
청소년위원회 www.youth.go.kr (02)1388

<부모가 알아야 할 학교폭력 예방수칙>

1 자녀들에게 친구를 놀리고 고의적으로 소외시키나 괴롭히는 행동은 범죄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2 친구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아이가 등교하기 전 “잘 하고 있어. OO는 참 잘한다.”고 칭찬을 하자.
3 아이와 학교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하루에 최소 30분 동안 대화한다.
4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엄마, 아빠한테 얘기해. 우리는 항상 네 편이란다.”라고 이야기한다.

5 새학기일수록 몸, 옷, 씻기 등에 더욱 신경을 쓴다.
6 친구들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음식을 사주는 일은 역효과가 날 수 있으므로 조심하라.
7 새로 바뀐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 등을 읽어 본다.
8 아이에게 이전에 불리던 별명이 있다면, 미리 가정에서 별명에 대한 대처요령을 익히고 학교에 갈 수 있도록 한다.
9 자녀가 비싼 운동화나, 전자제품(휴대폰, 엠피3) 등을 학교에 가지고 가지 않도록 지도한다.
10 자녀가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안돼, 하지마, 그만해.” 등을 단호하게 얘기할 수 있도록 가정에서 미리 연습한다.
(자료 :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왕따에서 벗어나는 방법>

1. 원인을 파악하고 변신을 시도한다.
2. 문자를 자주 보내고 쪽지도 써서 우정을 표현하자.
3. 마음이 넓고 착한 친구와 먼저 사귀기를 시도한다.
4. 나를 괴롭히는 친구에게 당당히 내 주장을 한다.
5. 혼자만 튀려고 하지 말고 분위기를 파악하고 나선다.
6. 평소에 요즘 유행하는 말이나 유머 시리즈를 많이 알아둔다
7. 친구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아둔다.
8. 자신감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자료 : 왕따닷컴)

가해자엔 폭력 인정하게하고 뉘우치는 자리 마련해줘야

내 아이의 가해 사실을 알았다면?
가해 학생 부모들은 일반적으로 집에서는 아이를 혼내고 심지어 때리는 등 엄하게 대하면서도 막상 피해자 부모나 교사들을 만나서는 사실을 부인하고 아이를 두둔하는 태도를 보인다. 교사의 면담 요청에도 순순히 응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감정의 골만 깊어지게 할뿐,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럴 경우 가해 학생도 부모 앞에서는 잘못을 뉘우치는 척하지만, 피해 학생에 대한 원망이 커져 더 심한 폭력으로 앙갚음을 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자녀가 학교폭력 사건의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일방적으로 아이를 윽박지르지 말고 우선 마음을 가라앉힌 뒤 아이가 ‘있었던 일’의 전말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조언한다. 장 국장은 “가해자 부모는 아이가 우선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진정으로 뉘우치게 한 뒤, 나중에 피해 학생에게 정식으로 사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처리 어떻게 되나
2004년 제정된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은 각 학교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치위원회는 학교폭력의 예방 및 대책을 위해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의 구성 및 실시 △피해 학생의 보호 △가해 학생에 대한 선도 및 징계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간의 분쟁조정 등에 대해 심의한다. 자치위원회는 피해 학생의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피해 학생에 대해 심리상담 및 조언 △일시보호 △치료를 위한 요양 △학급 교체 △전학 권고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을 학교장에게 요청할 수 있다. 또 피해 학생의 보호와 가해 학생의 선도·교육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가해 학생에 대해 △피해 학생에 대한 서면 사과 △피해 학생에 대한 접촉 및 협박의 금지 △학급 교체 △전학 △학교에서의 봉사 △사회봉사 △학내외 전문가에 의한 특별교육 이수 또는 심리치료 △출석 정지 △퇴학 처분(의무교육과정은 제외) 등의 조치를 학교장에게 요청할 수 있다.

이런 증상 보이면 왕따 의심을

학교폭력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왕따’(집단 따돌림)이다. 왕따는 정신적 후유증이 가장 큰 폭력으로 꼽히지만, 피해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 학교폭력 전문가인 김대유 서울 서문여중 교사는 최근 펴낸 <학교폭력, 우리 아이 지키기>(노벨과 개미)에서 왕따 피해의 7가지 징후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 비싼 옷, 소지품, 운동화 등을 가끔 잃어버린다
새 운동화를 헌 운동화로 바꿔 신고 오면 반드시 그 이유를 확인해야 한다. 또 아빠가 외국에서 사다 준 기념품 등을 잃어버렸다고 둘러댈 경우 잘 달래서 추적해 봐야 한다.

■ 몸에서 상처나 멍 자국을 가끔 발견하게 된다
석연치 않은 상처를 발견하고 물어봤는데 “그냥 넘어졌다”거나 “운동하다 다쳤다”고 얼버무릴 때는 폭력 피해를 의심해 볼 수 있다. 만약 상처가 심하면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받아놓는 것이 좋다.

■ 교과서, 메모장, 일기장 등에 ‘죽이고 싶다’, ‘죽고 싶다’와 같은 표현이 있다
피해 학생은 수업을 하다가도 가해자가 떠오르면 무의식 중에 교과서에 낙서를 한다. 일기장에는 구체적인 복수의 방법을 기록해 두기도 한다. 이런 물증이 발견되면 꼭 원본을 보관하거나 복사를 해놓아야 한다.

■ 용돈이 모자란다고 하거나 지나치게 많은 학용품 비용을 자주 달라고 한다
이 때는 금품 피해의 가능성을 생각해 봐야 한다. 무조건 짜증을 내지 말고 잘 달래서 진실을 캘 필요가 있다.

■ 두통, 복통 등 몸이 좋지 않다고 호소하며 학교 가기를 싫어한다
심각한 학교폭력 피해를 의심해 뵈야 한다. 아이가 견딜 수 없는 피해를 지속적으로 당하게 되면 당연히 피해의 현장인 학교를 기피하는데, 그 방법이 지각이나 조퇴, 결석이다.

■ 버디버디 등 인터넷 채팅이 부쩍 늘었다
왕따 피해자나 가해자의 공통점이다.

■ 갑자기 전학을 보내달라고 하거나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말한다
왕따에 시달리면 공격적인 반응을 보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도피 현상을 나타낼 수도 있다.


(한겨레신문 / 이종규 기자 2006-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