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하오 베이징] “바룽바츠 모르면 라오투”

중국 베이징(北京) 택시운전사 리젠궈(李建國·39) 씨는 평소 신문은커녕 TV도 보지 않는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리 없다.

“국가주석이 누구냐”고 기자가 묻자 “장쩌민(江澤民)”이라고 답했다. 물러난 게 언제인데 기가 막히는 대답이다.

그렇지만 그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주창한 사회주의 영욕관(榮辱觀), ‘바룽바츠(八榮八恥·8가지 영광과 8가지 수치)’는 잘 안다.

회사에서 특별교육을 시킨 뒤 코팅 처리된 전단까지 나눠 줬기 때문. 시간이 날 때마다 이 전단을 읽어 보아 이제 외울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중국 사회는 ‘바룽바츠 학습’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다. “바룽바츠를 모르면 라오투(老土·촌뜨기라는 뜻으로 ‘간첩’과 같은 말)”라는 우스개가 나돌 정도다.

중고교는 매주 월요일 아침 조례 시간을 바룽바츠 학습시간으로 활용한다. 교사는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연구해 발표하도록 학생들을 독려한다.

산둥(山東) 성 칭다오(靑島) 개발구의 모든 초중학교는 바룽바츠를 동요로 만들어 가르친다. 두 명이 손뼉을 마주치며 하는 놀이의 가사를 바룽바츠로 바꿨다.

최근 베이징 시내 거리에는 ‘사회주의 영욕관을 배워 분위기를 새롭게 하자’는 선전 간판이 나붙기 시작했다. 큰 서점엔 전문코너도 있다. 한 달여 사이 출판된 책만 30여 종. 독본부터 문답풀이까지 다양하다. 당 간부용부터 일반인, 청소년, 어린이용까지 모두 있다.

베이징TV에서는 지난달 26일부터 인기가수 류빈(劉斌)과 인슈메이(殷秀梅)가 취입한 바룽바츠 노래도 보급하고 있다.

웬만한 활동은 바룽바츠에 해당하는 것으로 둔갑하고 있다.

예전부터 해온 군인의 농촌봉사활동이 8가지 영광의 두 번째 항목 ‘인민을 위해 복무(服務人民·복무인민)’하는 활동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신랑(新浪) 등 14개 종합검색사이트가 9일 음란물 근절을 위해 결의한 인터넷 정화운동도 사회주의 영욕관에 부응한 ‘웹 사이트 문명화 운동’으로 불린다. 바룽바츠 실천운동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의 속내는 별로 호의적이지 않다. 40대 회사원 류(劉)모 씨는 “지난달 말 학습 공문이 내려와 보긴 했지만 별로 공감이 가지 않더라”고 털어놓았다. 1978년 개혁개방 이전 받아온 교육과 비슷하고 개인 희생만 강조한다는 것이다.

지식인들도 마뜩찮다는 눈치다. 베이징의 한 대학교수는 “요즘 이런 걸 강조한다고 그대로 되겠느냐”며 “요란한 의식개혁보다 조용한 제도개혁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는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중국은 ‘2차 문화대혁명’ 속으로 급속히 빠져드는 듯한 분위기다. 다만 1차 때와 다른 점은 후 주석이 마오쩌둥(毛澤東)과 달리 무력이나 홍위병을 앞세우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 바룽바츠(八榮八恥) ::

후진타오 주석이 지난달 4일 정치자문기구인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政協)의 한 대표단 회의에서 처음 주창한 사회주의 영욕관. 8가지의 영광과 8가지의 수치란 뜻으로 조국사랑 인민봉사 과학숭상 근면노동 상부상조 성실신뢰 법규준수 각고분투를 영광으로, 이와 상반된 행위를 수치로 여기라는 내용이다.

(동아일보 / 하종대 특파원 2006-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