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미FTA, 쉬쉬한다고 도움 되나

요즘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한 뉴스를 듣다 보면 국민들은 왜 이런 협상을 추진하려 하는가 의문이 들 법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참모였던 인물이 “한미 FTA 추진은 노 대통령의 조급증에서 시작된 한건주의”라며 협상이 타결될 경우 한국경제가 거덜이라도 날 것처럼 경고한 일부터 그렇다.

이어 여당인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일정에 쫓긴 불리한 협상을 우려하는 신중론이 고개를 들었고, 한미 FTA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온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마저 관세인하가 미국 내 한국상품의 경쟁력 제고로 직결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보고서를 냈다.

반대론이나 신중론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이런 주장만 소리 높을 뿐 협상을 지지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게 문제다. 한미 FTA가 왜 추진되어야 하며 우리 경제에 어떤 이득을 가져오는지에 대해 알리고 이해를 구하려는 노력이 없다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 해답은 우선 어느 때보다 강한 반대여론을 의식한 정부가 가능하면 이슈화를 피하려는 소극적 자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여론을 수렴하는 공청회가 농민단체의 시위로 두 번이나 무산됐으니 할 바는 다했다는 태도다.

한미 FTA의 기대효과가 서비스 산업의 고도화, 한미 동맹의 강화등 다분히 장기적이고 무형적인 데 반해 농산물과 금융ㆍ서비스시장 개방 같은 손실은 즉각적이고 구체적이어서 설득논리가 쉽지 않다는 점도 작용한다. 당장 피해를 당할 사람들은 광범위하고 많지만 수혜자는 분명하지 않은 점도 반대론이 우세한 이유다.

그런 만큼 정부는 소극적 자세를 버리고 국민에게 협상 필요성을 알리고 공감대를 마련하는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마땅하다. 한미 FTA 논의가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진행된다면 협상 성사는 갈수록 멀어질 게 분명하다. 우리가 이렇게 내부 논란에 빠져 있는 사이 미국은 광범위한 시장 개방을 요구하는 무역장벽보고서를 발표하며 압박을 가해오고 있다.

(한국일보 2006-4-11)

<사설> FTA를 ‘매국협정’으로 호도하는 反美論의 억지

노무현 정권을 지지해온 친노(親盧)세력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에 대한 반대론을 쟁점화하며 이를 세력화하려 하는 것은 한마디로 그들의 우물안 개구리식 세계관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노 대통령의 ‘경제 교사’로 불렸던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 제비서관이 “한미 FTA 체결은 제2의 을사늑약”이라며 노 대통 령을 맹공하고 나설 때부터 그런 행태는 충정의 발로가 아니라 FTA를 반미 분위기 증폭을 위한 정치적 도구로 삼으려는 저의를 의심살 만했다. 마침내 친노 진영은 정 전 비서관의 발언을 행동 개시 신호로 삼다시피 하면서 일제히 “FTA가 체결되면 한국은 미국의 51번째 주나 경제식민지가 된다”는 식의 주장을 펴며 맹목적인 민족주의를 자극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차세대 발전전략까지 깎아내리는 것이야말로 수구좌파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북핵 문제 등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미국 문제만 나오면 민족공조에 동조하며 ‘미국의 노예화·식민지화 책동’이라고 맹목적 민족주의를 자극하더니 이젠 FTA 체결까지 ‘매국 협정’으로 호도하고 나선 것이다. 친노 진영의 사유( 思惟)체계는 이렇듯 을사늑약이니 경제식민지니 하는 얘기를 꺼내지 않으면 스스로를 합리화할 수 없을 만큼 폐쇄적이다. 노 정권의 전위 세력들이 얼마나 글로벌 세계의 대세에 뒤처져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세계가 선망하는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이 미국과 FTA를 체결한다해서 식민지로 전락 한다는 식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사람은 북한 정권과 국내의 친북·반미 세력밖에 없을 것이다.

노 대통령은 국민이 ‘친FTA 대 반FTA’, 최악의 경우 ‘친미파 대 반미파’ 구도로 분열되는 상황이 초래되도록 방치해선 안된 다. 국군부대의 이라크 파병 논란 때처럼 노 대통령이 논란을 방치한다면 양극화 해소와 함께 올해 2대 의제로 내세워온 한미 FTA 체결 목표의 진정성을 의심받을 것이다.

한미 FTA는 부시 행정부가 의회로부터 부여받은 신속협상권(TPA) 이 내년 6월 만료돼 미국측도 그 3개월전인 내년 3월을 타결 시한으로 제시하고 있다. 친노 진영이 앞으로 1년만 발목을 잡으면 FTA 체결은 당분간 무망해진다. 내년 연말 제17대 대선도 2002 년 대선 때처럼 친미·반미 논쟁으로 불붙게 될지 모를 상황이다 . 우리는 노 대통령이 3월23일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에서 “ 성장을 위해 적극 개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리 체질”이라고 강조한 사실을 되돌아보며 FTA에 대한 진정한 결의를 거듭 확인해 현 단계의 어지러운 논란을 정리하기 바란다.

(문화일보 2006-4-11)

[칼럼] 평택 논두렁에 뒹군 사람들

평택의 논두렁 진흙 속에서 ‘반미(反美)’를 외치며 발버둥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 한국인은 왜 수십 년에 걸쳐 ‘미국’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는가 하는 장탄식을 하게 된다. 미국과의 FTA 협상을 ‘배신’과 ‘대패착(大敗着)’으로 몰아가는 전직 청와대 측근 비서관의 고발을 보면서 우리는 언제까지 ‘미국의 덫’에 갇혀 있어야 하는가 하는 자괴감을 느낀다.

대한민국의 반(半)세기 역사는 미국과의 명암(明暗)으로 점철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에 대한 애정과 미국에 대한 증오가 교차하면서 우리를 끝없이 어떤 함정으로 몰아가고 있는 이 21세기 시대착오적 현상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미국’을 극복하지 못하고 ‘미국’ 안에서 맴돌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는 세계의 흐름은 각 민족과 국가의 존폐를 가르는 일련의 ‘전쟁’을 시사하고 있다. 하나는 자원전쟁이다. 미국, EU, 러시아, 중국, 일본 등 강국과 대국들은 에너지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사활을 건 합종연횡에 나서고 있다. 과거 냉전이 있었던 자리에 다원화된 핵(核)들의 에너지전쟁이 대신 들어서고 있다. 에너지를 위해서는 어제의 적(敵)도 없고 오늘의 친구도 없다.

이런 자원전쟁은 종교적 충돌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인류의 종국적 문명충돌이라고도 할 수 있는 종교전쟁은 바야흐로 기독교권(圈)과 이슬람권의 일대 회전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는 종교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무자비하고 얼마나 파괴적인가를 인류의 역사에서 수없이 보아 왔다. 이제 그 종교전쟁과 인종전쟁의 결승이라고 할 수 있는 두 거대 종교의 세기적 싸움이 중동을 발화점으로 번지고 있다. 우리의 절체절명의 과제는 바로 이런 세기적, 세계적 전쟁에서 살아남고 번영을 유지하는 일이다.

우리는 자원이 없거나 부족한 나라다. 에너지는 100% 외국에 의존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선 우리는 자원 쪽에 서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전적으로 기독교권에 속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슬람권은 분명히 아니다. 그런 측면에선 기독교권과 등질 수 없다. 솔직히 말해, 우리나라는 기름은 없고 기독교인은 많다. 그렇다고 ‘제3세계’라는 중립의 그림자 뒤에 숨을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이런 우리의 형편과 위치는 우리가 대단히 정교하고 계산된 외교로 대립과 충돌을 피해 가며 전쟁의 와중에 휩쓸리지 않는 지혜를 발휘할 것을 요구한다.

오늘날 우리가 ‘미국’을 어떻게 다루어 나갈 것인가는 바로 이런 생존의 기술에 의거해서다. 감정적 반미도, 이념적 반미도, 정략적 반미도 우리에게 이로울 것이 없다. 마찬가지로 맹목적 친미나 냉전 유물로서의 친미도 해로울 뿐이다. 미국을 필요로 하는 부분에서는 조금 양보해서라도 실리를 취할 것이고, 불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우리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를 것은 냉철하게 자르면 된다는 기본 자세를 가져야 한다.

반미론자 또는 미군 철수론자들은 미국이 있음으로 해서 한반도에서 평화가 멀어지고 전쟁 위험이 커진다고 선동하지만, 그렇다면 미군이 이 땅에 기승하던 과거에 이미 한반도의 평화는 깨지고 한국은 벌써 결딴났어야 옳다. 미국(같은 논리로 미군)은 지금 한국에서 물러가는 과정에 있다. 거기에 대고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악을 써대는 일부 한국인들의 과잉대응은 설득력이 없다. 그러지 않아도 한국이 싫어져서 돌아서는 그들의 뒤통수에 돌을 던지는 사람들은 무슨 한풀이가 남아서 그러는 것일까? 분명 다른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대한민국이 이 세계를 살아가는 데 있어 이제 미국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우리가 활용하면 그만이다. 없으면 곧 죽을 것 같은 호들갑도 문제지만 미국 때문에 세상에 종말이 온 것처럼 떠드는 ‘저주’도 큰 병이다. 우리에게 미국은 이제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다. 우리가 선택을 잘하면 된다.

우리 모두 ‘미국이라는 마법(魔法)’에서 풀려날 때가 됐다. 반미만 외치면 자동적으로 진보가 되고 좌파가 되는 세상, 실리를 따지자고 하면 자동적으로 친미가 되는 세상, 입으로는 반미하고 뒤로는 미국화에 급급한 이중적인 세상―이 모두 우리가 미국이라는 마법에 걸려 있는 탓이다. 그 많은 한국의 젊은 열정들이 세계의 전선에 나가서 싸워도 모자랄 판에 ‘미국’이라는 변수에 매달려 평택의 진흙구덩이에 뒹굴고 있기에는 우리 대한민국이 너무 바쁘고 아깝지 않은가.

(조선일보 / 김대중 2006-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