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잠자리로 보이나요”

韓·美 FTA협상 대표단에 보안교육
국정원서 잠자리형 도청 로봇 공개
“기업간 비즈니스에도 첩보전 치열”

“미국서 협상할 때는 날아다니는 잠자리도 조심하라. 도청 로봇일 수 있다.” 오는 6월 초부터 시작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앞두고, 한국측 협상 대표단에 보안 경계령이 내려졌다. 만에 하나 한국의 협상 전략이 누출될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 7~8일 경기도 용인시 현대인재개발원에서 열린 협상전략 검토 워크숍에서 한·미 FTA 협상에 나설 대표단 120명을 대상으로 보안 교육을 실시했다.

이 자리에서 보안당국은 미CIA(중앙정보국)가 개발한 잠자리형 도청 로봇의 모습 등을 공개하고 미국의 도청 능력과 대비책에 대해 설명했다. 잠자리형 로봇은 살아 있는 잠자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몸통 부분에 도청기를 장치해 비행하면서 대화를 도청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보안당국은 말했다.

이날 교육에서 강의에 나선 정부의 보안 담당자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지닌 미국이 도청을 결정한다면 어떤 방법이 사용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며 협상단을 긴장시켰다. 실제로 CIA는 다른 곤충 모양의 도청 로봇도 개발했고, 11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동전 모양의 마이크로카메라도 첩보전에 실전 투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안당국은 특히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운영하는 세계적인 감청망 ‘에셜론’의 위력을 강조했다. 에셜론 시스템은 120개가 넘는 인공위성과 음성 분석 능력을 가진 슈퍼컴퓨터를 이용, 하루 30억 건 정도를 감청하면서 특정한 단어가 들어가 있는 통화나 팩스를 자동 포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안당국은 또 중국이 2002년 국가주석 전용기로 구입한 미국 보잉사의 대형 점보기(보잉767-300ER) 침실과 화장실 등에서 20개의 도청기가 발견된 사례를 설명하고 “도청이 일상적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03년 이라크전쟁 발발을 앞두고 영국 정보기관이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전화를 도청한 것도 국제적인 도청 사례로 제시됐다. 이 같은 도청이나 첩보전은 정부간 협상뿐 아니라 민간기업 간의 중요한 비즈니스 협상에도 종종 활용되므로, 기업들도 항상 보안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정부 관계자는 당부했다.

이날 보안 교육에서는 협상대표단이 미국에서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지켜야 할 보안 수칙도 제시됐다. 중요한 단어나 문건은 암호를 정해서 사용하고, 국가정보원이 제공하는 암호장치를 갖춘 이메일만 사용할 것, 미국 호텔의 비즈니스 센터에 설치된 복사기는 복사 내용이 유출될 수 있으니 사용하지 말라는 것 등이다.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한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미국이 도청한다고 단정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FTA협상은 보안이 중요하다는 것을 협상단에게 주지시키기 위한 자리였다”고 말했다.

<보안당국이 당부한 도청 예방 수칙>

● 중요한 단어·문건은 은어나 암호를 정해서 사용하라

● 이메일은 국정원이 제공하는 암호 장치를 갖춘 이메일만 사용하라

● 호텔 비즈니스센터에 설치된 복사기는 복사 내용이 유출될 수 있으니 사용하지 말라

● 주요 회의는 도청 방지 설비가 완비된 한국 대사관에서 개최하라

(조선일보 / 이진석 기자 2006-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