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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한미 FTA는 나쁜 민주화의 결정판이 될 것인가
민주주의는 좋은가, 나쁜가.
민주주의는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민주주의에서 자유에 주목하면 민주주의는 나쁘게 된다. 평등에
주목하면 좋게 된다. 여기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기준은 그것이 공익인가, 사익인가, 민중적인가, 반민중적인가에 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진보와 반동이 된다.
지금, 여기에서 민주주의는 진보인가 반동인가.
과거 공공의 이익과 쿠데타군의
이익을 위해 존재했던 은행은 민주화 이후 주주들의 사익을 위한 기관이 됐다. 이건 잘 된 민주화일까? 주주 중엔 외국인이 상당수다. 결국 외국인
주주의 이익을 위해 대한민국 은행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반독재 투쟁 끝에 쿠데타군이 밀려났지만 국가가 담보했던 공익도 밀려났다. 민주의
이름으로 그 자리를 차지한 건 시장이다. 시장주의자들은 주주의 이익이 곧 기업의 이익이고, 국가공동체의 이익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주주의
이익과 공익이 서로 배치된다는 건 IMF 사태 이후 한국 사회가 분명히 증명한다.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다수지배의 원리다. 이건
시장논리와 충돌한다. 시장은 다수지배가 아니라 부자지배의 원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1인1표 원리고, 시장논리는 1원1표 원리다.
1인1표는 아래서 위로 올라가는 힘이고, 1원1표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힘이다. 서로 모순되는 두 힘이 긴장 관계 속에서 공존하는 것이
이른바 서구 복지사회다.
시장주의자들은 본질적으로 상충되는 이 두 가지를 합치려 한다. 그들은 민주주의의 다수지배 원리를
소비자지배 원리로 치환한다. 유권자의 정치적 선택권은 소비자의 상품 선택권으로 바뀐다. 정치적 선택권은 천부의 것이나, 상품 선택권은 돈을 가진
만큼 행사할 수 있다. 전자는 정치고 후자는 경제다.
건강한 민주주의는 자본주의를 견제한다. 정치는 경제를 견제한다. 1인1표는
1원1표를 견제한다. 유권자가 소비자로 바뀔 때 이 긴장은 사라진다. 모든 건 경제적 문제로 바뀌고 민주주의는 ‘나쁜 것’이 된다. 이제 정치는
비효율적이며, 정치권력은 불온한 것이다. 권력이 경제를 간섭하는 것은 악이다. 오직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만이 이 나쁜 세계에서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된다.
이것이 70년대 후반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된 시장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 공세 내용이다. 한국의 민주화는 이
모델을 따라가고 있다. 민주화는 시장화가 아니다. 민주화와 시장화를 등치시키는 건 미국에서조차도 보수파뿐이다. 시장논리, 경제논리의 절대화,
경제부처의 패권부처화 속에서 정치가 물러나고 있다.
국가의 퇴각이다. 반독재 민주화 세력은 국가를 퇴각시키고 있고, 그 자리를
채우는 건 시장이다. 유권자는 소비자가 되어간다.
1인1표 원리의 실종 : 정치/국가의 퇴각 1원1표 원리의 득세 :
경제/시장의 대두
소비자가 된 개인이 누릴 수 있는 건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선택권이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자유롭게 열악한
복지를 선택하게 되고, 열악한 자식 교육을 선택하게 되고, 열악한 노동환경을 선택하게 되고, 근본적으로는 수탈과 고통, 멸시,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 이것이 시장주의자들의 민주주의다.
1인1표 원리는 문제해결에 있어 경제적 선택이 아닌 정치적 선택을 기본으로 한다. 정치는
국가 단위의 공적인 것이다. 이 원리로부터 다수 민중이 교육을 못 받고, 복지 혜택을 못 받고, 사람 대접을 못 받는 것은 정치적인 이슈가
되고, 공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며, 최종적으로는 국가권력이 책임져야 할 문제가 된다.
시장논리는 모든 문제 해결을 사적인
차원으로 귀속시킨다. 각자 열심히 살고, 각자 잘 선택하면 된다. 그리고 그 결과를 각각의 소비자가 사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국가는 소비자의
선택의 기회를 박탈해선 안 된다. 공립학교와 사립학교 사이에서 선택할 자유, 공보험과 사보험과 무보험 사이에서 선택할 자유, 국산 소고기와 외제
소고기 사이에서 선택할 자유 등 국가는 그 어떤 시민(=소비자)의 자유에도 간섭할 수 없다.
인류 진보의 역사는 문제해결을 공공의
장으로 끌어내온 역사다. 어제까지 사적인 문제였던 것이 진보에 의해 오늘부턴 공적인 이슈가 된다. 노예들의 무지는 그들의 게으름 탓이 아니라
알고 보니 국가가 공교육 시스템을 정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수 민중의 빈곤은 그들 각자의 저열함 때문이 아니라 알고 보니 사회의 불평등한
분배 구조 때문이었다. 이렇게 문제 하나하나를 공공화하고 정치화하는 것, 그것이 진보다. 반동은 그것을 다시 사적인 영역으로 구겨 넣으려 한다.
70년대 후반부터 시장주의가 득세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반동의 바람이 거세다. 그들은 인류의 투쟁으로 공공화 됐던 것들을 하나하나
사적인 영역으로 옮기고 있다. 공기업 사영화, 공교육 시스템 해체, 공보험의 사보험화, 주주이익 극대화 경영 등등. ‘공’자 들어간 건 모두
악이 됐다.
사익추구의 총체적 귀결이 공익이라는 고전적 시장논리만이 횡행한다. 그래서 다수 민중은 합리적인 소비자로서 즐겁게
빈곤과 죽음의 고통을 선택할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파쇼’적인 복지국가는 절대 국민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자유다. 이제 민중은 자기 자식을
무지한 노예로 키울 수 있는 자유를 허락받았다. 시장의 이름으로. 할렐루야!
한국사회 민주화 이후 경제, 시장의 득세는 과거
쿠데타군의 대두 못지않게 위력적이다. 민주화 세력은 흔히 박정희의 이데올로기는 알량한 경제성장뿐이었다고 힐난하지만, 민주화 이후야말로 경제파쇼의
시대라 말할 수 있다. “자유의 확대와 공공영역의 축소, 모두를 소비자로!” 구호가 남한 사회를 뒤덮었다.
정치와 국가는 하루가
지나면 하루만큼 퇴각한다. 과거 권력의 시녀였던 은행은 자유롭게 주주의 사익을 위해서 기업대출을 끊고 부동산 담보 가계대출을 할 수 있게 됐다.
국민경제는 골병이 들고 주주들은 사상최대의 이익에 주체를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한미 FTA는 나쁜 민주화, 국가 퇴각의
결정판이 될 것이다. 한미 FTA는 정치를 추방한다. 모든 문제는 시장에서 소비자가 결정할 것이다. 광우병 위험의 소고기를 규제할 것인가?
정부는 끼어들지 마라, 소비자가 결정한다. 자동차 배기가스를 규제할 것인가? 소비자가 결정한다! 과도하게 비싼 의약품 가격을 내릴 것인가?
소비자가 결정한다! 자국 영화산업을 보호할 것인가? 소비자가 결정한다! 소비자에게 맡겨라! 소비자는 신이다! 브라보!
건강보험은
사보험에 가입하고 싶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한다. 공교육도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한다. 저렴한 교육비도 비싼 교육을 선택할 자유를 침해한다.
뿐만 아니라 불공정 무역이기도 하다. 미국 AIG 보험이 한국 건강보험이라는 비관세장벽 때문에 자신들이 손해를 봤다고 제소하면 한국 정부는 국민
세금을 곱게 모아 배상금으로 바쳐야 한다.
미국의 영리 교육법인이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 때문에 손해를 봤다고 정부를 제소한다.
미국 자동차, 오토바이 회사가 한국의 교통관련법규 때문에 손해를 봤다고 정부를 제소한다. 미국의 미디어 그룹이 한국의 공공언론정책 때문에 손해를
봤다고 정부를 제소한다. 역으로 한국 정부가 공공성 침해를 이유로 미국 사기업을 제소할 순 없다. 한미 FTA는 시장논리가 기준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미국과 한국 재경부 관료들이 원하는 높은 수준의 FTA로 갈 경우 그 결과는 국가의 총퇴각이다. 이제 문제해결의
장은 정치의 영역, 공공영역을 완전히 떠나 시장에 안착한다.
시장의 특징은 독점화다. 마치 마을마다 자생했던 깡패들에서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전국규모 마피아 조직이 등장하게 되듯이. 그게 바로 자유시장의 특징이다. 시장은 그 출발이 아무리 평등했다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야기한다. 불평등은 빈부에 따라 선택권에 차등이 생기게 하고 다수가 선택권을 제약당하게 한다. 각자의 자유로운 선택권 행사라는
시장논리는 그 내부에서부터 붕괴하게 된다. 시장은 자기 안에 파괴의 시한장치를 안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독점과 빈부 양극화다.
독점을 견제하고 시장의 건전성을 규율할 수 있는 건 정치권력뿐이다. 소비자 각자의 선택이 아닌 정치적 선택만이 시장의 자기파괴를 막을 수 있다.
또 기아의 고통으로부터 약자를 구제할 수 있는 것도 정치권력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시장주의자들의 표방하는 가치는 다 사라진 채 약육강식,
강자생존의 양극화 정글만 남는다.
한국 정부는 한미 FTA와 양극화 해소를 동시에 추진하겠단다. 양극화는 시장논리에 의해 생긴
것이다.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선 정치논리, 국가권력의 개입이 필요하다. 한미 FTA는 정치와 국가를 추방한다. 여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인가?
모든 공상과 마법이 현실이 되는 왓 어 원더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인가?
어떻게 추방된 국가가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단 말인가. 당장 국가가 대학 등록금을 내릴 수도 없게 된다. 불공정 무역의 문제, 선택권의 문제, 우리나라 사학의 경쟁력 논리 등
결국 1년 등록금 3000만 원 시대를 보게 될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물론 그것을 선택할 수 없게 된다.
두고두고 미국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이슈들을 협상도 하기 전에 내주고, 또 만만한 나라들과 먼저 하고 미국과는 최후에 하는 것이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먼저 하려
하고, 또 근거가 뭔지도 알 수 없는 장밋빛 데이터들을 제시하며 한미 FTA를 일방적으로 띄우고, 또 협상에 불리한 것은 오히려 미국인데도 우리
쪽이 알아서 협상 시한을 맞춰 주고, 또 비교열위 산업을 압도적 비교우위 국가와의 시장경쟁을 통해 키우겠다고 하는 것을 보며 현 정부가 거의
근본주의적인 수준의 시장 맹신에 빠져있음을 느낀다.
지금 분위기로 가다가 한미 FTA가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나쁜 민주화,
자유의 득세, 미국사회화, 국가의 퇴각, 공공성의 퇴각, 정치의 실종(정치서클이 사라진 대학을 보라), 문제해결의 사사화, 1원1표 원리의 대두
등의 흐름을 종합하는 결정판이 될까 정말 두렵다.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침해하고 기업의 자유로운 영업권, 주주의 이익추구를 침해할, 다시
말해 시장을 건전하게 규율할 그 어떤 권력주체도 남한에 남지 않게 될 수 있다. 과거 은행을 공공화해서 국가경제성장의 엔진으로 삼았던 강력한
산업정책의 주체도 사라질 것이다.
물론 FTA라고 다 그런 것도 아닐 테고, FTA를 아예 안 할 수도 없겠지만, 한미 FTA부터
허겁지겁 추진하는 정부의 태도를 보며 악몽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양극화는 당연히 더욱 심화될 것이다. 민주화의 결과가 양극화라...
웃음만 난다.
<하재근 작가, 컬럼니스트>
(데일리 서프라이즈 20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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