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정치판 싸움에 밀린 ‘역사’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작업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 신설키로 한 ‘동북아역사재단’이 1년째 출범도 못한 채 표류중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연내 마무리돼 가는데도 국내에서는 국회 공전 탓에 재단설립을 위한 입법조차 지연돼 왔다.

정부는 지난해 초부터 동북공정에 대응할 정부 싱크탱크 설립을 추진해 왔다. 학술연구를 넘어 국가 대응전략까지 담당할 기구를 외교부 산하에 만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지난해 4월 청와대 산하에 ‘동북아 평화를 위한 바른 역사 정립기획단’이 만들어졌고, 외교부는 지난해 10월 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일부 의원들이 ‘외교적 부담’을 이유로 반대입장을 밝히더니, 동북아역사재단은 교육부로 이관됐다. 이어 12월 열린우리당 유기홍(서울 관악 갑) 의원 대표발의로 ‘동북아역사재단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제출됐지만, 사립학교법을 둘러싼 여야 갈등 속에 역사는 뒷전으로 밀렸다.

동북아역사재단 설립이 지연되면서 동북공정 대응을 맡아온 민간 연구단체 ‘고구려연구재단’도 어정쩡한 지위가 됐다. 동북아역사재단에 흡수통합될 입장이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도 어렵다. 법 통과가 미뤄지면서 안정적인 지원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교육부 역시 입법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사업을 시작할 수는 없어 곤란한 입장이다. 그나마 고구려연구재단조차 동북공정이 시작된 지 2년이 지난 2004년에야 만들어져 초기 대응부터 늦었다.

하루빨리 체계적 대응기구를 만들어야 하지만 4월 국회가 열려도 별반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사학법 갈등 재연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미래의 어느날, 세계는 “고구려는 한민족이 세운 독립국가가 아니라 중국의 지방정부였다”고 믿게 될지 모른다. 국내정치 이슈와 선거도 중요하겠지만, 후손들이 “우리나라는 국회의원들이 정치싸움 하다가 역사를 빼앗겼대…”라고 분개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문화일보 / 김성훈 기자 2006-3-29)